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CF ‘국익 연계’ 대전환…AI 인프라·K-콘텐츠와 결합
2026~2028년 중기운용방향 발표 … 연평균 3조원 투입 목표
AI 내장인프라·K-콘텐츠·공급망 등 4대 ‘시그니처 사업’ 육성
단계별 사업정보 공개·정책실명제 도입 … ‘국민신뢰’ 제고 총력
정부가 향후 3년 동안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연평균 3조원 규모로 승인했다. 우리 기업의 글로벌 시장 개척과 공급망 확보를 위한 전략적 행보다. 특히 인공지능(AI)과 K-콘텐츠, 핵심광물 공급망 등을 공적개발원조(ODA)와 결합한다. 우리 기업의 수출 길과 개도국의 발전을 동시에 꾀하는 상생 모델을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재정경제부(MOFE)는 13일 오전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2026~2028년 EDCF 중기운용방향’을 의결했다. 이번 계획은 지정학적 갈등과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가운데 공여국의 경제·안보 실익 중심 ODA 개편 추세에 대응해 마련했다.
◆글로벌 원조 환경 변화 = 재경부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개발협력 환경은 급격한 변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미국(USA)과 영국(UK) 등 전통적 공여국들이 재정 긴축과 국방비 증액 여파로 ODA 예산을 삭감하는 추세다. 반면 디지털 전환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개도국의 수요는 연간 2조5000억달러에서 4조달러 규모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수요와 공급의 격차 상황에서 정부는 EDCF를 단순히 원조 수단에 머물게 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대외전략과 개별사업을 연계하는 전략적 협력 수단으로 활용한다. 특히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신시장 진출 지원을 위해 ODA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제4차 국제개발협력 종합기본계획(2026~2030년)과 연계해 전략성과 통합성을 극대화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향후 3년 간 EDCF 신규 승인 목표를 총 9조원(연평균 3조원)으로 설정했다. 사업 성과와 국익 기여도가 가시적으로 확인 가능한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수치다.
집행과 승인 목표를 보면 2026년은 전년 실적 대비 1.5% 증가한 1조9000억원을 집행할 계획이다. 신규 승인 규모는 재정 여건과 집행 실적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조정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 중 13위권인 현재의 ODA 위상을 공고히 할 방침이다.
지역 배분 전략은 지리적 인접성과 경제적 연결성이 높은 아시아 지역에 전체 재원의 50~60%를 집중 배분하는 기조를 유지한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지역은 모든 국가를 지원하기보다 전략 자원 보유국 등 중점 협력국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 원칙을 적용한다.
◆우리 산업 강점과 개도국 수요 결합 = 이번 운용방향의 핵심은 우리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한 분야에 EDCF를 집중 투입해 시그니처 사업을 발굴하겠다는 것이다.
먼저 인공지능(AI)과 디지털 분야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AI 요소를 내장(AI-embedded)한 인프라 도입이다. 단순히 도로를 닦고 발전소를 짓는 수준을 넘어 인프라를 고도화한다. 예를 들어 EDCF로 건설하는 발전소에 AI 전력수급 예측 시스템을 결합한다. 병원에는 AI 진단 보조와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국내 AI 기업들이 해외에서 검증된 이력을 쌓을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한다.
다음은 문화 분야다. 상징성과 파급효과가 높은 대형 문화 인프라 사업을 지원한다. 케냐 콘자 스마트 디지털미디어센터(DMC)처럼 상암 DMC를 모델로 한 영화와 게임제작센터 조성을 돕고 우리의 정책 경험을 전수한다. 여기에 무상 ODA를 연계해 K-콘텐츠를 제공하는 K-ODA 패키지를 완성한다. K-컬처의 글로벌 확산을 꾀한다는 복안이다.
공급망 분야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기 위해 베트남(희토류 텅스텐 요소수) 우즈베키스탄(리튬) 인도(흑연) 등 전략자원 보유국에 EDCF 지원을 확대한다. 인프라 건설(EDCF)과 자원 개발(공급망안정화기금)을 묶은 정책금융 패키지를 지원함으로써 국익 차원의 자원 협력 기반을 구축한다. 환경(그린) 분야는 기후위기 대응에 동참하고 녹색 인프라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 관련 지원을 강화한다.
◆정책실명제 적용키로 = ODA 규모 확대에 걸맞은 대국민 신뢰 확보와 사업의 가시성을 높이는 대책도 마련했다.
사업 발굴부터 평가에 이르는 전 단계 정보를 원칙적으로 공개한다. 타당성 보고서와 심사 보고서는 EDCF 홈페이지에 게시한다. 담당자의 의사결정 이력을 기록하는 정책실명제와 사업이력제를 시행해 부당한 외부 개입을 차단한다. 또 EDCF 전용 내부신고 창구를 개설하고 재외공관을 통한 현장 모니터링을 강화한다. 위법 행위에 대한 제제 강화 방안도 마련한다.
여러 유·무상 ODA 수단을 통합 운영한다. 지식공유사업(KSP)과 기술협력 및 인프라 구축을 하나로 묶은 수원국 맞춤형 K-ODA 패키지를 제공한다. 수원국 국민들이 한국의 지원 내용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인프라 구축 이후 현지 주민의 삶이 변화하는 휴먼 스토리 중심 홍보를 강화한다.
◆기금운용 효율화 추진 = 기금의 내실을 다지기 위한 고강도 효율화 작업도 병행한다. 우리 기업의 참여 가능성이 낮거나 수원국 사정으로 절차가 장기 지연된 사업은 승인 취소를 검토한다. 확보된 재원은 AI와 공급망 등 핵심 분야에 재투자한다. 특히 EDCF 낙찰로 발생한 이익 일부를 상생기여금 명목으로 전략수출금융기금에 납부하도록 한다. 국내 수출 생태계 강화에 기여하는 환류 체계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현재 0.01%~2.5% 수준인 저금리 체계도 개편한다. 국제 사회 ODA 기준과 다른 공여국 수준을 고려해 금리 인상을 추진한다. 이를 통해 추가 재정 투입을 최소화하고 기금 스스로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또 수원국 외채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부채 정보의 투명한 공개를 국제 사회에 지속 요구할 방침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이번 중기운용방향은 단순한 원조를 넘어 상생 발전과 실익 추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정부의 의지가 집약된 것”이라며 “특히 AI와 문화를 ODA의 핵심 축으로 끌어들인 것은 한국만이 가질 수 있는 차별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