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하락·추경 ‘쌍끌이 효과’로 2% 성장률 탈환 기대감 상승

2026-04-02 13:00:05 게재

트럼프 ‘셀프 승리선언’으로 국제유가 ‘지정학적 프리미엄’ 거품 빠질까

호르무즈해협 봉쇄해제 시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단계적 하락’ 전망

공급정상화 기대감 속 ‘에너지 신냉전’ 잔존 … 하방경직성 확보가 관건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실상 ‘셀프 승리선언’을 했다. 2~4주 이내 중동전쟁이 일단락될 가능성을 높였다. 이렇게 되면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국제 유가는 즉각적인 하락 압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배럴당 150달러를 돌파하며 ‘3차 오일쇼크’의 공포를 불러왔던 국제유가는 전쟁 종료와 함께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이 제거되면서 단계적으로 100달러 선 아래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

전쟁 종료는 0%대 추락 위기에 놓였던 한국 경제 성장률에 강력한 심폐소생술이 된다. OECD가 1.7%까지 낮췄던 성장률 전망치는 유가 하락과 함께 반등 기회를 얻게 된다. 다만 전쟁 기간 파괴된 에너지 시설의 복구 시점과 트럼프의 에너지 패권 정책이 새로운 변수로 부상할 전망이다.

가동 중인 여수 여천NCC ‘나프타 가공설비’ 중동 사태에 따른 원료 수급 불안 영향으로 ‘나프타 대란’ 우려가 확산하고 있는 1일 오후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단 내 여천NCC 나프타 가공 설비들이 가동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다움 기자

◆‘봉쇄의 공포’ 해소 효과는? = 중동전쟁 기간 유가를 끌어올린 핵심 동인은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위기였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보고서 ‘미-이란 전쟁에 따른 유가 충격의 주요국 파급효과’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이 전면 봉쇄될 경우 국제 유가는 배럴당 174달러까지 폭등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2008년 기록된 사상 최고치(147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중동전쟁이 일단락되고 해협의 안전 통행이 보장되면 시장을 지배하던 공급 불확실성이 사라진다. 이에 따라 유가는 하루 만에 10% 이상의 폭락세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금융권에서는 전쟁 이전 수준인 배럴당 80~90달러 선까지의 연착륙 여부가 시장의 최대 관심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종전이 되더라도 곧바로 원유 공급량의 즉각적인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쟁 중 미사일 공격을 받은 이란과 인근 산유국들의 주요 석유 정제 및 송유 시설의 파손 상태가 변수다. 인터랙티브 브로커스의 호세 토레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연초 대비 고비용 구조가 지속돼 생산 능력과 운송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지정학적 공포는 사라지더라도 실질적인 공급물량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돌아오는 데는 수개월의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시설 복구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은 유가가 급격히 무너지기보다 완만한 하향 곡선을 그리게 하는 강력한 ‘하방 경직성’ 요인이 될 수 있다.

◆한국경제 성장률 회복될까 = 중동전쟁 이후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에너지 정책 기조는 유가 안정에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할 전망이다. 트럼프는 후보 시절부터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을 외치며 미국 내 화석연료 생산 극대화를 공약했다. 미국이 전략 비축유(SPR)를 재충전하고 셰일오일 생산을 대폭 늘릴 경우, 중동의 영향력을 상쇄하며 국제 유가를 안정적인 박스권으로 묶어두는 효과가 있다. 이는 고유가로 인해 고통받던 한국 등 에너지 수입국들에게는 장기적인 호재다.

전쟁 종료는 0%대 추락 위기에 놓였던 한국 경제 성장률에 강력한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중동전쟁 장기화를 우려해 1.7%까지 낮췄던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유가 하락과 함께 반등할 기회를 얻게 된다. NH금융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하락할 경우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약 0.1~0.2%p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편성한 26조2000억원 규모의 추경 예산은 유가 하락 시기에 집행될 경우 승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 유가가 높을 때의 추경이 단순히 비용을 메워주는 ‘방어적 지원’이었다면, 유가가 떨어지는 시기에는 가계의 가용 소득이 늘어나면서 실질적인 내수 진작과 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 역시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 선에서 내려와 물가 안정을 돕는 선순환 구조에 진입할 것으로 기대된다.

◆종전돼도 유가 단계적 하락 전망 = 반등의 기대감 속에서도 신중론은 존재한다. 중동전쟁이 끝나더라도 국제유가는 상당 기간 100달러를 상회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심리적 요인을 넘어 수급 불균형의 물리적 실체 때문이다.

전쟁 기간 억눌렸던 글로벌 여행 과 물류 수요가 폭발하는 ‘펜트업’(Pent-up) 효과가 나타날 경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병목 현상이 발생한다. 맥쿼리는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재개되더라도 파괴된 인프라 복구 속도에 따라 유가가 100달러 선에서 장기 정체하는 ‘고원 현상’(Plateau)이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 경제로서는 유가가 100달러 아래로 안착하기 전까지는 에너지 비용 부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중동전쟁이 끝나면 글로벌 경제에 ‘평화의 배당금’을 안겨줄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시적인 유가 하락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중동 리스크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종전이 가져올 유가 하락은 한국 경제에 단비와 같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잠시 빌려온 평화’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향후 재정 여력을 소모적인 비용 보전이 아닌, 산업의 기초 체력을 바꾸는 AI 대전환(AX)과 에너지 전환(GX)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에너지 저소비형 산업구조로 개편해야 =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보고서를 통해 중동 원유 의존도가 70%를 상회하는 한국의 구조적 취약성을 지적하며, 에너지를 적게 쓰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산업 구조로의 이행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제조공정 전반에 AI를 도입해 에너지 낭비를 실시간으로 제어하는 스마트 팩토리 확산은 유가 변동에 대한 기업의 내성을 키우는 핵심이다. 이번 추경에 반영된 ‘제조 명장 노하우의 데이터화 및 AI 접목’ 예산 2000억 원이 그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유가가 낮아진 시기에 확보된 재정적 여유를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충과 원자력 생태계 복원에 쏟아야 한다. KIEP는 “비(非)OPEC 공급 확대와 에너지 믹스 다변화만이 반복되는 지정학적 리스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오일쇼크 사례를 보면, 위기 직후 유가가 안정될 때 혁신을 멈춘 기업과 국가는 다음 위기에서 더 큰 타격을 입었다. 반면 유가 하락기를 이용해 에너지 저소비형 산업 구조로 개편한 국가는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

종전 이후 환율과 유가가 안정되면서 발생하는 이른바 ‘평화의 배당금’을 가계와 기업의 일시적인 보조금으로 소진하기보다, 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조류에 대응하는 실탄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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