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 43 거문도 뱃노래길

테니스 처음 시작된 섬 걸으며 장쾌함·고독 느껴

2026-03-13 13:00:02 게재

이 땅에서 테니스가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은 전남 여수의 섬 거문도다.

1885년 4월 15일, 영국군은 거문도를 점령한 뒤 1887년 2월까지 거문도에 주둔한다. 거문도 내해는 수심이 깊어 큰 군함의 정박이 가능하고 섬들로 둘러싸여 있어 풍랑을 피할 수 있는 천연의 대피항이다.

게다가 중국과 조선 일본으로 이어지는 항로 한가운데 위치해 제국주의 세력의 군사적 거점이 될 수 있기에 오랫동안 영국과 러시아 두 나라가 눈독을 들였다. 영국은 러시아 견제를 핑계로 거문도를 점령했다.

하지만 당시 조선 정부는 거문도가 점령당한 사실을 20여일 동안이나 알아채지 못했다.

영국은 거문도 점령 40여년 전부터 해군함정 사마랑호를 동원해 제주에서 거문도까지 해역을 정밀 탐사한 바 있다. 당시 영국 해군성 차관이었던 해밀턴의 이름을 따 거문도를 해밀턴 항으로 명명했다.

거문도는 하나의 섬이 아니다. 마주한 세 개의 섬, 고도 동도 서도를 통칭해 거문도라 부른다. 지금은 세 섬이 다리로 연결됐다.

거문도 점령 후 영국 군대는 사람이 적게 살던 고도에 군대 막사를 짓고 항만 공사를 했다. 테니스 코트와 당구장 등도 이때 처음 생겼다. 영국군 수병 묘지 가는 길에는 이 땅 최초의 테니스장이 복원돼 있다.

2년 동안 거문도 주민과 영국 점령군은 비교적 사이좋게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영국군은 주민들에게 치료약을 공급하고 노임을 지불해 가며 공사 일을 시켰다.

섬 주민들과 마찰을 피하기 위한 영국군의 유화 전략이었지만 조선 왕조 하에서 강제 부역에만 종사했던 섬 주민들은 그것을 고맙게 여겼다. 섬 주민들은 영국군과 협상 차 거문도에 온 조선 정부의 대표 엄세영에게 “자기 백성을 지켜주지도 못하면서 노임 받고 일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배 세력의 섬에 대한 수탈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영국군이 거문도를 점령하자 재빠른 일본 상인들은 서도에 유곽(사창가)을 만들었고 이후 거문도는 일본의 어자원 수탈 전진기지가 됐다.

거문도는 죽도 초도 등과 함께 112개 유·무인도로 이루어진 여수시 삼산면에 속한다. 한때는 거문도에만 1만3000여명의 사람이 살았으나 현재는 삼산면 전체에 약 2000명만 남았다.

거문도에서 광활한 대양을 따라 걷는 길의 장쾌함과 절대 고독은 두고두고 잊지 못 할 추억이 될 것이다. 사진 섬연구소 제공

거문도는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살이가 시작됐다. 1976년 장촌 마을 해변에서는 중국 한나라 때의 화폐인 오수전이 다량 출토되기도 했다. 거문도가 고대 국제해상무역의 중간 기항지였다는 증거다.

8.15 해방 직후 일본인들이 살던 고도의 적산가옥에 한국인들이 살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은 “얼마 있다가 곧 올 테니 집들을 잘 관리하고 있어라” 당부하고 떠났지만 헛된 꿈에 불과했다.

거문도 파출소 뒤안길을 따라 600여m를 가면 영국군 수병 묘지가 있다. 묘지에는 화강암 비석과 나무 십자가, 두 개의 묘비가 서 있다. 화강암 묘비에는 영국군의 거문도 점령 당시인 1886년 6월 11일 폭탄 사고로 죽은 수병 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나무 십자가 묘지의 주인은 1903년 10월에 사망한 군함 알미욘 호의 수병 알렉스 우드다. 영국군은 거문도를 떠난 뒤에도 1930년대까지 항해 도중 이 섬을 드나든 것으로 전해진다.

거문도에는 백섬백길 25코스 거문도 뱃노래길이 있다. 녹산 등대에서 거문도 등대까지 이어지는 9.3㎞의 섬길은 내내 태평양을 보며 걸을 수 있다. 광활한 대양을 따라 걷는 길의 장쾌함과 절대 고독은 두고두고 못잊을 추억이 될 것이다.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