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아스팔트 극우’는 언제 소진되는가
‘아스팔트 극우’는 국어사전적으로는 ‘광장이나 거리에서 주로 집회와 시위를 통해 극우적 주장을 하는 일단의 그룹’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일반적 이념 스펙트럼에서 극우는 나치즘이나 파시즘 등의 배타적 민족주의와 일본의 군국주의 등의 세력을 일컫는 말로서 현대에서는 미국의 ‘마가(MAGA)’처럼 이민과 소수인종을 배제하면서 자국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이데올로기를 일컫는다.
아스팔트 극우는 이러한 의미와는 궤를 달리 한다. 한국정치 특유의 언어로서 12.3 불법계엄의 소산이다. 이데올로기와 언어는 하나의 기표로서 시대에 따라 의미를 달리 할 수 있기 때문에 원론적 의미의 ‘극우’와 다르다고 문제가 될 건 없다.
그러나 이러한 단어가 평균적인 시민의 인식과 큰 괴리를 보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일단의 극우 주장을 펼치는 그룹이 ‘윤 어게인’을 외치고 강성그룹을 중심으로 결집도가 강해지면서 부정선거 음모론 등을 무기로 세를 확산시키는 추세다. 보편과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사그라질지 모르고 공당인 국민의힘의 강성지도부의 세력적 근거로 기능하고 있다. 그래봐야 전체적으로는 한줌에 그칠 수 있지만 이들의 주장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국민의힘 강성지도부의 세력적 근거
이들의 주장이나 구호가 정치논리나 법률적 측면에서 의미가 없는 정도를 지나 사실을 왜곡하고 혹세무민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강성 유튜브와 연계되어 조회수 증가로 수입을 올리고 강성 지지자가 국민의힘의 당내정치와 연관되는 부정적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지적과 비판은 무수히 있어왔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윤 어게인’을 외치는 세력은 아직도 계엄이 내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이미 각기 다른 3개의 1심 재판부에서 ‘계엄이 내란’이라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의 무기징역 선고에 대해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아직 최종심이 남아있기 때문에 ‘무죄추정의 원칙’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법리적으로 맞다고 할 수 있지만 제1야당 대표로서 계엄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다. 장 대표 등 당권파는 윤 어게인과 부정선거론자들을 이용하고, 또 이들은 강성지도부를 활용해 제도권 정치로 세를 확장하려 하는 공생관계가 국민의힘의 소장파와 계엄에 대해 국민 일반과 궤를 같이 하는 의원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한국의 보수를 왜곡시키고 있다.
윤 전 대통령 내란 혐의 1심 선고일이었던 2월 19일, 재판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 앞에는 ‘부정선거방지대(부방대)’와 ‘애국대학’ 등 ‘아스팔트 극우’가 결집했다. 이들은 12.3 계엄 이후 주도권을 두고 분열했다. 전광훈 목사의 광화문파와 손현보 목사의 여의도파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부정선거론을 전면에 내건 황교안 ‘자유와 혁신’ 대표가 부방대를 지휘해왔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전한길씨다. 그는 황 대표와 여의도파의 ‘스피커’격이다.
윤 전 대통령의 무기징역 선고 이후 윤 어게인 세력은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아스팔트’에서 국민의힘으로 방향을 틀은 것 같기도 하다. 강성 극우 성향의 고성국씨가 국민의힘에 입당한 게 그 사례다. 전한길씨도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전씨는 장 대표에게 ‘윤석열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으름장을 놨다. 친한동훈계 등 이른바 ‘절윤’세력에 대해서는 ‘엔추파도스(내부의적)’라며 공격했다. 이들 보편적 상식과 대척에 있는 극우 아스팔트는 이제 더 이상 ‘거리’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정치사회의 큰 숙제이자 난제
이들이 모두 제도권으로 보폭을 넓히는 상황이 더욱 기승을 부릴 수 있다. 한편으로 지분을 두고도 다툰다. 제한적인 강성 지지자 표본을 두고 서로의 영토를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한정된 급진 우익 자원을 두고 영역 다툼을 통해 ‘파이’를 늘려서 세력을 확장하고 이를 통해 수익 증대의 목표도 달성하려는 것 같다.
이러고도 무슨 이념적 ‘우파’라는 용어를 운위하는지 알 수 없다. 자본주의 경쟁시장에서 경쟁력이 없으면 시장에서 퇴출되지만 이들은 선거에서 지더라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언제 이들은 퇴출되는가. 한국정치사회의 큰 숙제이자 난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