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복합쇼크에 한국 경제성장률 1%대 추락 현실화

2026-03-30 13:00:03 게재

OECD, 성장률 전망 2.1%→1.7%로 대폭 하향

G20 중 두 번째 큰 낙폭 … 25조 추경 ‘역부족’

고유가·고환율·고물가에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중동전쟁의 불길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이 급속히 식어가고 있다. 국제기구와 국내 주요 연구기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대로 끌어내리고 있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에너지 의존 구조를 근거로 G20 국가 중 가장 가파른 하향 조정을 단행했다.

정부가 25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덮쳐오는 ‘검은 파도’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박홍근 기획예선처 장관과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본부회의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중동리스크에 취약” OECD = 30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OECD는 ‘중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한국의 실질 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1.7%로 0.4%p 하향 조정했다.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영국(-0.5%p)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하락 폭이다. 세계 경제 전체의 성장률 전망치가 2.9%로 유지된 점을 고려하면, 한국 경제에 가해진 타격이 유독 비대칭적으로 크다.

OECD가 이같은 보수적인 진단을 내놓은 배경에는 한국의 독특한 ‘에너지 안보 취약성’과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가 있다. 보고서는 “한국은 중동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으며, 공급망 하단에 위치한 제조업 비중이 커 전쟁 장기화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이 물가상승과 기업의 생산비용 증대로 즉각 연결된다”고 분석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 중동 리스크라는 암초를 만나 표류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인 셈이다.

◆국내외 기관 ‘도미노 하향’ = OECD뿐만 아니라 국내외 금융기관들의 전망치 역시 1%대로 급격히 수렴하고 있다. 전쟁 발발 전인 지난 1월과 2월, 재정경제부(2.0%), 한국은행(2.0%), KDI(1.9%) 등이 제시했던 ‘2%대 수성’ 목표는 이제 달성 불가능한 수치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특히 국회예산정책처(NABO)는 지난 27일 발표한 리포트에서 전쟁 장기화 시 시나리오별 분석을 통해 성장률이 최저 1.5%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도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도는 상황이 지속되면 경기 위축으로 인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연간 0.5%p 이상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NH금융연구소는 전쟁이 1년 이상 지속될 경우 한국 경제가 0%대 성장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투자은행도 비슷한 흐름이다. 씨티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국 성장률 전망을 0.2%p 낮췄고, 바클리와 골드만삭스도 하향 조정했다. 이러한 도미노식 하향 조정은 기업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가계의 소비를 억제하는 심리적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추경, 방어는 가능하겠지만 = 성장률 하락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고유가’와 ‘고환율’의 결합이다. 원·달러 환율은 이미 심리적 마지노선인 1500원을 넘어섰다. 이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의 기록이다. 고유가가 생산 원가를 높이고, 고환율이 수입 물가를 한 차례 더 밀어 올리는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되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전쟁이 길어지면 외부에 많이 의존하는 경제일수록 성장률 하락은 필연적”이라며 “단기적인 물가 급등을 넘어 중장기적으로는 석유제품 관련 산업 전반의 공급망에 균열이 발생해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진단했다. 성장률은 떨어지고 물가는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초입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이례적인 속도로 25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위기에 빠진 민생 경제를 구제하고 경기 급락을 막겠다는 취지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전날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중동전쟁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이번 추경은 고유가 대응, 소상공인·자영업자·물류·택배업자·청년층 등 민생 지원, 산업 지원, 공급망 안정 등 크게 4가지 분야를 집중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정도 규모로는 거대한 외부 충격을 상쇄하기에 역부족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지난 23일 기획예산처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동사태로 인한 성장률 하락 전망치(0.3~0.5%p)를 고려할 때, 25조원 규모 추경에 따른 실질적인 성장률 제고 효과는 약 0.25%포인트 수준에 그칠 것”이라며 한계를 지적했다.

재정 투입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적인 투자보다는 고유가와 고물가 충격을 완화하는 ‘생계 보전형’ 지출에 집중되다 보니, 전체 GDP(국내총생산)를 끌어올리는 승수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석유화학·운송업계 직격탄 = 실물 경제 분위기는 더 예민하다. 유가에 민감한 석유화학 업계는 원료가 상승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에 직면했다. 항공과 해운업계는 유류비 부담 가중으로 인해 노선 감축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다.

특히 수출 기업들은 환율 상승으로 인한 가격 경쟁력 확보라는 이득보다는 원자재 수입가 상승과 글로벌 수요 위축이라는 악재가 더 크다고 입을 모은다. 중소 수출기업 관계자는 “환율이 오르면 수출 단가가 낮아져 좋을 것 같지만, 원재료비가 그보다 더 가파르게 올라 마진이 사실상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이로써 한국 경제는 2% 성장이라는 기존의 낙관적인 경로에서 완전히 이탈했다는 지적이다. 이제 관건은 1.7%라는 하향 조정된 수치라도 지켜낼 수 있느냐, 아니면 0%대라는 ‘L자형 침체’로 진입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에 기존의 재정정책 프레임을 넘어선 ‘입체적인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 수립을 주문하고 있다. 단순히 돈을 푸는 정책을 넘어 △에너지 공급선 다변화△수출 중소기업 유동성 긴급 공급△취약계층에 대한 핀셋 지원 등 정교한 대응이 뒷받침돼야 한다. 중동발 검은 파도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한국 경제는 사실상 생존 시험대에 올라 있다는 지적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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