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대법관이 이란에서 느낀 것들

2026-03-30 13:00:07 게재

80여년 전 이란 여행한 윌리엄 더글러스 “미국인과 이란인은 정신적으로 가까운 친척”

5년 동안 이란 생활 중 내린 가장 기특한 결정은 ‘이란 국제관계대학교(SIR, School of International Relations)’에서 수업을 들은 일이다. 2013년 8월, 필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이란으로 갔다. 근무 발령을 받고 나서야 이란은 아랍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무지의 정도가 심했다.

하릴없이 공부를 해야 했다. 도착하자마자 현지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란은 ‘파르시(Farsi)’라고 부르는 페르시아어를 쓴다. 아랍어와 다른 언어다. 일례로 아랍어에는 P 발음이 없지만 파르시에는 있다. 한두 해가 지나면서 시장에서 혼자 흥정할 정도는 됐다. 물론 시적 언어를 구사하는 페르시아 상인을 상대로 값은 별로 깎지 못했다.

조금 더 체계적으로 이란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 근처에 있던 이란 국제관계대학교에 전화해 ‘이란학’ 수업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학교 담당자는 당장 외국인을 위한 과정이 없으므로 프로그램이 생기면 연락해주겠다고 대답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응답을 받았다. 2017년 상반기,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에서 중동학을 전공하는 친구들이 몇 개월 간 교환학생으로 테헤란에 오니 같이 들을 의향이 있냐는 제안이었다. 필자의 대답은 물론 ‘발레(Baleh)’였다. 파르시로 ‘예스’라는 뜻이다. 근무 틈틈이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는 고된 시간이 이어졌다. 읽어야 할 책과 자료가 많았지만 일에 치여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수업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지금껏 떠오르는 책이 있다.

이란에는 9300만명이 산다. 그중 세 명이 사진 속에 있다. 이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틈만 나면 거리로 나갔다. 왼쪽 가판대의 잡지 속에 이영애가 한복을 입고 있다. 이란인에게 한국은 가까운 나라다. 촬영 김욱진

미-이란 관계의 교과서 ‘독수리와 사자’

국제관계학 명문인 미국 터프츠(Tufts)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어느 이란인 교수는 ‘독수리와 사자(The Eagle and the Lion)’라는 책을 수업에서 다뤘다. 여기서 독수리는 미국을 상징하고 사자는 이란을 은유한다. 미국을 대표하는 이란학 학자였던 제임스 빌(James Bill)이 쓴 이 책은 초대 최고지도자 호메이니가 사망하고 2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취임한 1989년 예일대학 출판부에서 발간된다. 책의 부제는 ‘미국과 이란 관계의 비극(The Tragedy of American-Iranian Relations)’이다. 제임스 빌은 19~20세기 미국과 이란을 다루며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양국 관계를 집중 조명한다.

최근 미국과 이란 관계의 격화를 보며 이 책이 다시 떠올랐다. 전자책으로 구입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우리말 번역판이 없는 탓에 영어 원서를 읽어야 했다. 진도가 나가지 않아 인공지능의 도움도 받았다. 서문부터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서문 마지막 문단에서 제임스 빌이 서술한다. “윌리엄 더글러스는 ‘이란인은 정신적으로 미국인과 가까운 친척(Persians are spiritually close kin to Americans)’이라 말했습니다. 이 책은 친척관계를 심각하게 훼손한 개인적 사회적 정치적 힘을 분석하고자 합니다.”

자신의 ‘편견’을 남긴 미 연방대법관

미국과 이란에 대한 뉴스가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지금, 필자마저 훼손된 양국 관계를 재생산하고 싶지는 않다. 자연스레 관심은 ‘미국인과 이란인이 정신적으로 가까운 친척’이라고 표현한 윌리엄 더글러스에 쏠린다. 윌리엄 더글러스는 누구인가. 1898년 태어나 40세에 연방대법관이 된 그는 36년 7개월 동안 직을 역임했다. 역사상 가장 오래 재임한 판사로 기록된 이 미국인은 1949년부터 1961년까지 이란을 포함해 중동·아시아를 넓게 여행했다.

더글러스는 업무와 여행을 병행하며 경험과 관찰을 바탕으로 많은 책을 썼다. 당시 내셔널 지오그래픽 작가 정도를 빼면 이란을 방문한 미국인은 드물다. 더글러스의 여행책 중 가장 먼저 나온 게 바로 1950년 출판된 ‘낯선 땅, 친절한 사람들(Strange Lands and Friendly People)’이다.

더글러스는 책에서 자신이 겪은 이란을 이렇게 정의한다. “크게 보면 이란인과 미국인은 밀접한 정신적 유사성이 있다. 이란인은 아리아 계통으로 미국인보다 피부가 어둡지만 지중해 인종보다는 북유럽 인종에 가깝다. 그들은 두뇌회전이 빠르고 우호적이며 과장된 이야기와 무뚝뚝한 유머를 즐긴다. 환대의 기술을 알며 담론과 논쟁을 갈망한다. 그들은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신중함도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우리 미국 서부 사람들과 가깝다.”

물론 더글러스는 재판관답게 사람마다 겪은 일과 일어난 사건에 대해 다른 인상을 받을 수 있다는 부연도 빠뜨리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사람은 각기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어느 지역에 대해 쓰기 위해서는 자신이 만난 인물과 겪은 상황의 밑바탕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 독자에게 말할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과감히 “자신의 편견(prejudices)을 밝힌다”고 표현한다. 그가 편견을 드러내는 방식은 독자가 여정에 동참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고 들을 수 있도록 에피소드를 상세히 기술하는 것이었다.

더글러스는 자료의 많은 부분이 감정적으로 북받치는 내용이라 작업이 매우 어려웠다고 술회한다. 그럼에도 방대한 자료 어디에 진실이 있는지 찾아내야만 했다고 확고한 어조로 말한다. 그의 작업은 20세기 중반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마음 상태, 선악의 정도, 특정 지역의 본질과 중요성을 최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에피소드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처음 이란에 갔을 때 필자도 같은 심정이었다. 어느 나라든 넓고 크다. 이란도 그렇다. 많은 사람이 산다. 10여년 전 근무 시절 이란 인구는 8000만명이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지금 통계를 보니 이란 인구는 9300만 명이다. 그 사람들을 뭉뚱그리는 숫자와 지표도 알아야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이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들에게 하루하루의 의미는 어떠한지, 종교는 무엇이고 세속은 무엇인지를 묻고 싶었다. 틈만 나면 시장에 갔고, 허름한 버스와 지하철을 탔다. 휴가철이 되면 지방으로 떠났다. 요즘 뉴스에 나오는 카샨 카라지 에스파한 쉬라즈와 같은 동네로 갔다.

어쩐 일인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란에 대해 알기가 어려웠다. 세속화된 테헤란과 달리 지방은 종교의 색이 짙었다. 이슬람 공화국에 대해 젊은이와 나이든 사람들의 의견도 달랐다.

5년 동안 나름 분투했지만 파르시를 말한다고, 현지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해서 이란은 이렇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가 점점 조심스러워졌다. 그럼에도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한 명의 한국인이자 한 명의 세계시민으로서 개인적 경험을 보여주고 싶었다. 틈틈이 남긴 글을 엮어 출판사에 투고했다.

여러 편집자가 이란을 거시적으로 말해야 출간할 수 있다고 했다. 책을 팔기 위해 모르는 걸 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새의 눈’도 갖춰야 하지만 ‘벌레의 눈’도 필요한 것 아니냐”고 항변했지만 그럼 계약은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수십 번의 좌절 끝에 어렵사리 출판사를 찾았다. 편집자가 제안한 제목은 ‘어느 세계시민의 자발적 이란 표류기’다.

‘세계를 아우르는 시각’이 필요하다

몇년이 흐르고 첫 책의 감흥도 거의 사라진 2026년 3월이다. 75년 전 출간된 윌리엄 더글러스의 책 ‘낯선 땅, 친절한 사람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동시에 이란에서 5년, 미국에서 3년 거주한 사람으로서 굉장히 반가웠다. 당시 미국 대통령 후보로 거론될 만큼 고위인사였던 연방대법관이 이란을 가다니, 금시초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편견을 기록으로 남긴다’고 표현하며 개인적 경험에 기반해 이란의 실상을 미국에 알렸다.

굳이 왜 그랬을까. 더글러스는 미국은 세계가 늘 주시하는 국가이므로 연방대법관으로서 자신의 판결은 전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미국 연방대법관은 다른 나라 현실을 알아야 하고, 자신은 ‘세계를 어우르는 시각(a world-wide perspective)’을 가져야만 했다고 회고했다. ‘월드와이드 퍼스펙티브’를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까. 며칠을 고민했다. ‘세계적 시각’이라고 해도 되겠지만 필자는 굳이 ‘세계를 어우르는 시각’으로 옮기고 싶다.

수많은 미디어가 거시적 담론을 쏟아내는 지금이다. 75년 전 미국 연방대법관처럼 개인적 경험에 기반해 ‘세계를 어우르는 시각’이 우리나라에도 늘어났으면 좋겠다.

김욱진 ‘AI와 실리콘밸리 반문화’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