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 쇼크에 ‘석유공사 역할론’ 도마 위
석유공사가 보유한 해외생산 원유, 국내 도입 어려워 …생산량 적고, 세계 곳곳 흩어져 있어
호르무즈 해협 봉쇄 현실화로 국제유가가 폭등하고, 원유 확보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한국의 원유수급 대응능력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의 해외자원개발 전략 부재와 공기업인 한국석유공사가 제 기능을 못하면서 에너지안보에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특히 석유공사는 △이명박 정부의 무리한 해외자원개발 및 대형화 추진 △박근혜 정부의 사업 전면 축소 △윤석열 정부의 ‘대왕고래’ 프로젝트 논란까지 정권의 입맛에 따라 기능과 역할이 손바닥 뒤집듯 뒤집혔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부도 자유로울 수 없다.
◆“석유공사가 밝힌 생산량의 4분의 1도 안돼” = 석유공사는 지난 1월 열렸던 산업통상부 업무보고 당시 해외에서 연간 4700만배럴을 생산하고, 글로벌 수급위기 발생시 이 중 4100만배럴(약 87%)을 국내로 도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일일 석유소비량이 290만배럴인 점을 고려하면 14일치 사용할 수 있는 규모다.
하지만 실제 도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선 “글로벌 위기시 각 국가들이 수출 제한 조치를 취할 경우 전 세계에 산재한 (석유공사의)해외광구에서 원유를 국내로 운송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에너지업계 한 관계자는 “석유공사의 원유 생산량이 적고, 광구는 세계 전역에 흩어져 있어 운송비까지 고려하면 경제성이 떨어진다”며 “운송체계조차 갖춰지지 않아 유조선을 확보하더라도 (석유공사의 해외광구 몇 곳의 생산량을 합해도) 유조선 1척을 채우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수치는 석유공사가 밝힌 생산량의 4분의 1도 안된다”면서 “실질적인 수급대응 효과를 가져오기엔 제한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석유공사의 주장처럼 해외광구에서 국내로 원유를 도입할 수 있다는 건 ‘서류상 조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석유공사의 해외사업 구조를 보면 한계는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석유공사는 2025년말 기준 14개국 18개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중 생산광구는 △영국 다나 △캐나다 하베스트 △미국 이글포드 △베트남 15-2 △UAE 알다프라 △카자흐스탄 카스피안 △리비아 엘리펀트 등 12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생산량이 미미한데다 예맨 LNG는 내전으로 2015년 생산이 중단됐고, 페루 8은 사업 철수중이어서 실제 보유한 생산광구는 10개뿐이다.
◆메이저사 대비 2.6배 높은 생산원가 = 석유공사의 자원개발 분야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제기된다.
석유공사측은 산업통상부 업무보고에서 소유광구의 생산원가를 묻는 질문에 “17.5달러(배럴당) 정도이며, 영업이익 발생구간은 44달러 이상”이라고 밝혔다. 이어 “글로벌 메이저사의 생산원가는 6.7달러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석유공사가)국민들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싼 가격에, 비싼 생산원가를 지불하고 있다면 공감하기 어렵다”며 “비싸면 (메이저에서 개발한 원유를)사오면 되지 직접 개발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다.
경제성·효율성 측면에서 시장 경쟁력을 상실한 것 아니냐는 것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산업부 장관의 발언은 에너지안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논란의 여지가 있다.
에너지업계 한 관계자는 “메이저 기업 의존도를 과도하게 높일 경우 단기적으로 비용이 절감될 수 있지만, 위기 상황에선 공급통제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글로벌 에너지 위기시 해당국가에서 수출을 제한할 수 있고, 가격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폭등할 수 있다”며 “비상시 공급 차단 위험을 고려하면 수입국들은 일정한 자주 개발률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용헌 전 아주대 교수는 “지정학적 위기 상황에서는 ‘깨끗한 에너지’만큼 중요한 게 ‘끊기지 않은 에너지’”라며 에너지 공급 시스템의 유연성을 강조했다.
◆자본잠식 속에 임직원수는 증가 = 이처럼 석유공사는 자원 개발 경쟁력을 상실하고 사실상 비축 업무에만 의존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석유공사는 2020년 ‘창사 이후 41년’ 만에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이후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다. 2025년 6월말 기준 석유공사의 부채총계는 20조4965억원에 이른다. 1년에 이자비용으로만 5660억원(2024년 기준)을 지출했다.
현재 상황으로는 재무구조 개선에 대한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다. 2021~2024년 사이 차입금을 대폭 줄였다고는 하나, 여전히 자산매각 위주의 임시 대응에 그치고 있다.
그럼에도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ALIO)에 따르면 임직원 수는 2000년 1435명에서 2025년 1456명으로 오히려 소폭 늘었다. 경영지표는 추락하고 사업영역은 축소됐음에도 자체 구조조정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에너지 주권·석유공사 체질개선 병행 필요 = 이 가운데 전문가들은 에너지주권 측면에서 ‘자체 광구’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그 전제는 석유공사의 체질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서류상 수치에 갇힌 자원개발보다 국민이 체감하는 ‘실질적 안보’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며 “‘자체 광구’라는 보루를 포기한다면 메이저기업들의 가격 횡포나 국가간 자원무기화 전략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제언했다.
이어 “석유공사는 방만 경영과 부실 투자에서 벗어나, 위기시 즉각 동원 가능한 물류망을 확보하고 생산원가를 낮추는 기술혁신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며 “강소형 에너지 공기업으로 거듭나는 뼈를 깎는 혁신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