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테일러주의와 배달 라이더 보호
독일 리페란도 사례
독일의 대표적인 음식 배달 플랫폼 리페란도는 2009년 베를린에서 음식점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중개 서비스 업체로 설립됐다. 이후 배달 인력을 ‘직접 고용’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유럽에서 ‘노동 친화적 플랫폼’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 친화적 비즈니스 모델은 최근 중대한 전환점에 놓였다. 2025년 리페란도는 약 2000명의 배달 라이더를 해고하고 외주를 확대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기존에는 라이더 대부분이 정규직이었지만 개편 이후 고용구조는 외주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졌다.
기업 측은 이를 비용 절감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라이더들은 독일 전역에서 파업과 시위를 이어가며 노사갈등이 본격화됐다.
리페란도의 성장은 유럽 플랫폼 산업구조 변화와 맞물려 있다. 2014년 네덜란드 기업 ‘테이크어웨이닷컴’(Takeaway.com)에 인수됐고 2019년에는 영국 ‘저스트 잇’(Just Eat)과 합병해 ‘저스트 잇 테이크어웨이닷컴’(Just Eat Takeaway.com) 체제를 구축했다. 이후 독일과 오스트리아 시장에서 리페란도 브랜드로 점유율을 확대했다. 현재 독일 시장의 약 80%를 차지하는 지배적 사업자로 자리 잡았다.
코로나19 시기 배달 수요 급증은 리페란도의 고속 성장을 이끌었다. 이후 식료품 전자제품 약국상품까지 사업을 확장하며 종합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그러나 경쟁 심화로 기존의 직접 고용 모델은 점차 비용 부담으로 작용했다. 특히 ‘우버 이츠’(Uber Eats) ‘볼트’(Wolt) 등 외주 기반 경쟁사들과의 경쟁은 구조 개편 압력을 더욱 높였다.
앱으로 통제를 받는 위장 자영업자로
2025년 리페란도 배달 라이더들의 파업은 단순한 고용형태 변화에 대한 반대에 그치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플랫폼 노동을 지배하는 알고리즘(앱) 관리 시스템에 있다.
리페란도의 배달 시스템은 주문 배정, 근무 스케줄, 성과 평가를 모두 앱에 의존한다. 기업은 이를 효율성과 객관성의 산물로 설명하지만 실제 운영 방식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블랙박스’에 가깝다. 라이더들은 왜 특정 주문이 배정되는지, 어떤 기준으로 배차에서 제외되는지, 수입 변동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이러한 구조는 노동자에게 ‘보이지 않는 통제’를 가한다. 겉으로는 자율적인 플랫폼 노동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앱이 노동 강도와 소득을 정밀하게 조정하는 고도로 조직된 관리 체계가 작동한다.
특히 위성항법장치(GPS) 기반 실시간 위치 추적, 배송 시간 단축 경쟁, 고객 평가에 따른 수입 및 배차 결정은 노동 통제를 더욱 강화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는 교통 상황이나 날씨처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요소까지 책임져야 하는 구조에 놓인다.
결국 플랫폼 노동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 성과 압박에 의해 움직이는 체계로 재편되고 있다.
기술은 도구인가, 권력인가
이러한 노동 조직 방식은 전통적인 테일러리즘의 디지털적 재현으로 평가된다. 과거 공장에서 노동을 분해하고 표준화해 효율성을 극대화했던 관리 기법이 오늘날에는 앱을 통해 플랫폼 노동에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 과정의 세분화와 실시간 통제, 성과의 데이터화·자동 평가, 인간 관리자 대신 앱에 의한 지휘 등에서 기술은 단순한 효율화 도구를 넘어 노동을 통제하는 새로운 권력 형태로 작동한다.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반에서 이러한 문제는 기업 전략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법적·제도적 쟁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독일 연방노동법원의 판례와 유럽연합(EU)의 플랫폼 노동지침은 알고리즘 의사결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노동자 권리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기술은 노동을 지배하는 새로운 권력이 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독일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플랫폼 노동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정미경 독일정치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