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갈등은 왜 계속될까…“데이터 아닌 세계관 영향”

2026-03-09 13:00:02 게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 연구팀

원자력은 안전한가, 위험한가. 같은 자료를 보고도 사람마다 위험 판단이 극명히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일한 위험을 보고도 다른 공포를 느끼는 이유 중 하나로 ‘세계관(사고 틀)’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결국 자료의 문제가 아니라 ‘프레임’ 논쟁이라는 해석이다.

9일 국제학술지 ‘리스크 애널리시스(Risk Analysis)’의 논문 ‘문화적 가치, 위험 특성, 논쟁적 이슈의 위험 인식: 문화 이론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따르면, 개인의 문화적 가치관이 위험 특성 평가를 거쳐 최종적인 위험 인식으로 이어진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연구팀은 2020년 프랑스 첫 봉쇄 기간에 시민 629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을 실시해 대마초·코로나19·지구온난화·GMO(유전자변형작물)·원자력·대중교통·사회운동 등 7가지 논쟁적 위험 문제에 대한 인식을 분석했다.

1월 5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앞에서 탈핵시민행동이 신규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탈핵희망전국순례’에 앞서 출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강선배 기자

연구팀은 참가자를 3가지 문화적 세계관으로 분류했다. △기존 권위와 시장 질서를 중시하는 ‘위계-개인주의형’ △평등과 사회 정의를 우선시하는 ‘평등주의형’ △운명과 외부 통제를 믿는 ‘숙명론형’ 등이다.

이들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위험 판단은 세계관에 따라 체계적으로 달랐다. 위계-개인주의형 응답자는 대마초나 사회운동처럼 기존 질서를 흔드는 활동을 공포스럽고 위험하다고 평가했다. 반면 평등주의형은 원자력·GMO·지구온난화에 높은 위험 인식을 보였다.

이들은 해당 기술이 소수 결정권자가 대다수 시민에게 위험을 부과하는 구조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숙명론형은 대규모 환경 위협에는 무감각한 반면, 개인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대중교통이나 대마초의 위험은 높게 평가했다.

이번 연구가 의미 있는 이유는 이 차이가 만들어지는 경로에 대한 분석이 이뤄졌다는 점 때문이다. 이 논문에 따르면 세계관은 위험 자체를 직접 판단하는 것이 아니었다. 먼저 그 위험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사회적 편익이 있는지’에 대한 평가를 다르게 구성하고, 그 평가가 최종 위험 인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세계관이 위험을 직접 판단하지 않고 먼저 ‘무섭냐·피해가 크냐·이득이 있냐’는 느낌을 다르게 만든 뒤 그 느낌이 위험 판단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논문에서는 위험 항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이 구조(세계관 → 3가지 필터 → 위험 판단)가 위험 인식 차이의 43~65%를 설명했다고 밝혔다.

신규원전자율유치 서생면 범대책위원회는 1월 1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준비된 울산 울주 서생면에 신규 원전을 건설하라”고 촉구했다. 사진 대책위·연합뉴스

즉, 원전 재가동이나 재생에너지 확대를 두고 이해관계자들이 평행선을 달리는 현상은 단순한 정보 부족이 아니라 세계관에 따라 위험 특성을 다르게 귀속시키는 구조적 문제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논문은 문화적 가치관이 위험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효과적인 위험 소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이번 연구의 한계도 있다. 연구 표본이 여성·청년층에 편중됐으며 기관 신뢰나 감정 반응 같은 추가 변인은 분석에 포함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후속 연구에서 신뢰 변인과의 통합 모형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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