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한민국 대전략의 실종을 한탄한다
대한민국은 과연 전략이 있는 나라가 맞느냐는 근본적이고도 고통스러운 질문을 하고자 한다. 손발이 떨리는 걸 참고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대전략’이라 부를 만한 통합된 국가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부처별로 파편화된 산업정책, 정권의 향방에 따라 춤을 추는 에너지정책, 강대국의 눈치를 살피는 임기응변식 외교정책이 병렬적으로 존재할 뿐, 이 모든 것을 관통하여 국가의 명운을 책임질 최상위 개념인 ‘대전략(Grand Strategy)’은 실종된 상태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주변국의 움직임에 기민하게 ‘대응’하며 생존해 왔을지언정, 우리만의 독자적인 생존 지도를 ‘설계’하고 관철시킨 적은 없었다.
알래스카 LNG 제안의 본질 - ‘에너지 동맹’의 요새화
가장 뼈아픈 실책은 알래스카 가스전(Alaska LNG) 프로젝트에 대한 우리의 태도다. 미국이 이 개발에 한국과 일본의 참여를 강력히 권고했을 때, 우리는 단기적인 경제성 논리를 앞세워 이를 사실상 거부했다. 이는 국제정치적 안목이 부재한 전형적인 사례다. 미국이 알래스카의 문을 열어준 것은 단순한 가스 영업이 아니었다.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는 약 1300km 이상의 가스관과 액화 설비를 포함한 초대형 사업이다. 미국이 아시아 동맹국과의 장기적 에너지 결속을 염두에 두고 추진한 전략적 자산이다.
첫째, 이는 에너지 주권의 ‘공동 운명체화’다. 북방 항로(Arctic Route)의 입구인 알래스카에 한·일의 자본을 묶어두는 것은, 유사시 중동이나 말라카 해협이 봉쇄되더라도 ‘미국-알래스카-동북아’로 이어지는 안전한 에너지 전용 통로를 확립하자는 제안이었다. 둘째, ‘해양 안보 블록’의 완성이다. 미국은 알래스카를 기점으로 북방 항로의 에너지 통제권을 쥐려 하며, 우리에게 그 지분을 나누어 주어 대항 세력을 견제하려 했다. 마지막으로 이는 ‘가격 통제권’ 부여였다. 지분(Equity)을 확보하여 시장 가격이 아닌 ‘원가’로 에너지를 가져오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우리는 걷어찼다.
우리가 명분론의 함정에 빠져 이란 침공의 도덕성을 논하며 실익을 놓치는 사이, 설계자가 짜놓은 거대한 판에서 우리는 스스로 고립을 자초했다. 미국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에너지 무기화 시대에 아무런 방패 없이 알몸으로 서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국제정치적 안목이 이다지도 없을 수 있는가.
긴급 제안,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전략적 유턴’
이제 대한민국은 남이 짜놓은 판의 해설자로 남아서는 안 된다. 필자는 대한민국이 지금 당장 실행해야 할 ‘한국형 대전략 액션플랜’을 제안한다.
첫째,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의 ‘전략적 참여’이다. 정부는 즉시 알래스카 가스전 개발 참여를 결정해야 한다. 이는 손익이 불확실한 국외 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한-미 에너지 안보 동맹’의 실질적 결합이다. “비싸다”는 경제성 논리를 넘어,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에너지 영토”를 북미 대륙에 확보한다는 안보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둘째, 울산을 ‘북방 항로 에너지 기지’로 선포하고 실질적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한국에서 알래스카와 북극해에서 오는 LNG와 수소·암모니아를 받아낼 최적의 거점은 울산이다. 울산항의 인프라를 단순 물류항에서 ‘에너지 영토의 전초기지’로 재설계하여 국토 포트폴리오의 거점화를 실현해야 한다.
셋째, ‘에너지 지분(Equity)’ 확보를 위한 국가 펀드 조성이 필요하다. 민간 기업에만 맡겨두지 말고, 국가 차원의 에너지 안보 펀드를 조성하여 미국의 전략 자산에 지분을 태워야 한다. 이제 돈을 주고 에너지를 구입하는 시대는 끝났다. 지분을 주고 안보를 사와야 한다.
넷째, 외교 노선의 ‘현실주의적 재편’이 시급하다. 감상적 외교에서 벗어나야 한다. 중동의 불안정성이 커질수록 우리는 해양세력(미국·일본)과의 에너지 결속을 강화하여 리스크를 분산해야 한다. 미국의 전략적 제안을 우리의 ‘레버리지’로 활용하는 영민함이 국익의 핵심이다.
설계하지 않는 자는 타인의 설계도 속에서 소모품으로 쓰일 뿐이다. 미국이 알래스카의 문을 열어줄 때, 그것을 단순한 영업 행위로 치부하는 안목으로는 정글 같은 국제 질서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설계자가 던진 초대를 거절한 대가는 결국 우리 산업의 심장이 멈추는 것으로 치르게 될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선택은 단순한 정책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생존 방식에 관한 문제다. 혼란한 시장에서 구매하는 나라로 남을 것인가, 지분을 가진 국가로 도약할 것인가. 그 갈림길이 지금 눈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