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민주화의 지체된 정의 바로잡을 때다
40년이라면 한세대가 지나고도 강산이 한 번쯤 변할 시간이다. 그런데 역사적 자리매김이나 기록화에 앞서 법적 판단조차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역사의 잊힌 공간으로 사라지는 일이 여전히 많은 것을 본다.
지난 9일 서울고법은 1986년 벌어진 이른바 ‘건대사건’에 대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꼭 40년 만이다. 민주화운동이나 국가폭력 영역에서 그동안 많은 재심이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지만 이 재심은 그 결정이 내려진 시기나 의미가 특별히 눈길을 끈다.
잠시 4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1986년은 전두환정권이 가장 기세등등했던 때다. 1987년 6월항쟁 한해 전으로서 민주화 요구에 초강경 대응책을 구사했다. 국회에서 “통일이 국시”라고 말했다고 국회의원을 구속한 ‘유성환 국시론 파동’이 있었고, 언론에 보도지침을 내려 그대로 보도하도록 강요했다. 각종 고문과 부천서 성고문 사건도 자행됐다. 북한이 서울을 수몰시킨다며 평화의댐 성금 모금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던 시절이다.
건국대 사건 재심 개시 결정의 의미
건대사건은 이런 전두환정권이 마지막으로 저지른 대형공작 또는 만행이지 않은가 싶다. 1986년 10월 28일 26개 대학 2000여명의 학생이 건국대에서 전국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애학투련) 발족식을 열었다. 집회가 끝날 즈음 경찰이 학생들의 퇴로를 막고 최루탄을 쏘며 학내로 진입했고 학생들은 본관과 4개 건물로 피신해 대치했다.
경찰은 학교측의 중재를 거부하고 단전·단수조치 등으로 학생들을 압박한 뒤 10월 31일 8000여명의 경력을 동원해 진압작전을 펼쳤다. 계획에 없던 철야농성을 강요당해 추위와 굶주림으로 탈진한 학생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1525명 연행, 1285명 구속. 단일 형사사건으로는 초유의 기록이다.
이 사건에는 공작 정황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경찰이 고의로 학생들의 농성을 조장하고 헬기까지 동원한 대규모 작전을 구사했다. 학생시위 진압에 헬기가 동원된 사례는 1965년 한일협정 반대운동 때 한차례 있었다. 헬기와 L-19 정찰기가 진압작전에 투입됐는데 건국대가 주도한 4.16 시위였던 것이 공교롭다.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방향이 청와대와 안기부에 의해 강경으로 선회한 것도 진실화해위 보고서 등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등급별 분류 후 구속이 전원 구속영장 청구로 바뀌고 집시법 적용 사건이 ‘공산혁명분자에 의한 폭력 난동 사건’으로 탈바꿈했다.
애학투련은 각 대학 민족해방(NL) 계열의 투쟁위원회가 연합한 조직이었다. 주요 투쟁 목표는 반외세 자주화, 반독재 민주화, 조국통일이었다. 이들은 이전의 비합법적 폭력적인 투쟁 대신 공개적 대중투쟁을 표방했다. 그래서 직선제 개헌을 매개로 제도권 야당과 연합하는 계획도 세웠다. 애학투련의 목표와 노선은 조직 결성과 동시에 와해돼 실현되지 못했지만 이후 학생운동의 기본방향이 되었고 1987년 6월항쟁에 많은 학생이 참여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건대사건 재심 결정은 민주화의 ‘지체된 정의’를 보여주는 많은 사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지 모른다. 지금도 각종 자료는 이 사건을 ‘건국대 점거 농성 사건’으로 부르고 있다. 학생들은 건물을 점거하지 않았고 농성을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10.28 건대항쟁’으로 일각에서 부르지만 대중에게는 아직 낯선 이름이다. 어느 것이든 아예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다. 구속자도 1285명, 1288명, 1290명 등으로 자료마다 다르다. 사소한 오차가 아니라 우리의 소홀함을 꾸짖는 부끄러운 지표다.
27년째 표류해온 민주유공자법 등 처리 기대
민주적 가치에 대한 평가에 인색하거나 그것을 지체하는 사회는 민주주의의 토대가 취약할 수밖에 없다. 최근의 우리 민주주의 위기라든가 민주주의 지수가 곤두박질하고 있는 배경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평가를 주저하고 지체하는 동안 그 자리는 민주화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동의 몫이 된다는 것을 가까운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도 했다.
마침 27년째 표류해 온 민주유공자법과 11년째 추진돼 온 긴급조치 피해자 민사재심 특별법이 3월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여건을 갖췄다. 40년 전 민주화운동 관련 사건에 대한 재심 결정과 함께 지체된 정의가 연체 이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원금이라도 보전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