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상법 시행 후 ‘자사주 소각’ 봇물

2026-03-18 13:00:22 게재

지난해 보다 2배 이상 늘어

예외조항 활용해 미온적일수도

3차 상법 개정안 시행 후 첫 정기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자사주 소각에 나서는 상장사 수가 지난해보다 2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상법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후 17일까지 자사주 소각 결정을 공시한 기업은 총 65개사로 집계됐다. 올해들어서는 159개사가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67개사)의 2배를 웃도는 수치다.

기업별 소각 규모를 살펴보면 SK가 4조8343억원(지분율 20.3%)으로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이어 DB손해보험 7981억원 (5.6%), 한화 5608억원 (5.9%), 미래에셋생명 4240억원 (5.6%), 코리안리 2454억원 (9.3%) 등이 그 뒤를 이으며 주주환원 랠리에 동참하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상반기 중 약 8700만주의 자사주를 소각할 계획이며, 셀트리온(911만 주), 미래에셋생명(전량 소각) 등 업종을 불문한 ‘소각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단순한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찾기’를 넘어, 자사주 소각을 통한 주당 가치 제고라는 ‘질적 차별화’ 단계인 2라운드로 진입하고 있다. 지난 6일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3차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기업들이 자사주를 쌓아두는 대신 과감히 없애는 방식을 택하며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과거 자사주 매입이 대주주의 지배력 방어 수단으로 여겨졌던 것과 달리, 이제는 발행주식 총수를 줄여 주당순이익(EPS)을 직접적으로 끌어올리는 ‘진정한 주주환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시장의 반응은 냉정하면서도 뜨겁다. 단순히 PBR 수치가 낮다고 해서 주가가 오르는 시기는 지났다. 투자자들은 이제 △실질적인 자사주 소각 계획 여부 △상법 개정안에 따른 이행 의지 △지배구조 개선 가능성을 꼼꼼히 따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발표한 기업들과 단순히 저PBR 상태를 유지 중인 기업들 간의 주가 수익률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는 추세다.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들 역시 자사주를 ‘지배권 방어용’이 아닌 ‘주주 환원용’으로 확약한 기업들에 집중적인 매수세를 보내고 있다.

120조원 대 증시 대기 자금(예탁금) 역시 이러한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근 흥행에 성공한 코스닥 액티브 ETF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펀드는 매니저가 직접 자사주 소각 등 주주가치 제고에 적극적인 기업을 ‘실시간’으로 골라 담으며 지수 대비 초과 수익을 노린다.

최관순 SK증권 연구원은 “자사주 소각은 지주회사 할인 요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강력한 트리거”라며 “상법 개정안 시행으로 주주환원의 신뢰도가 높아진 만큼, 변동성 장세에서도 소각 기업에 대한 프리미엄은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경계의 목소리도 있다.

신현용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상법 개정으로 소각 발표가 잇따르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이 ‘경영적 목적’이라는 예외 조항을 활용해 소각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익 확대로 재무 부담이 경감되는 동시에 확실한 소각 의지를 갖춘 기업을 선별하는 ‘옥석 가리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밸류업 2라운드는 기업 스스로가 주주들에게 얼마나 ‘진심’인지를 증명하는 장이 되고 있다. 자사주 소각이라는 과감한 결단이 한국 증시의 고질적인 디스카운트를 끊어내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형재 기자 hj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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