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세정기술 빼돌린 에스엘티 “30억 배상”

2026-03-11 13:00:03 게재

‘세메스’ 설계도 유출해 장비 제작 후 중국 수출

1심 재판부 “역설계 어려운 기술, 영업비밀 침해”

반도체 장비기업 ‘세메스’의 핵심 기술을 빼돌려 장비를 제작하고 이를 중국에 수출한 업체와 전직 직원들에게 법원이 손해배상 책임을 물었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62부(이현석 부장판사)는 지난달 10일 세메스가 에스엘티 법인과 전직 직원 등 7명을 상대로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들은 공동으로 3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세메스 기술자료의 사용·공개를 금지하고 관련 자료 폐기도 명령했다.

세메스는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에 사용되는 핵심 장비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삼성전자 주요 협력사다.

판결에 따르면 세메스에 근무하던 직원들은 퇴사 전 회사 내부 기술자료를 휴대전화에 저장하거나 개인 이메일로 전송하는 방식으로 반출했다. 이들은 세정장비 설계도면과 소프트웨어 소스코드, 작업표준서 등 핵심 기술자료를 외부로 유출한 뒤 이를 에스엘티측에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에스엘티와 전직 직원들은 역할을 분담해 세정장비 제작에 나섰다.

이들은 2020년 8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총 24대의 반도체 세정장비를 생산했다. 이 가운데 14대는 중국 경쟁업체 또는 중국 국영 반도체 연구기관에 수출했다. 수출 규모는 5982만달러(한화 710억원)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이런 행위가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세메스와 협력사 직원의 비밀유지 의무를 위반하도록 유도해 기술을 취득하고, 퇴사 후 반환하지 않고 자료를 계속 사용한 점을 지적했다.

피고들은 재판과정에서 중고 장비가 거래되는 상황을 근거로 역설계 가능성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해당 세정기술은 반도체 장비 제조·판매 사업의 핵심 기술”이라며 “다수의 부품과 공정 기술이 정밀하게 결합된 장비로, 단순 역설계만으로 개발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세메스가 2000년대 중반 습식 세정장비 개발 이후 10년 이상 연구개발을 통해 기술을 축적한 반면 에스엘티는 설립된 지 2년도 채 안된 상태에서 장비 제작과 수출을 진행한 점을 들어 원고 기술을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들이 세정장비와 부품 수출로 약 1193억원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되지만 해당 매출 전체가 영업비밀 사용으로 발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부정경쟁방지법상 ‘상당한 손해액 인정’ 규정을 적용해 배상액을 30억원으로 정했다.

한편 관련 형사사건 재판에서 주요 피고인들은 실형을 선고받거나 유죄가 확정된 상태다. 이번 판결에 불복해 세메스와 에스엘티 양측은 지난 4일 항소했다.

박광철 기자 pkcheol@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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