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폭발 15년…원자력 부흥 나선 일본
3.11 대지진 후 ‘원전 제로’, 지금은 15기 재가동…대미투자로 원전 진출, 국가전략산업 육성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가 폭발했다. 미증유의 천재지변에 한없이 나약했던 사람들은 원전 폭발에 따른 방사능 누출이라는 ‘인재’ 앞에서 분노했다.
당시 민주당 정부는 전국 54기의 원전에 대해 전면 가동을 중단하는 ‘원전 제로’ 정책을 결정했다. 하지만 아베정권 이후 2015년부터 순차적으로 재가동에 나서면서 현재 전국에서 15기가 가동중이다.
2040년까지 원전 비중 20%로 상향
일본정부는 지난달 ‘에너지기본계획’을 발표하고 2040년까지 원자력 비중을 20%까지 늘리겠다고 했다. 미쓰비시종합연구소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전체 발전량에서 원전 비중은 9.7% 수준이다. 올해는 10.1%까지 확대될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 전국 각지에 있는 원자력발전소가 빠르게 재가동에 나서고 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전세계 최대 원전단지인 니가타현 가시와자키 원전 6호기가 올해 1월 14년 만에 재가동을 시작했다. 이 원전은 오는 18일부터 본격적인 상업운전을 시작한다.
이에 앞서 2024년 오나가와 원전 2호기와 시마네원전 2호기도 재가동을 시작했다. 2027년에는 홋카이도전력이 관리하는 원전이 재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일본전기사업연합회 등에 따르면 일본의 원전은 동일본 대지진 당시 54기에 달했다. 대지진 이후 21기는 노후화 등을 이유로 폐기됐다. 현재 건설중인 원전을 포함해 36기 가운데 15기가 가동중이다. 9기는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재가동 심사를 받고 있고, 3기는 허가를 신청한 상태다. 현재 전체 원전 발전용량(6622만kW) 가운데 약 20%(1325만kW)가 가동중이다.
하지만 일본정부가 목표로 하는 원전 비중 확대가 순조롭게 이뤄질지는 불확실하다는 관측이다. 자연에너지재단이 추산한 자료에 따르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안전심사를 신청하지 않은 발전소를 포함해 기존 원전이 모두 재가동되어야 한다. 현재 건설중인 3기도 가동해야 한다. 문제는 기존 원전 가운데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곳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원전 규제위는 올해 초 주부전력이 재가동을 위해 신청한 하마오카 원전(시즈오카현)에 대해 “안전규제에 대한 폭거”라면서 심사를 백지화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주부전력은 예상되는 지진의 진동과 쓰나미 등의 크기에 대해 과소평가한 데이터를 기초로 심사를 신청했다.
도카이제2원전(이바라키현)은 반경 30㎞ 권역에 90만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상황에서 지자체가 피난 계획을 제대로 책정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쓰루가원전2호기(후쿠이현)도 원자로가 위치한 곳에 활성단층이 있을 가능성을 이유로 심사과정에서 불허됐다.
자연에너지재단 관계자는 “심사중인 원전 모두가 재가동된다는 보장이 없고, 신청하지 않은 원전도 많다”며 “원전을 새롭게 건설하는 것도 허들이 높아 2040년까지 정부의 목표 달성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자력 폐기물 처리도 문제다. 일본은 지난 60년 가까이 사용한 원전폐기물이 저장용량의 80%에 달해 새로운 처리장소를 모색하고 있지만 지역주민의 반대 등으로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정부는 최근 도쿄에서 1900㎞ 떨어져 있는 태평양 외딴섬 미나미토리시마에 처리장 건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왜 원자력발전에 다시 목을 매나
일본정부가 ‘원전 제로’ 정책을 폐기하고 에너지의 주요 원천으로 원자력을 고집하는 데는 국가안보적, 경제·산업적 이유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과 함께 자국내 모든 원전 가동을 중단하면서 에너지원은 석유와 가스 등 화석연료로 집중됐다. 값싼 에너지원인 원전을 중단하고 석유와 가스에 의존하는 경제는 대규모 무역적자로 이어졌다. 2011년 무역적자는 약 2조5000억엔 규모에 달했다. 제2차 석유위기 당시인 1980년(-2.6조엔) 이후 31년 만이었다. 이듬해인 2012년은 무역적자가 약 6조9300억엔으로 더 확대됐다.
무역수지가 적자로 전락한 데는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수입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석유와 석탄, 가스 등 화석연료 수입액은 대지진 직전인 2010년 약 18조엔 규모에서 2011년 21조엔으로 증가한 이후 2012년(24조엔)과 2013년(27조엔)까지 급증했다.
2010년대 후반 에너지가격이 일부 안정되면서 수입액은 감소했지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다시 급증하면서 30조엔 전후까지 급증했다. 같은 해 무역수지 적자규모도 약 19조엔까지 증가했다. 도요타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회장의 “자동차 팔아서 에너지 수입한다”라는 말처럼 완성차 및 부품 수출액과 에너지 수입액이 비슷한 수준이다.
결국 일본정부는 현재 10% 안팎인 원전 비중을 20% 수준까지 높이면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수입 비중이 줄어 무역수지 적자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계산인 셈이다. 예컨대 일본의 화석연료 비중을 현재 60~70%에서 10%p 가량 줄여 에너지 수입량이 감소하면 수입단가 등의 변수는 있지만 지난해 기준 약 1조엔(약 9조3000억원) 가량 절감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원전 확대는 국가 및 산업안보와도 직결된다. 일본전력운영추진기구(OCCTO)는 올해 초 2035년 전력수요량이 지난해 대비 5.3%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용도별 전력수요는 인구감소 등으로 가정용은 6% 가량 줄지만, 데이터센터 등으로 산업용 전력수요는 18%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지금처럼 화석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으면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일본으로서는 지정학적 환경에 따라 안보상 심각한 위협에 놓인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에너지청이 발간하는 ‘종합에너지통계’에 따르면 전체 발전에서 화석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67.5%에 달한다. 재생에너지(23.0%) 비중이 아직 낮은 가운데 원자력(9.4%)은 동일본 대지진 직전인 2010년(25.1%)의 절반도 안된다.
다카이치 “사람 안죽어, 원전 가동해야”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후쿠시마 원전 폭발과 관련 악연이 있다. 그는 자민당 정조회장을 맡고 있던 2013년 원전 폭발로 죽은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재가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지역주민과 야당의 반발로 발언을 철회하고 사과한 전력이 있다. 그만큼 원자력발전에 대한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최근 대지진 15주년을 앞두고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안전성이 확인된 원전 재가동을 진행한다는 것과 함께 차세대 혁신고로의 조기 실현을 위해 정부가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정부는 원자력 발전소 건설 등에 필요한 자금을 공적기관이 대출할 수 있도록 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이달 중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다카이치 내각은 원전 산업을 국가전략 산업 17개 투자 분야로도 확정했다.
최근 일본정부와 미국이 대미투자 제2탄으로 원전 사업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있다는 분석이다.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은 1000억달러(약 148조원) 규모의 2차 대미투자사업 핵심으로 원전이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투자 금액에서 가장 큰 사업은 미국 웨스팅하우스 원자로 건설 등이다. 요미우리신문은 “3월 19일경으로 예정된 미일 정상회담에 맞춰 공식 발표가 추진되고 있다”며 “금액이나 구체적인 사업 안건은 양국간 조율을 거쳐 변동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일본정부와 원전 업계는 지난 15년 동안 사실상 중단됐던 관련 산업의 부흥 기회로 미국 진출을 노리고 있다. 특히 △미국내 원자로 건설 △차세대 소형모듈 원전(SMR) 시장 진출 △미일 에너지 및 안보협력 강화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은 옛 도시바가 2006년 미국 원전 업체 웨스팅하우스를 매수하면서 야심차게 나섰지만 커다란 실패를 맛봤다. 웨스팅하우스가 2017년 파산신청을 하면서 도시바는 당시 7000억엔(약 6조60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봤고, 이는 그룹이 해체되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
일본은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미쓰비시중공업 △도시바 △IHI 등의 원전 장비 등에 강한 기업이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히타치와 같은 SMR 기술에서 상당한 역량을 갖고 있는 기업도 진출할 태세다. 히타치는 현재 미국 GE와 합작한 히타치-GE 원자력에너지를 통해 SMR을 개발중이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