일터이야기
주52시간제, 산업별·직종별 제도적 보완 필요하다
최근 자문사의 근로감독 대응을 위해 한 식품제조업체를 방문했다. 외국인 근로자와 국내 근로자가 함께 근무하는 곳으로 기숙사와 휴게시설 등 근로자 복지에도 신경을 쓰고 있는 건실한 회사였다. 요즘같은 불경기에도 주문물량이 많아 회사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 대표는 “주52시간을 지키며 고객사 주문 물량을 맞추기 쉽지 않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외국인 근로자들도 더 일하고 더 많은 임금을 가지고 가고 싶어해도 주52시간 때문에 더 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주52시간제를 준수하며 제조업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표현했다.
최근 노동사건을 상담한 모 대표는 프로젝트 단위로 영상 광고물을 제작하는 업종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기한을 맞추려면 일정 기간동안 업무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는 “프로젝트 막바지에는 52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있을 수 있어 항상 법 위반 리스크를 안고 운영한다”고 말했다. 업종 특성상 업무가 시기적, 프로젝트성으로 몰리는 구조임에도 근로시간이 주 단위로 획일화된 법규정이 적용되면서 노동현장에서는 획일화된 법제도에 대한 불만이 많다.
근로시간 한계 적용, 업종과 방식의 획일화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주52시간제의 취지는 분명하다. 장시간 노동을 줄이고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2024년 결정에서 주52시간제의 취지는 “실근로시간을 단축시키고 휴일근로를 억제해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는 데 있다”고 명확히 했다.
다만 입법 취지가 정당하다고 해서 그 적용 방법까지 획일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주52시간제의 한계 아니라 ‘한계 적용하는 업종과 방식의 획일화’에 있다.
현행 제도에도 탄력근로제, 선택근로제, 특별연장근로 인가제 등 보완 장치가 존재한다. 그러나 단위기간 제한, 노사 서면합의 요건의 경직성, 인가 사유의 엄격한 해석 등으로 인해 실제 현장에서는 활용에 한계가 적지 않다.
특히 연구개발이나 프로젝트 중심 업종은 일정 기간 장시간 근로가 불가피하고 이후 비교적 여유 있는 시기가 이어지는 구조를 갖는데 주 단위 총량 규율은 이러한 업무구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장시간 노동 위험성과 근로자 건강권
이와 관련해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스타트업과 국가전략기술 분야 기업에 대해 분기·반기 단위 근로시간 설계를 허용하는 예외 기준을 제안했다. 이는 규제 철폐가 아니라 총량 관리의 시간 단위를 재설계하자는 접근이다.
일정 기간 집중 근무를 허용하되 총량시간의 상한을 두고 근로자 동의를 전제로 운영하자는 취지라는 점에서 제도적 논의 가치가 있다.
물론 장시간 노동의 위험성은 분명하다. 지난해 런던베이글뮤지엄 인천점에서는 장시간 근로에 의한 청년 노동자 사망사건이 있었다. 고용노동부의 기획근로감독들 통해 해당 사업체의 주 70시간 이상 근무가 확인됐으며 형사입건과 과태료 부과, 체불임금 지급 조치가 이뤄졌다.
이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유연화 자체의 위험이라기보다 통제장치 없이 장시간 노동이 방치될 경우 건강권 침해가 현실화 된다는 점이다. 예외가 필요하다면 그에 상응하는 감독과 관리 체계가 전제돼야 한다는 교훈이기도 하다.
산업별·직종별 특성을 반영해 차등적 제도설계해야
따라서 유연화 논의는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장치를 강화하는 방향과 병행돼야 한다. 대상 업종과 직군을 법률 또는 시행령으로 엄격히 한정하고, 분기·반기 단위 총 노동시간 상한을 설정하며, 집중 근로 이후 의무적 휴식기간과 건강진단을 강행규정으로 세부화할 필요가 있다. 근로자 동의 역시 형식적 동의가 아니라 철회권과 불이익 금지 규정을 포함한 실질적 선택권 보장이 병행돼야 한다.
주52시간제는 기본권 보호장치다. 그러나 기본권 보호가 곧 동일한 적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산업구조와 업무방식이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에서 법은 목적을 지키되 수단은 정교화돼야 한다.
건강권을 확실히 보호하면서도 산업별·직종별 특성을 반영하는 차등적 설계가 필요하다. 주52시간제 규제의 존폐가 아니라 합리적 보완이라는 관점에서 주52시간제를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이윤정
노무법인 런 인사컨설팅
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