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노동부 맞손…원청·하청 격차 줄이기 첫 공동실험

2026-03-11 13:00:02 게재

노동부가 원·하청 자율교섭 길 트면

공정위는 ‘거래상 꼼수보복’ 막는다

두 부처 처음부터 끝까지 ‘정보공유’

공정거래위원회와 고용노동부가 ‘원·하청 동반성장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10일부터 시행된 개정 노조법을 현장에 안착시키고, 원청의 비용 떠넘기기와 하청의 협상력 약화를 동시에 막겠다는 취지다. 이번 협약은 노동정책과 공정거래정책이 따로 움직이던 기존 틀을 깨고, 교섭권과 거래질서를 한 묶음으로 다루는 첫 공식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11일 공정위 이태휘 하도급조사과장은 “이번 협약의 핵심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다. 노동부는 원·하청 교섭이 실제로 돌아가도록 지원하고, 공정위는 그 교섭결과가 납품단가 인하나 안전비용 전가 같은 불공정 거래로 무력화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을 중에서도 을’인 하청업체의 ‘말할 권리’는 노동부가, ‘버틸 힘’은 공정위가 뒷받침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노란봉투법 시행속 비용 떠넘기기 막는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주병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원·하청 동반 성장을 위한 고용노동부-공정거래위원회 업무협약식에서 협약서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원청의 이중전략’ 차단한다 = 개정 노조법 시행으로 하청 노동자는 자신의 근로조건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원청과도 대화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갖게 됐다. 하지만 법만 바뀐다고 현장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원청이 교섭 테이블에는 나오되 뒤로는 납품단가를 깎거나 안전비용을 하청에 떠넘기면 그만이다. 이번 협약은 그 허점을 메우기 위해 나왔다.

두 부처는 협약문에 네 가지 내용을 담았다. △원·하청 자율교섭 촉진 △공정거래질서 확립을 위한 합동점검 △위험 전가 예방 △피해구제를 위한 지원·감독 강화다. 특히 임금체불이나 납품단가 인하, 안전비용 전가 부당특약 같은 구체 항목까지 정보공유 대상으로 못 박았다.

이번 협약으로 기대되는 첫 번째 효과는 원청의 이중전략을 막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원청이 겉으론 ‘동반자관계’를 강조하면서 실거래 관계에서는 단가·물량·계약 조건으로 하청을 압박하는 일이 반복됐다. 노동부가 교섭을 지원해도 공정위가 거래구조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원청은 다른 통로로 비용을 전가할 수 있었다. 반대로 공정위가 단가 후려치기를 잡아도 노동부가 교섭질서를 만들지 못하면 실제 임금격차는 줄지 않았다. 이번 협약은 이같은 양대 빈틈을 한꺼번에 막겠다는 정책설계인 셈이다.

◆노동부 역할은 ‘교섭 실질화’ = 특히 제조업과 건설업, 물류처럼 다층 하도급이 넓게 깔린 업종에서 정책효과가 더 클 수 있다. 예를 들어 원청이 하청 노동자 처우개선 요구를 받은 뒤 납품단가를 낮추면 하청업체는 임금인상 재원을 확보할 수 없다. 이때 노동부는 교섭지원을, 공정위는 단가 인하의 부당성을 동시에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하청업체와 노동자가 각기 다른 기관 문을 두드리며 시간을 허비할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이다.

개정 노조법이 현장에 안착하려면 누가 사용자에 해당하는지, 어느 범위까지 교섭 대상인지, 분쟁이 생기면 어디서 빨리 판단할지부터 정리돼야 한다. 노동부는 전문가 컨설팅을 통해 상생협력 모델을 만들고, 단체교섭 판단지원위원회 검토를 바탕으로 사용자성 유권해석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지방고용노동청과 지방노동위원회를 연계해 현장지도도 강화한다.

이 조치는 현장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직접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 원·하청 교섭은 법리 다툼이 길어지면서 갈등이 커지는 경우가 많았다. 사용자성이 빨리 정리되면 교섭 자체를 둘러싼 소모전이 줄어든다. 파업이나 손배 논란으로 번지기 전 대화국면에서 문제를 정리할 여지도 생긴다. 기업 입장에서도 누가 책임 주체인지 불분명한 상태로 시간만 보내는 부담이 작아진다.

◆공정위는 ‘거래상 보복 방지’ = 공정위가 협약에서 맡은 기능은 더 직접적이다. 납품대금 연동제 안착을 비롯해 대금 미지급 점검, 부당 납품단가 인하 감시, 기술탈취 점검, 안전비용 전가 부당특약 제재 강화가 핵심이다. 그동안 하청 현장의 가장 큰 불만은 “노동 조건을 올리면 다른 경로로 다시 빼앗긴다”는 것이었다. 공정위는 바로 그 구조를 겨냥했다.

특히 ‘안전비용 전가 차단’은 효과가 클 수 있다. 원청이 산업재해 예방 비용을 계약서 특약으로 하청에 떠넘기면 하청업체는 인건비와 안전비를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결국 안전투자 축소나 임금 압박으로 이어진다. 공정위가 이를 부당특약으로 보고 과징금 수준까지 높이겠다고 한 것은 단순한 거래 규제를 넘어선다. 산재 예방과 임금 보호를 동시에 겨냥한 조치다.

이번 협약의 실무적 가치 중 하나는 정보 공유다. 지금까지 임금체불은 노동부 사건이고, 납품단가 인하는 공정위 사건이었다. 또 안전비용 전가는 산업안전 또는 하도급 사건으로 흩어져 있었다. 기관별로 쪼개진 정보는 각각의 위법 행위는 잡아도 원청의 구조적 행태는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앞으로 두 부처가 임금체불, 단가인하, 안전비용 전가 정보를 맞춰 보면 한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비용 떠넘기기 연쇄 구조’가 더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 이 효과는 피해 구제 속도와도 연결된다. 그만큼 하청업체의 현금흐름 악화와 고용 불안을 줄일 여지가 커진다.

◆협상력 보장 효과 기대 = 이번 협약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하청 노동자만이 아니라 하청업체의 협상력도 함께 다룬다는 점이다. 하청업체가 원청에 지나치게 종속돼 있으면 노동자 요구를 수용할 여력 자체가 없어진다. 반대로 노동자의 교섭권이 약하면 하청업체는 원청과의 거래 압박을 내부 인건비 절감으로 버티려 한다. 두 부처는 이 구조를 “불공정 거래가 노동 격차를 심화시키고, 약해진 노동의 권리가 다시 불공정 거래를 고착화하는 악순환”으로 규정했다. 주병기 위원장의 표현 그대로다.

이런 점에서 이번 협약은 단순한 부처 협력 문서를 넘어선다. 그동안 한국의 원·하청 문제는 ‘거래질서’와 ‘노사관계’라는 두 영역으로 나뉘어 논의됐다. 이번에는 두 영역을 하나의 정책 으로 묶었다. 원청의 가격 결정과 계약조건, 안전비 분담, 사용자성 판단, 단체교섭 지원을 하나의 틀 안에서 다루겠다는 뜻이다.

산업현장 중 가장 먼저 달라질 수 있는 곳은 조선·자동차 부품·건설·플랜트·물류다. 이 업종들은 원청의 발주 구조와 하청의 인건비 부담이 촘촘히 연결돼 있다. 앞으로 하청 노조가 원청과 교섭을 추진할 때, 원청은 단순히 “법적으로 사용자 아니다”라면서 버티기 어려워질 수 있다. 노동부의 유권해석 지원과 노동위원회의 신속 판단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동시에 원청이 교섭부담을 하청 거래조건 악화로 돌리는 것도 부담이 커진다. 공정위가 납품대금 연동제 이행, 단가 인하, 대금 미지급, 기술탈취, 부당특약을 함께 점검하겠다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특히 중대재해 예방비용을 하청에 밀어 넣는 관행은 이번 협약 이후 가장 먼저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협약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실제 효과는 합동 점검이 얼마나 자주, 얼마나 깊게 이뤄지는지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이번 협약은 분명한 전환점이다. 노동부는 교섭을 제도화하고, 공정위는 거래 보복을 억제한다. 두 축이 동시에 움직이면 하청 노동자의 목소리와 하청업체의 생존력이 처음으로 같은 정책 틀 안에서 보호될 수 있다. 김영훈 장관이 말한 “원·하청이 함께 성장하는 노동시장 구조”가 추상적 구호에 머물지 않으려면 바로 이런 공동 집행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홍식 한남진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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