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10개 만들기, 사립대 100개 죽이기 되면 안돼”
이기정 대교협 회장 취임 일성
중소 지역 사립대와 상생해야 … 등록금 대학 자율성 줘야
이기정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신임 회장은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에 대해 완곡하지만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국립대 편중 지원이 자칫 지방 사립대 고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그는 지난 9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와 관련 거점국립대 중심의 협력 체계를 통해 지역사립대와 중소대학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세종청사 내 식당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 정책은 거점국립대 10개만을 살리자는 정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거점국립대가 지역의 앵커 대학이 되어 인근의 중소 규모 사립대와 국립대, 그리고 수도권 연구중심대학까지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으로 인해 지역대학의 존립이 어려워질 것이란 일부 우려에 대해서 그는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자칫 지역의 중소규모 사립대 100개 죽이기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도 하고 있다”며 “지역의 균형발전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확보시키자는 본 취지를 잊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역에서 대학 하나가 사라지면 그 지역의 소멸은 엄청나게 빨리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역의 중소규모 대학과 국공립대와 연결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 회장은 거점국립대와 지역대학 간 협력 모델의 하나로 인공지능(AI) 활용을 꼽았다. 그는 “AI는 특정 학과나 단과대학의 영역이 아니라 모든 학문분야를 아우르는 공통 기반 기술”이라며 “인문·사회·예술 분야까지 폭넓게 연결되는 교육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재정이 대거 투입될 거점국립대가 지역대학과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AI 같은 첨단 분야는 중소규모 대학이 독자적으로 투자하기 어려운 구조다. 거점국립대 중심의 공동 프로그램이나 공동 인프라를 통해 지역대학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AI 시대 대학 교육의 핵심 역량으로 ‘질문 능력’을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교육은 답을 찾는 능력보다 질문을 만드는 능력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며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질문을 만들어내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 동료교수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 교수는 자신의 강의내용을 확인하는 시험 대신, ‘강의내용을 바탕으로 질문 5가지를 뽑아보라’는 문제를 시험에 냈다. 질문을 보면 강의를 잘 들었는지 대충 들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학생들은 교수 본인이 30여년간 같은 강의를 하면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질문들을 써내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이 회장은 “이 수업 관련해, 자신이 질문을 뽑은 이유로 10분 발표를 했는데 대기업 임원들이 서로 채용하고 싶다고 했다”며 “앞으론 질문하는 능력을 길러내는 것이 대학 교육에서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학 재정 문제도 거론했다. 그는 “국공립대와 사립대를 막론하고 대학들이 가장 크게 체감하는 문제는 재정”이라며 “고등교육 재정 확충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 실제 성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전임 회장단이 정치권과 정부를 상대로 고등교육 재정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고 일정 부분 숨통이 트였다”며 “이를 바탕으로 보다 본격적으로 추진해서 구체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된 등록금 문제에 대해 그는 “대학 등록금이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인상 폭이 전체 물가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은 매우 낮다”며 “대학은 학생들과 충분히 논의해 합리적인 수준에서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4일 취임한 이 회장 임기는 오는 2028년 2월까지다.
차염진 기자 yjcha@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