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재정 기조 유지…내년 예산 800조 넘어설까
AI 대전환·지방우대 본격화 … 2027년 예산안 편성지침 의결
‘역대급’ 지출 구조조정 병행 … 재량지출예산 15% 감축 목표
정부가 내년도 예산 편성의 밑그림을 공개하며 인공지능(AI) 대전환과 지방 주도 성장을 위한 ‘적극적 재정운용’을 선언했다. 동시에 늘어나는 재정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나랏돈 씀씀이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대수술’도 병행한다. 세수 확대 흐름과 적극 재정 기조가 맞물릴 경우, 내년도 정부 예산은 사상 처음으로 800조원 시대를 열 것으로 전망된다.
기획예산처는 30일 국무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2027년 예산안 편성지침’ 및 ‘지출 구조조정 추진방안’이 의결됐다고 밝혔다. 이번 지침은 각 부처가 내년도 예산을 요구할 때 준수해야 하는 가이드라인으로, 국가 재정 운용의 최우선 순위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정표다.
◆AX·GX 기반 ‘초혁신 경제’ 구축 = 정부는 한국 경제가 경기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주요국의 관세 정책 변화와 중동 전쟁 등 지정학적 불안, 그리고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AI 전환(AX)과 녹색 전환(GX)을 내세웠다.
먼저 대한민국을 ‘AI 3대 강국’으로 도약시키기 위해 제조, 실증, 보급 전 단계에 걸친 AX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반도체 특별회계’를 신설하고 ‘국민성장펀드’를 확대해 첨단 산업에 대한 민관 투자의 마중물 역할을 강화한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K-GX’ 전략도 본격화된다.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달성을 목표로 자가용 태양광 발전 지원을 늘리는 등 친환경 에너지 체계로의 전환을 서두른다. 아울러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한 ‘K-컬처’를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대규모 프로젝트 단위의 콘텐츠 제작 지원도 대폭 늘릴 계획이다.
복지 분야에서는 양극화 해소와 저출생 극복에 방점을 찍었다. 아동수당 지급 연령 확대를 검토하고, 육아휴직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더 두텁게 한다. 특히 ‘그냥드림코너’와 같은 체감형 복지 모델을 전국으로 확산해 복지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방우대 원칙 전면 도입 = 내년 예산안의 또 다른 축은 ‘지방 시대’의 실현이다. 정부는 수도권 집중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5극·3특(5개 메가시티·3개 특별자치권역)’ 중심의 전략 산업 육성을 추진한다.
지방 거점 국립대를 교육과 연구의 허브로 키워 지역 산업에 필요한 인재를 공급하고, 이를 통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특히 행정 체제를 통합한 ‘통합 지방정부’에는 연간 최대 5조원, 4년간 총 20조원 규모의 파격적인 재정 확충을 지원하기로 했다. 공공기관 이전 가속화를 통해 지역사회에 실질적인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주목할 점은 내년부터 도입되는 ‘재정사업 지방 우대 원칙’이다.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일수록 재정 지원을 더 두텁게 하는 방식으로, 올해 7개 사업 시범적용을 거쳐 내년에는 전 부처 사업으로 확대된다. 각 부처는 예산 요구 시 지방 우대를 적용할 사업을 발굴해 제출해야 한다. 또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 내에 ‘초광역 계정’을 신설해 지방정부가 스스로 기획한 사업에 예산을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권한을 넘긴다.
◆재정 고강도 구조조정 = 적극 재정을 실현하기 위한 재원 마련 대책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다. 정부는 모든 재정 사업을 제로베이스(원점)에서 검토해 성과가 낮거나 비효율적인 사업은 과감히 폐지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번 구조조정의 핵심은 재량지출 15%, 의무지출 10% 감축 목표다. 과거 재량지출 10% 수준이었던 목표치를 대폭 상향한 것은 물론, 법령에 의해 지출이 강제되어 건드리기 어려웠던 ‘의무지출’까지 수술대에 올렸다. 한시적이거나 일몰 기한이 도래한 사업은 관행적 연장 없이 원칙적으로 종료한다.
의무지출 감축에 따른 복지 축소 우려에 대해 조용범 기획예산처 예산실장은 “인건비나 기초 생계비 등 줄일 수 없는 필수 사업은 모수에서 제외한 뒤 10% 절감 목표를 적용할 것”이라며 “실질적인 복지 서비스가 줄어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출 효율화를 유도하기 위한 보상체계도 마련했다. 구조조정 실적이 우수한 부처에는 핵심사업 투자 재원을 우선 배정하고, 공무원에게는 성과금과 표창을 수여한다. 국민참여예산 플랫폼을 통해 예산 절감 아이디어를 낸 국민에게는 최대 600만원의 포상을 실시하는 등 민관의 지혜를 총동원할 방침이다. 정부의 2025~202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른 2027년 지출 규모는 약 764조4000억원이었다. 그러나 이는 현재 논의 중인 25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이 반영되지 않은 수치다. 만약 적극재정 기조가 강화되고 세수 여건이 개선된다면, 내년도 예산안은 정부안 기준으로 800조원에 육박할 가능성이 높다.
기획예산처는 “현시점에서 구체적인 총지출 규모를 예단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지속 가능한 적극 재정을 통해 민생 경제를 살리는 데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내년 예산안은 각 부처의 예산 요구와 기획예산처의 심의를 거쳐 오는 9월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