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편성 속도전…3월말 국회제출·4월 국회통과 목표로
주말에도 관련 경제부처 공무원 전원출근
고유가 장기화 대비 10조~20조원대 거론
1월만 추가세수 6조, ‘빚 없는 추경’ 목표
중동 전쟁발 고유가·고환율 충격이 확산되자 정부가 ‘추경 속도전’ 모드로 전환했다. 지난 주말에는 기획예산처 예산실 등 추경 관련 간부들은 물론 사무관들까지 전원 출근, 추경안 마련에 속도를 냈다.
추경 상한이 ‘최대 20조원’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정부는 3월 말 이전 국회 제출과 4월 중순 국회 통과를 목표로 추경시기도 앞당겼다.
이번 추경은 ‘경기부양용 돈풀기’가 아니라 고유가로 늘어난 비용의 전가(轉嫁) 고리를 끊는 재정 방파제로 설계될 가능성이 크다. 물류·운수 유류비, 취약계층 에너지비, 가격상한제 시행에 따른 손실보전, 외부 충격에 취약한 수출기업 부담 등 ‘추가비용’이 핵심 표적이다.
다만 정부가 장담한대로 ‘국채발행 없는 추경’ 원칙이 유지될지, 물가 자극을 막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빠른 추경 위해 ‘세수가추계’ = 16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재정경제부 세제실은 지난 14일 세수가추계 결과를 기획예산처에 전달했고, 기획예산처는 주말 동안 예산정책 라인에서 사업 방향과 총량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경편성 방침이 확정된만큼 가능한 빠른시간내 추경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청와대도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열어 속도를 맞췄다.
통상 ‘벚꽃 추경’은 3월 말~4월 초 법인세 신고·납부 실적을 확인한 뒤 세수 재추계를 거쳐 예산 당국과 협의해왔다. 이번에는 추경집행을 앞당기기 위해 법인세 실적 확인 전 전망치 기반 추계를 우선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이번 추경을 반도체 업황 호조에 따른 추가세수 기반으로 적자국채 없이 편성하는 만큼, 세제실이 산출한 세수 전망이 기획예산처의 사업 설계 기준이 되는 셈이다. 다만 가추계가 ‘확정치’가 아니라는 점은 부담이다.
추경의 중심축은 고유가로 인한 국민과 기업의 피해를 얼마나 정확히 겨냥해 ‘재정 방파제’로 세우느냐다. 예산실 안팎에서는 △고유가에 따른 물류·운수 유류비 △취약계층 에너지비 △가격 상한제 시행에 따른 손실보전 △외부충격에 취약한 중소 수출기업 부담 등을 핵심 지원대상으로 거론하고 있다.
◆추경 규모 더 키울까 = 정부 관계자는 “법인세 신고·납부 시한인 3월 말 이전에 조속히 추경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간표는 촘촘하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오는 23일 청문회를 통과하면, 후보자가 직접 추경안을 발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규모는 당초 ‘5조~15조’ 정도가 거론됐지만 주말을 기점으로 ‘최대 20조’까지 거론된다. 중동상황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고유가 충격 장기화’를 대비한 추경규모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커지고 있어서다.
속도만큼 중요한 건 ‘모양’이다. 전문가들은 “추경에 따른 물가 상승 등을 우려해 고유가와 직결된 꼭 필요한 부분에 재정을 투입하는 ‘핀셋 추경’”을 주문하고 있다. 고유가 국면에서 재정이 넓게 풀리면, 단기 지원이 물가·환율·자산시장으로 되돌아오는 ‘2차 파장’을 키울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을 보면, 국제유가가 연평균 80달러면 물가가 0.4%p 뛴다. 100달러면 성장률이 0.3%p 낮아지는 반면 물가는 1.1%p 오르며 경상수지가 260억달러 감소할 수 있다. 150달러(오일 쇼크) 시나리오에서는 성장률 0.8%p 하락, 물가 2.9%p 상승, 경상수지 767억달러 감소가 제시됐다. 추경이 ‘경기 부양’으로 오해받는 순간, 고유가발 물가인상 압력에 기름을 붓는 역설이 생길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추경사업 어떻게 편성될까 = 주요 추경사업은 △물류·유류비 부담 경감 △서민·소상공인·농어민 민생 안정 △수출기업 지원 등이 될 것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특히 정부가 정유사 공급가격 상한을 제한하는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하는 만큼, 이에 따른 손실보전 재원과 에너지 바우처 등 취약계층 지원 사업을 추경에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추경사업의 우선순위로는 ‘중동상황 등 외부충격으로 인해 발생한 추가 비용 부담분을 핀셋지원’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추경예산을 ‘전방위 현금 살포’방식은 최소화하고, 비용 상승분의 전가(轉嫁)를 막는 데 필요한 최소·정밀 지출 중심으로 설계될 가능성이 크다.
앞서 임기근 기획예산처 장관 직무대행(차관)은 “추가 국채 발행 없이, 예상되는 초과 세수를 활용해 편성함으로써 국채·외환시장 영향은 최소화하겠다”고 밝힌 점도 주목된다. 이가튼 정부의 ‘빚내지 않는 추경편성’이란 장담은 지켜질 수 있을까. 현재로선 가능하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문제는 초과세수가 확정치는 아니란 점이 변수다. 정부가 ‘무국채 추경’ 약속을 지키려면 ①세수 가추계의 신뢰성 ②핀셋식 정밀지원 ③유가경로 악화 시 자동으로 조정되는 안전장치 등이 함께 설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세수 가추계를 앞세운 ‘밤샘 추경’은 행정절차를 압축해 정책의 반응속도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속도전이 성공하려면, 추경이 겨냥하는 목표가 더 좁아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고유가 국면에서 추경은 자칫 물가와 자산시장에 역효과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추경의 성패는 “고유가로 늘어난 비용”을 정확히 겨냥해 전가 고리를 끊는 정밀한 설계 여부에 달렸다는 지적이다. 정부 추경안이 국회 문턱을 넘는 과정에서도 이 문제가 집중 심의될 것으로 보인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