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미증유 위기에 정쟁할 겨를이 있나
미-이란 전쟁 여파로 전세계의 경제와 안보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고 원달러환율은 1500원선을 위협하고 있다. 금융시장도 크게 흔들린다. 주가가 큰 폭으로 등락을 거듭하고 투자심리도 얼어붙으면서 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에너지 수입과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고유가·고환율·고물가가 겹치는 ‘3고 충격’에 금융시장 불안까지 더해지는 복합위기에 직면하는 양상이다.
중동 위기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다시 드러낸다. 우리나라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은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호르무즈 해협은 그 핵심 통로다. 전쟁이 장기화하거나 해협 봉쇄가 현실화할 경우 유가상승은 물가상승과 성장둔화, 경상수지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금융시장 불안까지 겹치면 기업 투자와 소비 심리가 동시에 위축될 수 있다.
주가급락과 환율급등이 반복되는 상황은 실물경제로 충격이 빠르게 전이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럽다. 결국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것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그리고 취약계층일 것이다.
안팎으로 닥친 경제·안보 복합위기
출범 이후 실용주의적 접근으로 국정에서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는 이재명정부이지만 지금 닥쳐오는 파고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정부는 에너지 수급 안정과 민생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비축유 관리와 수입선 다변화, 취약계층 중심의 유가 부담 완화 정책을 신속히 가동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금융시장 안정 대책도 병행해야 한다. 외환시장과 자본시장의 과도한 변동성을 관리하고 투자심리를 안정시키는 정책적 대응이 중요하다.
나아가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와 산업구조 전환이라는 중장기 과제도 서둘러야 한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반복되는 에너지 취약성을 줄이는 것이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한다는 사실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안보상황도 녹록지 않다. 미국이 중동전쟁에 군사력을 집중하면서 주한미군 일부 전력이 이동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국내 미군기지에 배치됐던 패트리엇 방공체계가 중동으로 이동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10일 국무회의에서 “그로 인해 우리의 대북 억지 전략에 심각한 장애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면서도 “국가방위는 궁극적으로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중요한 현실을 일깨운다.
한미동맹은 여전히 한국 안보의 핵심축이지만 국제분쟁이 확대될 경우 동맹 전력 역시 다른 전장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기 어렵다는 점이다. 결국 한국의 안보전략은 동맹에 기반을 두되 동시에 자주적 방위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균형을 잡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핵을 보유한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와 밀착해가는 상황에서 결코 쉬운 과제는 아니다.
그런데 정작 국내 정치권의 모습은 이러한 심각한 위기와 거리가 있어 보인다.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정쟁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집권 여당은 이재명 대통령 공소취소와 같은 정치적 논쟁 사안을 앞세우기보다 초당적으로 경제와 안보위기에 대응하는 데 정치력을 집중해야 한다. 야당 역시 정부의 위기 대응에 무조건적인 발목잡기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을 비롯해 일부 보수 진영에서 “이란 다음은 북한 차례”라는 식으로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이 이어지는 것도 매우 부적절하다. 북한은 이미 상당한 규모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군사대치 지역이다. 상대 지역으로 미사일과 자폭드론을 주고받는 상황은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정쟁 멈추고 초당적 위기 대응을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도 이란과 단순 비교할 수 없게 한다. 한반도의 지정학은 중동과 전혀 다르다. 감정적 구호나 정치적 선동이 아니라 신중하고 냉정한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세계질서가 요동칠수록 정치권이 여야를 초월해 중심을 잡아야 한다. 지금 한국 정치에 필요한 것은 정쟁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복합적 위기에 함께 대응하려는 책임 있는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