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정책금융, 관행 넘어 과학으로

2026-03-12 13:00:13 게재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미증유의 위기 속에서 정책금융은 우리 경제를 지탱한 핵심 보루였다. 소상공인의 도산을 막고 취약계층에 유동성을 공급하며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위기 대응을 위해 팽창했던 정책금융의 관성은 현재까지 이어지며 연간 공급 규모 250조원 시대를 정착시켰다.

문제는 이러한 양적팽창의 이면에서 들려오는 경고음이다. 고금리 여파와 경기둔화가 맞물리며 정책금융의 부실률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 재정건전성을 위협하는 실질적인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결국 한정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한 ‘정책의 과학화’는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검증없는 정책금융의 구조적 한계

그러나 현재의 정책 설계 과정을 들여다보면 정교한 데이터 분석보다는 정치적 시급성에 밀려 논의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도로나 교량을 건설하는 SOC 사업은 수백억원 규모임에도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지만, 수조원이 투입되는 정책금융 사업은 금융 지원의 특수성을 이유로 이러한 검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사전 검토가 이루어지더라도 단순한 비용-편익(B/C) 분석 수준에 머물며,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근거를 끼워 맞추는 요식행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더 큰 문제는 사후 관리 부재다. 현재 대부분의 정책평가는 ‘얼마를 공급했는가’라는 공급자 중심의 단순 실적보고에 그친다. 정책이 수혜자의 자생력을 실제로 높였는지, 혹은 오히려 부채의 늪에 빠뜨렸는지에 대한 엄밀한 인과관계 분석은 드물다.

이는 분석역량의 부족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분석에 필요한 대조군(비교군) 데이터의 부재가 결정적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의 제약 등으로 인해 정책에서 탈락한 이들과 수혜자들을 시계열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데이터를 구득하기 어려운 환경이 정책의 과학화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고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우선, 정책금융 분야에도 예비타당성 조사 도입 의무화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공적자금이 소요되는 사업은 독립적인 전문가 그룹의 사전 효과 예측을 거치도록 법제화해 설계 단계부터 부실 위험과 정책적 타당성을 점검해야 한다. 또한 정책 시행 최소 1년 후에는 반드시 인과관계 분석을 포함한 사후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가 다음 정책 설계에 반영되는 환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 확보 문제를 해결할 현실적인 대안으로 ‘합성 데이터(Synthetic Data)’와 ‘행위자 기반 모형(Agent-Based Model, ABM)’의 활용에 주목해야 한다. 실제 데이터의 통계적 특성은 유지하면서도 개인 식별이 불가능한 가상데이터를 구축하면 개인정보보호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정책 수혜자와 비수혜자를 정밀하게 비교 분석할 수 있다. 여기에 경제주체들의 상호작용을 모사하는 ABM 시뮬레이션을 결합한다면 신약을 출시하기 전 거치는 임상시험처럼 정책 도입 전후의 파급효과와 부작용을 가상세계에서 미리 테스트해 볼 수 있는 ‘디지털 정책 실험실’이 가능해진다.

데이터 기반 정책금융으로의 전환

정책금융은 한정된 국가 자원을 가장 절실한 곳에 배분하는 정교한 경제 행위여야 한다. 데이터라는 나침반 없이 관행과 구호에 기대어 집행되는 정책은 자원 배분의 왜곡을 초래하고 결국 재정적 파국을 부를 뿐이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교한 설계와 엄밀한 평가 시스템 구축만이 정책금융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고, 진정한 의미의 금융 포용을 실현하는 길이다. 2026년, 이제는 정책금융도 정치의 영역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옮겨와야 할 때다.

유경원

상명대 교수

경제금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