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 칼럼
‘인공지능 쓰나미’ 넘어 인간답게 살아남기
불과 5년 전만 해도 “노화를 극복해서 수명을 150세까지 연장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필자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우리 생애에는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답을 많이 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는 그런 일이 내 생애에 일어나도 놀랍지 않다고 답을 하게 된다. 엄청난 기술의 진보가 우리의 상상력의 속력을 넘어설 정도로 질주하고 있어 가히 지식의 쓰나미라고 할 만하다. 그런 경향을 가속화하는 것이 인공지능(AI)이다. 실제로 필자의 연구실에서도 AI 전문가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항노화물질을 디자인하고 실험하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으니 가히 상전벽해이다.
요즘 대학 강의실의 풍경을 고백해 본다. 필자는 지난 30년간 생명과학의 핵심적인 전공과목을 강의해왔다. 강의를 하고 질문을 받고 함께 지식의 바다를 헤엄쳐 나왔다. 강의실을 나설 때면 힘들기보다 기운이 오히려 차오르는 느낌이 들어 ‘천상 선생이 체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의 강의실 풍경은 사뭇 다르다. 강의실에 오는 학생들이 교과서를 가지고 들어오는 경우가 아주 적고, 강의를 들을 때 교수와 눈을 맞추는 학생이 아주 적고, 강의 중에는 물론 강의 후에 남아서 질문을 받겠다고 해도 질문하는 학생이 거의 없다. 강의실을 나설 때마다 기를 빨려 몸이 쪼그라든다는 느낌이 종종 들었다.
짐작컨대, 코로나19의 시대를 건너오면서 사회적 격리를 생활화한 것에 더해 굳이 교수에게 묻지 않아도 궁금한 점은 인공지능으로 다 알아낼 수 있는 시절에 살고 있기 때문인 거 같다. 불편하게 교수에게 질문하기 보다는 AI에서 물어보면 친절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지식의 확장도 가능하기 때문이리라. 이런 면에서 대학에서의 교수는 AI에게 졌다. 강의 그 자체에 있어서는 그렇다.
AI를 이용할 것인가, AI에 눌릴 것인가
학생들은 AI에게 이기고 있을까? 이기는 학생도 있고 그렇지 않은 학생도 있는 것 같다. ‘웃픈’ 에피소드 하나 소개한다. 학기 동안 여러 번의 과제를 수행해 리포트를 제출하고 학기 말에 모여서 시험을 보는 과목이 있었다. 과제를 수행할 때는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시험을 볼 때는 온전히 본인의 지식으로만 치르도록 했다.
대부분 학생은 과제 수행 성적과 기말 필기시험 성적의 상관관계가 높았는데 과제 수행 성적은 뛰어나나 필기시험은 거의 바닥인 경우들도 있었다. 이 학생들의 경우를 보니 필수과목으로 어쩔 수 없이 수강하는 학생들이었다는 점이 선택과목으로 자신의 의지로 수강한 나머지 학생들과 달랐다. 의지를 가지고 AI를 활용해 자신의 지식세계를 확장하는 것이 가능하고 바람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학생의 능력은 늘지 않고 AI만 공부시킨 결과를 초래했음을 알 수 있다.
AI를 이용해 발전할 것인가 아니면 AI에게 눌려서 무기력해 질 것인가 하는 것은 그것을 선택하는 의지에 달려 있다. 스스로 무엇을 궁금해 할 것인가,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하는 것이 아직은 AI가 아닌 우리에게 걸려 있는 핵심과제이자 강점이다.
대학의 강의가 저러하니 이제 대학은 없어져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타당할까? 대학의 강의실 안에서 아주 잘 배워서 더 나은 사람이나 학자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학은 강의만 있는 곳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교류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강의 자체보다 더 중요하게 동료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배우는 곳이다. 사람들의 힘을 합쳐 더 크고 그 전에 없던 지식을 꿈꾸는 곳이다.
강의실에서의 AI의 효능만 보고 대학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일이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아야 한다. 필자가 학장으로 일할 때 코로나19 시대임에도 최대한 규정은 지키면서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굳이 대면으로 진행하고자 했던 것은 사람들 간의 관계가 대학교육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생들이 자기 시간과 노력을 들여 4박 5일씩 지역의 아이들을 가르치러 가는 봉사활동을 다녀와서는 오히려 자신들이 더 많이 배웠다고 할 때 그 뜻을 AI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방식으로 사는 게 살아남는 방법
AI혁명이 가져올 효능이 참으로 크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AI의 긍정적인 측면을 잘 활용하면 엄청난 도움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우려도 크다. 자유의 확대를 약속하는 기술이 무기력의 장치로 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AI에 대한 경계와 성찰이 요구된다. 우리는 인간과 기술이 공존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해야 하는 AI시대에 살고 있다.
AI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속박을 낳을 것인가. 답은 AI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학에게는 지식의 기초체력 강화를 소홀히 하지 않기를 권하고 신입생들에게는 특히 새로운 자리에서 새로운 동료들을 만나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 가기를 권한다. AI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은 인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