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스웨덴·네덜란드·독일·아일랜드의 교훈
미국 미네소타주는 프로미식축구리그(NFL) 팀 이름이 ‘바이킹스’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 출신이 주 인구의 30%대에 이를 정도로 많아서다. 여기에는 아픈 사연이 있다. 전세계에 대공황이 밀어닥친 1930년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으로 곤두박질치면서 실업률이 20~30%대로 치솟았다.
스웨덴의 상황이 특히 심각했다. 대량해고와 직장폐쇄 등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배고픔에 지친 학생과 부녀자, 노인과 어린아이들까지 가세하면서 극단적인 유혈사태가 일어났다. 수도 스톡홀름 인근 도시에서 파업하던 노동자를 지지하던 3000여명의 시위대에게 군대가 발포하면서 임산부를 포함한 5명이 사망했다. 스웨덴 사람들이 ‘오달렌 사태’로 기억하는 참사였다. 이 사태는 더 많은 파업과 시위로 이어졌고, 스웨덴 경제는 더 깊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미국 등 신대륙 이민에 나섰다. 상당수는 호수가 많은데다 겨울에 매우 추워 고향과 자연·기후환경이 비슷한 미네소타주에 정착했다. 스웨덴에서는 1931년 인구(615만명)의 1/5이 이민선에 올라탔다는 기록도 있다. 거센 풍랑을 만나 바다에서 삶을 마감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지금도 스웨덴 곳곳에 이들을 기리는 표지석이 있다.
정부의 협상 리더십이 결정적 역할
스톡홀름 남동쪽 도시인 살트셰바덴은 그랬던 스웨덴의 비극을 끊어낸 기념비적 도시다. 스톡홀름 외곽 휴양지인 이곳에서 1938년 정부와 기업, 노동조합 대표가 노사관계의 항구적 안정을 약속하는 협상문서에 서명했다. 첫째, 노조는 사측의 경영권, 경영자는 노동자의 단결권을 보장하고 둘째, 경영자는 일자리 확대와 기술투자에 힘쓰며 셋째, 기업들은 이익금 상당액을 사회보장 재원으로 내놓는다는 게 골자였다.
스웨덴은 이 협약을 계기로 극심했던 노동쟁의가 자취를 감추고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이 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 6만달러(2025년)에 달하는 유럽 최고 수준 선진국으로 자리잡은 데는 노사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해낸 정부의 협상리더십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럽의 또 다른 ‘모범 경제국가’ 네덜란드도 비슷한 역사를 거쳤다. 이 나라는 1970년대 만성화된 노사갈등과 30%를 넘는 청년실업률에 시달리며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이라는 말을 탄생시켰지만 1982년 노사정 대타협으로 새 길을 찾아냈다. 동일노동·동일임금을 보장하는 대신 최저임금과 공공부문 임금을 동결하고 시간제 근로를 활성화하는 내용의 ‘바세나르 협약’으로 노사관계 안정과 경제발전 토대를 마련했다.
독일도 그랬다. 2005년 실업률이 11%를 넘으며 ‘유럽의 병자’ 소리까지 들었던 독일의 운명을 반전시킨 주역은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이끈 사회민주당 정부였다. “최선의 사회보장은 경제발전”이란 말로 노동계 대표를 설득해 일자리 증대를 위한 노동 유연성 강화 등 ‘하르츠 개혁’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슈뢰더 총리에게 돌아온 정치적 대가는 매우 컸다. 핵심 지지기반이었던 노조 지도부와 결판을 내는 데 성공했지만 다수 노조원의 반발이 잇따랐고, 그 여파로 다음 선거에서 패배했다. “하르츠 개혁은 슈뢰더의 정치적 자살행위였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지만 나라를 벼랑 끝에서 건져낸 그에 대한 역설적 찬사이기도 했다.
아일랜드는 더 극적이다. 감자 기근으로 10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가난이 뿌리 깊어 ‘유럽의 낙오자’로 불리던 나라가 식민지배 국가였던 영국을 앞지르는 고소득국가로 변모했다. 1987년 노사 상호 양보와 상생을 핵심으로 하는 ‘사회연대협약’에 성공한 덕분이다. 그 바탕 위에서 유럽 최저 수준으로의 세율 인하와 과감한 대외개방으로 해외기업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대도약의 기적을 이뤘다.
오늘날 유럽의 대표적 부자나라로 꼽히는 네 나라가 일궈낸 ‘대역전’의 주역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정부’다. 숱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노조와 기업, 여러 정파와 사회단체를 조율해 타협을 이끌어내는 일은 몹시 험난하다. 설득과 조율의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정치지도자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
요즘 대한민국의 상황이 여러모로 이들 나라와 비슷하다. 무엇보다도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 2월 청년실업률이 7.7%(15~29세 기준)로 5년만의 최고치로 치솟았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고용노동시장 경직성이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 문제를 앞장서 제기하고 있다. 작년 6월 취임 직후부터 “고용경직성과 (강성) 노동조합이 청년 취업난 원인”이라고 한 데 이어 최근에는 “고용시장 유연성을 확보하되, 노동자가 이를 수용할 수 있도록 강력한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웨덴·네덜란드·독일·아일랜드가 일궈낸 해법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음을 보여준다. 남은 건 대통령의 결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