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휘발유값까지 내려갈까…관건은 ‘가격 반영율’
유가급등하자 정부 ‘최고가격제’ 추진 … 체감 빠르지만 공급·재정이 열쇠
12일 정부가 국제유가 급등에 대응해 석유제품 ‘최고가격제’ 도입을 추진한다. 정유사가 주유소에 파는 공급가격에 상한을 두는 방식이다. 정부는 이르면 주중 시행 방침을 밝혔다. 다만 주유소 가격이 실제로 내려갈지, 기름이 모자라지는 않을지, 손실 보전 재원이 얼마나 들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전날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회의에서 “2주 단위로 점검하며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휘발유 가격이 적정 수준으로 안정되면 제도 해제를 검토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구윤철 “소매가 직접 통제는 어렵다” = 정부가 손대려는 지점은 주유소 가격표가 아니다.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이다. 정부는 주유소가 1만 곳이 넘고 임대료나 물류비·인건비가 제각각이어서 주유소 판매가격을 한꺼번에 통제하기 어렵다고 봤다. 그래서 가격 형성의 출발점인 ‘정유사 공급가’에 상한을 두겠다는 구상이다. 상한을 어떻게 정할지도 관심사다. 재경부 안팎에서는 아시아 석유제품 거래의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현물가격 엠오피에스(MOPS)에 최소 정제마진을 더해 상한을 정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이 기준을 2주마다 다시 계산해 국제 시세 변화도 반영하겠다는 게 구 부총리의 설명이다.
이 제도가 성공하려면 정유사 공급가 인하가 주유소 가격 인하로 이어져야 한다. 공급가가 내려가도 주유소 가격이 그대로면 소비자는 변화를 못 느낀다. 정부는 알뜰주유소와 직영주유소 등 비교적 값이 낮은 유통망을 활용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 비중이 전체의 약 10% 수준이어서 시장 전체를 끌어내리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지역별 가격 흐름을 공개하고 현장 점검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지원한 만큼 내려갔는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상한이 낮으면 품절사태 올수도 = 가격 상한의 가장 큰 부작용은 공급부족이다. 상한이 시장가격보다 낮게 잡히면 정유사가 국내 판매를 줄이고 수출로 돌릴 유인이 생길 수 있다. 정부는 매점매석 금지와 단속을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단속만으로 물량이 늘지는 않는다. 국내 공급 의무와 재고 관리가 실제로 작동하는지가 관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유업계는 손실 보전의 속도와 기준을 주시한다. 정부는 가격 통제로 손실이 생긴 사업자에게 손실 보전이 가능하다는 법 근거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보전이 늦거나 기준이 불명확하면 정유사는 공급을 줄일 유인이 커진다. 반대로 보전이 넉넉하면 재정 부담이 커진다.
전날 국회 재정위 회의에서도 기준가격 산식 공개 요구가 나왔다. 지역별 가격 차이를 어떻게 반영할지도 쟁점이 됐다. 손실 보전이 추경 논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구 부총리는 취약계층과 피해업종 지원을 함께 추진하겠다고만 설명했다.
정부 대책은 최고가격제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유류세 조정 같은 세금 카드가 거론된다. 화물운수 등 유가에 민감한 업종에 대한 지원대책도 유력하다. 일부 언론은 경유 가격이 1700원을 넘는 구간의 70%를 지원해 리터당 최대 183원을 보조하는 방식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런 지원은 체감이 빠르다. 다만 대상과 기간이 넓어지면 재정 부담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
◆해외 사례는 = 해외 주요국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가가 뛰자 세금 인하, 정부 보조, 민간 할인 등으로 대응했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22년 전 세계 화석연료 소비 보조금이 1조달러를 넘었다고 분석했다. 가격을 누르면 당장의 부담은 줄지만 예산이 소진되고 에너지 절약 유인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 담겼다.
일본은 2022년 1월부터 연료가격 보조 프로그램을 운용했다. 약 2년간 연료가격 보조 예산으로 6조2000억엔(약 57조6000억원)을 책정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보조금을 2주마다 올리면서 사재기성 구매와 유통망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안정적 공급과 재고 평준화 협조를 요청했다.
독일은 2022년 6월부터 3개월 동안 연료세를 내렸다. 연구기관 분석에서는 휘발유는 세금 인하가 소비자 가격에 완전히 반영됐다는 결론이 나왔다. 경유는 부분 반영이라는 분석도 있다. 다른 분석에서는 보조금 중 경유는 87% 휘발유는 71%가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갔다고 전했다.
프랑스는 민간 정유 유통사가 자발 할인과 상한을 병행했다. 최대 정유유통사인 토탈에너지스는 2022년 9월 1일부터 11월 1일까지 리터당 0.20유로를 낮추고 1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는 0.10유로를 낮췄다. 2023년에는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1.99유로를 넘지 않도록 했다.
최고가격제는 단기 유가급등을 누르는 데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제유가가 더 오르면 상한도 올릴 수밖에 없다. 상한을 낮게 고정하면 공급이 먼저 흔들릴 수 있다. 정부가 약속한 2주 단위 점검이 출구가 되려면 핵심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기준산식과 조정규칙을 공개해야 한다. 공급과 재고점검 결과도 신속히 공개해야 한다. 손실보전 기준과 지급시점도 명확해야 한다. 이 3가지가 불투명하면 정책은 실효성 논쟁과 부작용 논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