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50주년 새 비전 '해운 넘어'…투자방향은 '불확실'
최원혁 대표 "육상물류·항공화물 확장단계는 아냐"
민영화는 기약없고 부산 이전 놓고 노조 파업 경고
25일로 창립 50주년을 맞은 HMM이 미래 투자방향이 모호한 가운데 글로벌 선사들과 경쟁에서 낙오될 수 있다는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최원혁 HMM 대표는 창립 50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새로운 비전과 성장 전략을 발표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투자계획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HMM 노동조합은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의 해운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HMM 본사 강제 이전을 즉각 중단하라”며 총파업을 예고했다.
해양수산부와 HMM의 1·2대 주주인 한국산업은행(지분 35.42%) 한국해양진흥공사(35.08%)는 부산 이전 문제가 우선이라며 보유 주식을 매각하는 HMM 민영화 작업도 보류한 상태다.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부산 이전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매각을 당장 검토하진 않고 있다”며 “부산 이전이 완료된 다음에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머스크 전략 따르는 것인지 모호 = 최 대표는 창립기념식에서 ‘해운을 넘어 더 큰 가치, 더 나은 미래를 움직인다’는 뜻을 담아 ‘무브 비욘드 마리타임’(Move Beyond Maritime)이라는 비전을 선포했다. HMM은 세계 최고의 종합 해운·물류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진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HMM이 50주년을 맞아 새롭게 내놓은 종합 해운·물류기업으로 도약은 세계 2위 선사 머스크(덴마크)의 전략을 연상케 했다.
머스크는 2010년대 해운산업에 규모의 경제, 에너지효율, 친환경전환 등 ‘트리플 E’ 정책을 주도하며 세계 1위 선사로 우뚝섰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전 종합물류기업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선복 규모 확대 대신 물류부문 투자에 나서면서 스위스 MSC(지중해해운)에 1위 자리를 내줬다. 현존 선복량 기준 3위인 CMA CGM(프랑스)도 선박 발주량에서 머스크를 앞서 곧 2, 3위 순위도 바뀔 예정이다.
머스크는 MSC와 운영하던 해운동맹 ‘2M’ 해체 후 독일 하팍로이드와 손잡고 새로운 해운동맹 ‘제미나이’를 결성, 규모화 경쟁에서 벗어나 정시운항을 강조하며 주요 항만 중심으로 기항하는 ‘허브 앤 스포크’(Hub&Spoke) 전략을 채택했다.
HMM도 올해 초 최 대표 신년사를 통해 컨테이너 부문은 ‘허브 앤 스포크’ 전략으로 서비스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해외 권역별 영업력을 강화해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겠다고 밝혔다.
HMM이 2027년 해운동맹 재편기를 앞두고 규모화 경쟁대신 새로운 선택을 했는지에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그동안 HMM의 투자방향을 놓고 규모화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과 규모화 대신 지역항로에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 등이 제기됐지만 하나로 정리된 상태는 아니었다.
이와 관련 세계 정기선해운 분석기관 알파라이너는 3월 11~17일 주간 뉴스레터에서 HMM이 ‘지역항로’(regional) 선대를 확장하기 위해 최소 22척의 중소형 컨테이너선 건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고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읽반적으로 선사들은 태평양과 대서양 인도양을 건너는 원양항로에 투입하는 선박은 6m 길이 컨테이너 8000개 이상을 실을 수 있는 8000TEU급 이상 선박을 주로 사용하지만 아시아 역내(인트라아시아) 항로에 투입하는 선박은 중소형 선박을 사용한다.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HMM은 지난해 9월 1800TEU급(방콕맥스)과 2800TEU급(치타공맥스) 선박 두 시리즈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HMM은 지난해 말 중국 황하이조선소(Huanghai Shipyard)에 소형 선박 12척을 발주했다는 사실도 연차보고서를 통해 간접적으로 공개했다. 방콕맥스급 1900TEU 선박 5척, 치타공맥스급 2900TEU 선박 7척으로 추정했다.
또 3월초 HD현대중공업에 2800TEU급 10척을 발주했다. 이 선박은 2028년말까지 인도될 예정이다.
HD현대중공업 공시에 따르면 HMM은 한국에서 건조되는 2800TEU급 선박에 대해 척당 5570만달러를 지불할 예정이다. 중국 황하이조선소 발주 12척의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알파라이너는 1800TEU급은 척당 2900만달러 이상, 2800~2900TEU급은 3900만달러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HMM이 ‘허브 앤 스포크’(신년사) 전략에 이어 ‘종합 해운·물류기업으로 도약’(창립 50주년 비전)을 제시해 투자방향이 하나로 가닥을 잡는 것인지 주목됐다. 머스크 출신의 세계적인 해운 분석가 라스 얀셴은 지난해 HMM이 승산없는 규모화 경쟁보다 아시아 역내 서비스에 강점을 가지는 방향으로 집중하는 게 좋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HMM 내부에서는 이같은 추정은 섣부르다고 제동을 걸었다. 24일 HMM 고위 관계자는 “머스크와 같이 종합물류기업으로 간다는 방침은 아니다”라며 “종합 해운·물류기업의 상이 구체화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최 대표는 26일 정기주주총회에서 “HMM은 지금 기초체력부터 튼튼하게 다져야 한다”며 “CMA CGM 등 글로벌 선사들이 이미 거대한 선복량을 바탕으로 육상 물류, 항공 화물까지 확장하고 있지만 HMM은 아직 그 단계는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최 대표는 이날 2030년까지 컨테이너 155만TEU, 벌크 1275만DWT를 확보하는 중장기 전략을 구체화하겠다고 덧붙였다. 2024년 발표한 중장기 전략과 같지만 벌크선 톤수를 19만DWT을 추가했다.
◆26일 주총에서 이사회 개편도 논란 = 이런 가운데 HMM은 지배구조개편이나 부산 이전을 놓고 진통을 겪고 있다. 주가는 자사주매입 등 밸류업 정책에도 1만9000원~2만원대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해 시장에서의 기대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HMM은 산업은행과 해진공 지배 체제를 벗어나 민영화하겠다는 방향을 추진하고 있지만 하림그룹과 매각협상이 실패한 후 새로운 방안을 찾지 못하고 지배구조 취약성을 노출하고 있다.
1대 주주인 산업은행은 지분을 매각하고 출자금을 회수하는데 집중하고 2대 주주인 해진공은 정부의 HMM 운영 방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수부는 세계 해운시장 흐름을 반영한 경영방침보다 부산 이전과 민영화 등 정권 차원의 우선순위를 무시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HMM은 26일 주총에서 사외이사 2명을 새로 선임하는 안건을 처리했다. 사외이사 4명 중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우수한·정용석·이젬마 3명의 후임으로 박희진 부산대 부교수와 안양수 전 법무법인 세종 고문이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이사 선임안이 주총을 통과하면서 이사회는 6인 체제에서 5인(사내이사 2명, 사외이사 3명) 체제로 바뀌었다. 노조는 이번 인선이 본사 이전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물류와 경영 리스크 관리 등 산업 전문성에 초점을 맞춘 사외이사가 나간 자리를 부산지역 인사와 산업은행 출신 인사로 채웠기 때문이다.
노조는 주총에서 안양수 고문에 대해 “(HMM의 최대주주이자 채권단이었던 이해관계자인) 산업은행 출신 인사가 이사회에 진입하는 것은 ‘경영진 및 대주주 감시’라는 사외이사의 본질적 기능을 상실하고 사실상 대주주의 거수기로 전락할 위험이 크기에 이사 독립성에 의문이 생긴다”고 지적하고 “현재 산업은행은 ‘부산 이전 후 매각’이라는 정치적·정책적 목표를 우선시하고 있어 주주의 이익보다 산은의 정책 목표를 우선시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에 이익 충돌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질의했다.
박희진 교수에 대해서도 “해운항만 물류 전문가가 아닌 특정 지역 기반의 인사를 선임하는 것은 경영상의 필요보다는 ‘부산 이전’을 위한 정당성 확보용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이사진 재편 이후 다음달 이사회에서 본점 소재지를 서울에서 부산으로 변경하는 정관 개정안을 주총에 상정, 5월 임시주총을 통해 이를 확정할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6인 이사회를 5인 이사회로 바꾼 것도 본사 이전과 같은 중대하고 갈등있는 안건을 더 낮은 의결 정족수로 손쉽게 통과시키려는 ‘꼼수’가 아닌지 의심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