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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버린 초강대국, 새 국제질서에 대비하라

2026-03-30 13:00:05 게재

미국의 대이란전쟁으로 전세계가 순식간에 대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국제질서를 수호해야 할 초강대국이 국제규범을 무시하고 목표도 불분명한 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이 충격을 주고 있다.

국제정치에서 강대국의 책임을 설명하는 이론은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아래 세 시각 중 어느 것으로 보더라도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쉽게 정당화되지 않는다.

첫번째는 현실주의 관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패권안정이론이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패권국은 단순히 자기 이익만 챙기는 존재가 아니라 국제무역 질서 유지, 규칙 제공 같은 국제 공공재를 공급해야 한다. 이것은 도덕적 책임이라기보다 질서유지가 결국 자기 이익에도 맞기 때문에 수행된다고 본다.

도덕적 관점을 배제하더라도 과연 이번 전쟁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유가폭등으로 유권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고 동맹국들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불신으로 미국의 리더십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정당화 되지 않는 트럼프의 전쟁

두번째는 자유주의·국제제도주의 관점이다. 강대국은 국제사회의 특별한 지위를 가진 행위자로서 세력균형 유지, 전쟁확산 방지, 국제규범 수호 같은 역할을 맡는다. 이 관점에서는 강대국이 국제기구와 규범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국은 자신이 구축해온 서구 중심의 문명적 기반을 파괴했다. 상대 국가와의 협상 중에 상대를 기만하고 적법한 국내 절차도 갖추지 않은 채 동맹국에게도 일절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세번째는 구성주의·규범이론 쪽이다. 한 국가의 행동이 그 국가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나 체화된 규범에 따라 발현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 입장은 ‘강대국의 책임’이 객관적으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국제사회가 어떤 규범을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본다. 여기서 책임은 힘의 부산물이 아니라 정체성, 명성, 국제적 기대와 연결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더욱 납득하기 어려워진다. 본인 스스로 이른바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다른 나라를 위해 미국인들의 세금을 쓰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발을 뺀 것도 이러한 원칙에서였다. 이른바 먼로주의를 내세우며 전 인류의 공통 관심사인 기후위기 대응이나 인도주의 개입도 최소화해온 이가 바로 트럼프 자신이다.

현재 미국의 행동을 강대국의 이익수호 차원에서 마키아벨리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정치지도자에게는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덕목이며 도덕보다는 현실적 효율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정치와 도덕은 분리되어야 하며 군주는 사랑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필요할 때 과감히 행동하는 결단력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국익을 도모해야 한다.

그러나 간과하는 것이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힘으로 적을 제압하는 사자를 닮는 동시에 본인 앞에 놓인 함정을 피하는 여우의 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정치지도자는 냉혹하게 행동하더라도 겉으로는 자비롭고 신의 있고 정의로우며 도덕적인 사람처럼 행동하는 이미지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란에 대한 미국의 침공은 바로 이런 면에서 마키아벨리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우를 범했다고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이스라엘의 꾐에 빠진 채 오직 자신의 힘만을 믿었을 뿐 이 전쟁이 미국과 세계를 어떤 곤경으로 몰고 갈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사자의 힘은 알고 여우 꾀는 몰랐던 트럼프

이번 이란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은 강대국의 책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강대국은 자신의 힘을 아무 데나 휘두르는 무법자가 아니라 무정부적인 국제사회에서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가고 유지하는 권위와 능력을 가진 국가를 의미한다.

강대국이 도덕적이거나 이타적이어서가 아니라 마키아벨리가 말한 것처럼 그것이 자국에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행태는 이러한 책임 있는 강대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제 세계는 이런 새로운 미국에 대비해야 할 것 같다.

정한범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 국방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