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트럼프의 전쟁 청구서와 실용외교

2026-03-16 13:00:01 게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에 한국의 군함 파견을 공개 요구하면서 전쟁과 파병, 한미동맹, 에너지안보, 여야 대립이 한꺼번에 얽힌 난제가 우리 앞에 놓이게 됐다.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결정하느냐에 따라 한국 외교의 방향과 국내 정치의 지형이 동시에 흔들릴 수 있다. 지켜야 할 것은 분명히 있지만 전쟁에 끌려 들어가서는 안되며, 도덕·감정이 아니라 실용과 현실 위에서 판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은 한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켜야 할 필요’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원유 수입과 해상물류는 그 좁은 바다목 하나에 상당 부분 걸려 있다. 이란이 기뢰와 미사일 드론으로 수로를 위협할 때 우리는 ‘저 먼 중동의 전쟁’이라며 돌아설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호르무즈가 봉쇄되면 가장 먼저 치르는 대가는 주유소·전기요금·원자재가격 급등으로 한국 가계와 기업이 맞게 될 현실적 비용이다. ‘남의 전쟁’이 아니라 ‘우리 생계’의 문제라는 인식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국익과 전쟁 사이, 정부가 찾아야 할 균형점

그렇다고 전쟁에 몸을 던질 이유는 없다. 호르무즈에서 벌어지는 충돌은 기본적으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군사 대결이다. 여기에 한국이 지상전·교전행위·직접타격에 노출되는 방식으로 개입하는 것은 선을 넘는 일이다. 한국이 역할을 검토해야 할 영역은 어디까지나 해상 교통로의 안전과 항행의 자유를 확보하는 범위다. 그것도 교전 위험과 작전 환경, 국제법적 정당성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 ‘지켜야 할 필요’와 ‘전쟁 개입 거부’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일이야말로 지금 정부가 풀어야 할 핵심 과제다.

이 문제를 ‘좋은 전쟁인가, 나쁜 전쟁인가’로만 재단해서는 곤란하다. 한미동맹이라는 구조적 조건 속에서 ‘정의로운 전쟁이냐 아니냐’라는 도덕 잣대만으로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다. 외교는 도덕 심판의 법정이 아니라 이익과 책임, 위험과 기회가 교차하는 공간이다. ‘저 전쟁은 부당하다’는 윤리적 판단이 곧바로 에너지안보와 동맹을 버리자는 정책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냉정한 이해와 현실 인식이 덧붙지 않은 정의감은 때로 더 큰 비용을 부른다.

주변국의 스탠스도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미국 관련 민감 사안에 공개 발언을 최소화한다. 중국조차 “깊은 우려” 수준에서 멈추고 있다. 러시아 북한 파키스탄 정도가 노골적인 규탄 성명을 냈을 뿐이다. 이 스펙트럼 속에서 한국이 중국보다 앞서서, 혹은 러시아·이란과 비슷한 톤으로 미국을 규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군사·기술적 현실도 빠질 수 없다. 호르무즈는 기뢰 잠수정 소형 고속정 드론 미사일 위협이 뒤엉키는 고위험 해역이다. 기뢰 제거 능력을 가진 소형 함정을 실제로 보내려 해도 항속 거리, 작전 지속 능력, 방어 체계와 연합 지휘 구조까지 하나하나 따져야 한다. 어떤 함정을, 어떤 임무로, 얼마나 오래 보낼지 구체적 그림 없이 ‘보내라, 말라’만 외치는 논쟁은 현실성이 없다. 외교적 스탠스 못지않게 해군의 실제 작전 능력과 위험 분산 방안까지 포함한 냉정한 군사적 검토가 병행돼야 한다.

정치권을 향한 요구도 분명하다. 무조건 미국이 하자는대로 하는 것도, 미국을 향해 감정 섞인 규탄의 언어를 앞세우는 것도 책임 있는 행동은 아니다. 반대로 국회 동의 절차를 우회하며 ‘안보’로 모든 것을 덮으려는 태도 역시 다른 극단이다. 이 사안은 일부 정치권의 반미감정 동원이나 무비판 동맹주의, 두 극단 모두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전쟁·파병문제를 진영싸움의 소재로 삼으면 외교 당국이 쓸 수 있는 카드는 급격히 줄어든다. 강경한 규탄 성명이 국내 정치에서 박수를 받을지 모르지만 국제 협상 테이블에서는 한국의 선택지를 스스로 좁히는 족쇄가 된다. 외교는 말 한 문장의 여지가 곧 협상의 여지이기 때문이다.

진영 경쟁 아닌 실용외교 경쟁을 하라

결국 트럼프의 파병 요구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에너지와 경제의 현실을 직시할 것인가. 정의감과 분노만이 아니라 동맹과 국익의 구조를 함께 보며 선택할 수 있는가. 이 사안을 또 한 번 진영싸움과 지지층 결집의 소재로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드물게라도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머리를 맞댈 것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느냐가 아니라 차분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감정과 진영을 넘어 최소의 위험과 최대의 이익을 확보하는 실용외교를 설계하는 것이다. 이 문제만큼은 여야가 서로를 몰아붙이는 경쟁이 아니라 누가 더 책임 있게 현실을 마주하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지 겨루는 경쟁이 되기를 바란다.

김기수 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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