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입법 독주의 그늘, 그 많던 ‘공론’은 어디 갔을까
법 논란이 거세다. 사법 3법(법왜곡죄, 재판소원, 대법관 증원)과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시행되자마자 시끌시끌하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범죄자, 게다가 성범죄자까지 4심을 받겠다고 법석이니 법이 깜짝 놀란다.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의 노란봉투법은 ‘교섭 파국’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원청 교섭 요구가 거세다.
사회 약자를 보호하고 기본권을 지켜주겠다는 선의에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법과 현실이 따로이니 곳곳에 염증이 생긴다. 속전속결 ‘입법 독주’의 부작용이다.
새로 법을 만들거나 고치려면 예견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공론(公論)이 필요하다. 세상에 완벽한 법은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국민에게 의견을 묻고, 공청회를 열고, 여야가 치열하게 토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보완할 것은 보완 해가며 입법하는 게 정도다.
입법 과정은 학생에게는 좋은 교육 모델이다. 공론장(Public Sphere)의 중요성을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어서다. 최근 타계한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사회 구성원이 공적 이슈를 합리적 토론을 통해 논의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담론적 공간이 공론장”이라고 설파했다.
공론장 없었던 사법 3법 부작용 우려
한때 우리 사회에도 공론장이 제법 있었다. 시민단체나 학회가 여는 토론회나 포럼은 여론 분출장이었다. 정부 주최 공청회도 그랬다. 역대 정부는 법을 제·개정 할 때 숙의 과정의 하나로 공청회를 활용했다. 요식행위 또는 통과의례라는 비판을 받았어도 공청회는 국민 의견을 직접 듣는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
기자로 일할 당시 공청회장을 자주 취재했다. ‘난장판 공청회장’이라는 기사를 쓴 적도 여러 번 있다. 교원평가제와 교육과정개편 공청회가 기억난다. “교사 줄 세우기 절대 반대”, “○○과목 축소 반대” 같은 외침이 난무했다. 일부 교사는 행사장을 점령했다. 난장(亂場)이었다. 그럼에도 왜 그러는지, 문제가 뭔지,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지 등에 담론이 형성됐다.
그런데 요즘은 그 많았던 공청회를 보기 힘들다. 입법 과정에서도 생략이 일쑤다. 기껏 의원실 주관 토론회다. 사회자는 “존경하는 누구 국회의원 오셨다”라고 멘트 날리는데 에너지를 쏟는다. 의원들은 토론회 직전 우르르 기념사진 찍고 가버린다. 끝까지 앉아 경청하는 의원을 본 적이 거의 없다. 기자도 현장 취재에 인색하다.
사법 3법은 입법 전 공론의 장이 필요했다. 숙의와 담론이 절대 필요한 국민적 중대사였다. 그런데 경청 과정이 생략됐다. 민주당 주도로 입법되는 여러 법도 앞으로 그런 전철을 밟을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교육적으로 논란이 되는 교육 관련 법안만이라도 ‘일방’ 입법을 자제해야 한다.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범여권 의원이 발의한 ‘사립학교법’과 ‘교원노조법’,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사립학교 교원이 교사직을 유지한 채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거나 관련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휴직 근거 규정 신설”(고민정 의원), “학교법인 개방이사 비율 현행 이사 정수의 1/4→1/ 3로 강화”(김준혁 의원), “초·중·고 교원 정치활동 금지규정 삭제”(민영배·김성회 의원), “교육감 선거권 18세→16세 이상 하향 조정”(강경숙 의원) 등 각종 개정안이 쏟아진다.
물론 의원들은 학생의 미래와 교육의 발전을 위해 고심 끝에 건설적으로 법을 바꾸려 했을 것이다. 각 개정안은 국회 상임위원회인 교육위원회에 상정돼 있다. 사법 3법처럼 민주당 주도로 다 통과시킬 수도 있다. 견제해야 할 국민의힘 의원들은 교육 공부가 약하고, 수적으로 밀리니 그저 반대만 외친다. 여당 의원에게 먹힐 리 없다.
교원 정치 참여 등 사학법 일방 개정 경계를
하지만 교육은 그래서는 안된다. 현직 교사의 교육감 출마와 정치활동 허용, 사학법인 개방이사 확대, 청소년 선거 나이 하향은 ‘입법 독주’의 대상이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를 중심으로 각계의 의견을 골고루 경청하고 경청해 신중을 거듭해야 할 주제다.
학교를 정치에 물들게 하고 사학의 자율권을 옥죌 수 있다는 문제 제기가 곳곳에서 나온다. 그 흔했던 공청회 한번 제대로 열지 않고 있다. 소설가 박완서가 그리워했던 싱아처럼 싱싱한 교육 공론의 장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