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강세 속 쏠림 완화·첨단학과 분산 조짐
지역 의대냐 서울대 공대냐 … 2027년 현 교육과정 마지막, 의대 증원 조정 영향 등 복합 요인
2026학년 정시 기준 전국 의대 지원자는 약 7125명으로 집계됐다. 2025학년 1만518명과 비교하면 3000여명 감소한 수치로, 최근 5년 사이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반면 계약학과 경쟁률은 약 12.77:1로 전년 평균(9.77:1)과 비교해 꽤 높아졌다. 계약학과 정시 모집 인원은 183명에서 194명으로 확대됐지만, 지원자 수는 1787명에서 2478명으로 증가해 모집 인원보다 지원자의 증가 폭이 더 컸다.
정제원 서울 숭의여고 교사는 “자사고와 교육특구 등에서는 여전히 의대 선호가 강하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면 상위권의 의대 쏠림 분위기는 분명히 완화됐다. 예전에는 의대 합격권의 성적을 거두면 무조건 의대에 지원하라고 몰아가는 분위기였지만 최근 들어 달라졌다. 성적과 함께 진로나 적성 등을 고민하면서 계약학과와 첨단학과, 과학기술 특성화대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지원도 많아졌다. 산업 현황이나 사회 분위기가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40대 학부모 세대 가운데 공대 출신이 많아지면서 공학 계열 진로에 대한 인식이 과거보다 긍정적으로 바뀐 점도 영향을 미쳤다”라고 분석했다.
2026학년 의대 정원 내 기준 경쟁률은 25.28:1로 2025학년 24.04:1과 비교해 소폭 상승했다. 다만 의대 증원 이전인 2024학년의 경쟁률 30.55:1과 비교하면 경쟁률 하락 폭이 크다.
수시 경쟁률 역시 서울권 주요 대학에서 전반적인 조정 흐름이 나타났다. 서울대 의대는 2025학년 약 3.56:1이었으나 2026학년에는 약 3.12:1로 소폭 하락했다.
연세대 의대도 2025학년 11.82:1에서 2026학년 9.47:1로, 고려대 의대 역시 같은 기간 10.24:1에서 8.95:1로 낮아졌다. 서울 소재 의대를 중심으로 경쟁률이 일정 부분 조정되는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반면 지방 의대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의대 모집 인원은 2024학년 수준으로 줄었지만 정부가 지역인재 선발 비율을 60% 수준으로 확대하도록 권고하면서 경쟁률이 상승하거나 보합세를 유지한 대학이 대다수였다.
지난해 의대 경쟁률 하락은 어려웠던 수능과 2027학년이 현 교육과정의 마지막이라는 점, 그리고 증원 취소의 여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무리한 상향 지원보다는 합격 가능성을 높이는 지원을 택한 것으로, 과열 이후 정상화되는 과정이라는 해석이 대다수다. 여기에 의대 증원에 따른 사회적 논란이 거셌던 만큼 의정 갈등에 대한 피로감과 입시 불확실성으로 의대보다는 다른 선택지를 택한 학생이 늘었다는 견해도 있다.
오창욱 광주대동고 교사는 “지역에서는 지역 의대와 서울대 공대나 계약학과를 함께 고려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올해 서울대 공대와 가톨릭관동대 의대에 합격한 학생은 서울대 공대를 선택한다고 했다. 그런데 전남대 의대에 충원 합격하면서 최종적으로 전남대 의대를 선택했다. 거주하는 지역의 의대에 합격한 학생은 대부분 해당 의대를 선택한다. 지역에 따라 양상은 다르겠지만 체감상 의대 선호도 자체가 약해졌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라고 설명한다.
◆계약학과 필두로 공대 추격 본격화 = 2026학년 정시 합격선을 보면 의대가 여전히 최상위권을 형성하고 있지만 일부 구간에서는 상위권 공대와 점수대가 겹치는 현상이 나타났다.
서울 주요 대학의 의대 합격선은 정시 기준으로 국어 수학 탐구 백분위 평균이 통상 98~99 수준에서 형성된다. 지방권 의대의 경우 백분위 평균 97~98선에서 조성되며, 일부 의대는 전년 대비 소폭 하락해 백분위 95~96에서 합격선이 형성됐다. 이는 모집 인원 조정과 지원자 감소가 반영된 결과다.
반면 서울대 공대 주요 학과, 특히 전기정보공학부와 컴퓨터공학부 등의 합격선은 2026학년 백분위 평균 97~98 수준에서 형성됐다.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고려대 반도체공학과 등의 계약학과도 적은 모집 인원 대비 지원이 집중되면서 일반 공학 계열보다 높은 합격선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일부 지역 의대와 상위권 공대 계약학과의 합격선이 겹치는 구간이 나타났다.
허 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여전히 최상위권에서는 의대 선호도가 독보적이지만, 중상위권 의대와 최상위 공대·계약학과 간 점수대 격차는 일부 구간에서 좁혀졌다. 점수대가 겹치는 구간이 확대되면서 지역이나 학생의 상황에 따라 선택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며 “수도권에서는 지방 의대보다 상위권 대학의 계약학과나 공대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확실히 강해졌다”고 설명한다. 의대는 진학 후 전문의가 되기까지 장기간의 수련 과정이 필요하지만 계약학과는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 취업이 연계된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도체 호황에 계약학과 상승 = 계약학과는 대학과 기업이 협약을 맺고 운영하는 학과로, 일정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해당 기업에 취업이 보장된다는 강점이 있다. 최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회복과 성과급 확대 소식이 이어지면서 이공 계열 지망 최상위권의 관심이 집중됐고 의대 다음으로 자연 계열 최상위권의 지원이 몰리는 모양새다.
대학별 수시 지원 상황을 살펴보면 과학기술 특성화대학을 제외한 9개교의 대기업 계약학과 14곳의 평균 경쟁률은 20.73:1에 달했다. 특히 논술전형 경쟁률은 서강대 177.00:1, 한양대 154.50:1, 성균관대 106.20:1로 모든 대학이 100:1을 크게 웃돌았다.
기업별로 보면 SK하이닉스 계약학과(30.98:1)가 삼성전자 계약학과(18.33:1)를 크게 앞섰다. 이는 최근 SK하이닉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도 있지만 해당 기업 계약학과의 모집 인원이 삼성전자 계약학과의 3분의 1 수준에 그쳐 경쟁률 상승 폭이 더 커 보이는 측면도 있다.
정시에서도 채용 연계형 계약학과의 경쟁률이 눈에 띄게 상승했다. 삼성SDI 채용 연계형 계약학과인 성균관대 배터리학과는 신설 학과임에도 계약학과 중 가장 높은 46.17:1(12명 모집, 554명 지원)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 계약학과인 한양대 반도체공학과와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도 각각 11.8:1, 9: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과학기술 특성화대학 반도체 계약학과의 경쟁률도 전반적으로 상승했다. 특히 유니스트는 2026학년 수시에서 35명을 모집한 반도체공학과에 2468명이 지원해 70.51: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과학기술 특성화대학은 수시 위주로 신입생을 모집해 정시 선발 인원은 5~15명에 불과하다. 정시에서 삼성전자 채용형 계약학과를 운영하는 디지스트와 유니스트도 각각 89.0:1, 59.20:1의 경쟁률을 보였다.
에너지 분야에 특화된 켄텍은 2026학년 경쟁률이 2022학년 개교 이래 최고치인 24.18:1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들 대학은 연구 중심 교육과 높은 취업 경쟁력으로 인해 상위권 수험생의 선호도가 꾸준히 높았다. 5개 과학기술원의 정시 경쟁률도 77.08:1(63명 모집, 4856명 지원)을 기록해 작년 73.21:1(70명 모집, 5125명 지원)과 비교해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과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의 성장으로 이공계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과학기술 인재의 중요성이 커졌다. 과학기술 특성화대학은 일반대학과 달리 수시 지원 횟수 제한(6회)에 포함되지 않아 수험생의 부담이 적은 것도 경쟁률 상승의 요인이다”라고 밝힌다.
◆컴퓨터공학 주춤, AI융합학과 선전 = 2026학년 대학 입시에서 컴퓨터공학과는 경쟁률이 다소 주춤한 반면 인공지능 관련 학과는 상승세를 보였다. 컴퓨터공학과와 AI 관련 학과는 모두 컴퓨터 기술을 기반으로 하지만 교육 내용과 연구 방향에서 차이가 있다.
실제로 카이스트는 국내 최초로 AI 단과대학을 신설해 2027학년부터 운영하고 지스트, 디지스트, 유니스트 등 다른 과학기술 특성화대학도 AI 단과대학 설립을 예고했다. 서울대 역시 2027학년 첨단학과 정원을 185명 늘리는데, 이 중 100명을 융합AI 광역 모집 단위로 선발할 계획이다.
경쟁률을 보면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서울시립대 첨단인공지능전공은 2025학년 정시 경쟁률이 16.2:1(5명 모집, 81명 지원)이었는데 2026학년에는 36.0:1(3명 모집, 108명 지원)로 크게 높아졌다. 인공지능학과도 5.5:1(8명 모집, 44명 지원)이었던 경쟁률이 7.2:1(17명 모집, 129명)로 상승했다. 고려대 인공지능학과는 2025학년 4.0:1(40명 모집, 161명 지원)이었던 경쟁률이 5.5:1(40명 모집, 219명 지원)로, 숙명여대 인공지능공학부도 6.1:1(11명 모집, 67명 지원)이었던 경쟁률이 7.3:1(12명 모집, 88명 지원)로 올랐다.
지역 거점 국립대와 지역 대학에서도 AI 관련 학과에 대한 선호가 눈에 띈다.
경북대는 전자공학부 전자공학부(인공지능전공) 컴퓨터학부(심화컴퓨팅전공)와 컴퓨터학부(인공지능컴퓨팅전공)로 세분화해 선발한다. 경쟁률은 전자공학부 4.4:1(66명 모집, 296명 지원) 전자공학부(인공지능전공) 8.0:1(16명 모집, 128명 지원)이었다. 특히 전자공학부(인공지능전공)는 2025학년 3.8:1(18명 모집, 69명 지원)에서 경쟁률이 크게 상승했다. 컴퓨터학부(심화컴퓨팅전공)의 경쟁률은 5.7:1(22명 모집, 127명 지원), 컴퓨터학부(인공지능컴퓨터전공)의 경쟁률은 6.6:1(10명 모집, 66명 지원)이었다.
2027학년 대입은 현 입시 체제의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산업 수요 기반으로 전공을 선택하는 분위기가 향후 전공 선택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인공지능의 발전과 산업 구조의 변화 속도를 고려하면 현재의 인기 학과가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도 같은 위상을 유지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전문가들은 “전공 선택의 출발점은 ‘지금 무엇이 인기인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민경순 리포터 hellela@naeil.com
차염진 기자 yjcha@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