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대재해 예방의 새로운 가능성, 지방정부에 거는 기대
안전보건관리 역량이 거의 없는 소규모 사업장 및 건설현장이 중대재해의 사각지대라는 점은 이제 상식일 정도로 잘 알려진 문제다. 그런데 ‘사각지대’라는 표현은 종종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23년 산업재해 통계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전체 노동자의 60% 수준이며 산재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플랫폼·특수고용직 노동자, 프리랜서, 1인 기업 등을 포함하면 87%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세상에 이렇게 넓은 사각지대가 있을까? 이 문제는 결국 일부가 아니라 국가 산재예방 전체의 문제다.
모두가 이 현상을 알고 있고 원인도 파악하고 있지만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이어지는 노동자들의 죽음에 한탄하고 때로는 체념하기도 한다. 왜 이렇게 어려울까? 간단히 말하면 적재적소에 감독과 지원의 행정이 닿지 못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이 사각지대는 너무나도 넓은데다가 구체적인 지역과 현장으로 들어가면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패턴과 맥락이 통계를 통해서는 쉽사리 잡히지 않는다.
첫 ‘지역 중대재해 예방 사각지대 해소사업’
고용노동부가 올해 시작하는 ‘지역 중대재해 예방 사각지대 해소사업’(지중해사업)은 이러한 난맥을 극복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11개 지방자치단체가 각자의 계획을 가지고 중대재해 사각지대 해소에 나서고 중앙정부는 이를 체계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감독권의 지방정부 이양을 둘러싼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산재예방에 있어 지방정부의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행정이 적재적소에 닿는 길목을 누구보다 잘 찾아내고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지방정부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지방정부가 해보지 않은 영역이기에 경험과 역량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방정부는 안전, 환경, 인허가, 세무 등 수많은 행정으로 지역과 연결돼 있고 경험이 축적돼 있다. 전문적인 산업안전보건 역량은 전문가들의 손을 빌리면 될 일이다. 지중해사업의 성패는 지방정부가 가진 유무형의 자원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에 달려있다. 이제 소중한 첫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몇 가지 당부하고 싶다.
지방정부, 장기적 비전과 역량을 키워야
첫째, 길목은 최대한 정교하게. 통계적이고 피상적인 접근, 무차별 살포식의 사업으로는 제대로 된 길목을 찾아낼 수 없다. 대상 사업장을 찾아내고 접근하는 방법, 언제 어디로 가서 무엇을 지도하고 지원해야 하는지, 이것을 어떻게 시스템화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작은 성공사례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생각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 사례가 전국으로 확대될 때를 상상해보자.
둘째, 지방정부는 지원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자. 이런 고정관념은 상상력의 싹을 잘라 지중해사업을 뻔한 지원사업의 반복에 머무르게 할 것이다. 지방정부도 지도와 제재를 필요에 따라 구사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 당장 공공부문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이를 행사할 수 있고 민간 기업들에 대해서도 우회적인 방법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이번 지중해사업을 통해 지방정부가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스스로의 역량을 키워가기를 바란다. 전문가를 채용하거나 공무원들이 자격증을 따라는 얘기가 아니다.
지중해사업을 담당하는 이들이 기존의 행정과 지중해사업을 연계시키는 경험, 그 과정에서 만나고 조직하는 사람들 사업장의 네트워크, 하나하나의 과제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다음 한걸음을 위한 양분이 되도록 체계적인 데이터를 남기는 것이 지중해 사업 첫해에 이뤄야 할 지방정부의 성장일 것이다. 하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우리 모두의 성장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