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시장 ‘결제주기 단축’ 속도 붙는다

2026-04-14 13:00:01 게재

거래소·예탁원·금투협, 미·영국 현지 실사

유럽, 내년 10월 시작 … 아시아 검토 중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 금융투자협회가 주식시장 결제주기 단축(T+1) 도입을 위해 글로벌 벤치마킹에 나선다.

지난 2024년 5월 미국이 결제주기를 ‘T+1’로 전격 단축한 이후 글로벌 주요국들은 시장 변동성 대응과 거래 비용 절감, 글로벌 정합성을 맞추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증권 유관기관들의 현지실사로 국내 주식시장 결제주기 단축(T+1) 도입 논의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전환 경험 사례 및 도입 과정 점검 =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증권 유관기관 세 곳은 오는 27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을 방문해 주요 감독당국과 시장 인프라 기관을 대상으로 현지 실사를 진행한다. 이번 일정은 미국의 T+1 전환 경험과 유럽의 도입 준비 과정을 동시에 점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이번 방문은 글로벌 주요 시장이 T+1일 결제주기로 전환되며 자본시장 인프라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미국의 성공적인 'T+1' 전환 경험과 노하우를 직접 확인하고, 유럽의 추진 전략을 분석해 향후 우리 주식시장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결제주기 단축 추진 방향을 검토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지에서는 감독 당국과 청산·결제 인프라 기관, 시장참가자 협회 등을 대상으로 △결제주기 단축 추진 과정 △시스템 전환 시 병목 요인 △유동성 및 외환 리스크 대응 전략 △시장참가자 간 협업 구조 등을 집중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다.

실사단은 미국의 결제주기 단축에서 역할을 수행한 인프라 기관 미국 증권예탁결제원(DTCC)과 증권산업금융시장협회(SIFMA), 글로벌 커스터디(금융자산 보관·관리) 기관 씨티은행 등을 방문한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T+1 결제 로드맵을 발표하고 전환을 추진 중인 금융감독청(FCA), T+1 태스크포스, 예탁기관인 유로클리어, 유럽금융시장협회(AFME)와 국제자본시장협회(ICMA) 등과 면담이 예정돼 있다.

이번 실사에는 박상욱 한국거래소 청산결제본부장, 김진택 한국예탁결제원 청산결제부장, 천성대 금융투자협회 증권·선물본부장 등 각 기관 핵심 임원들이 직접 참여한다.

거래소와 예탁원, 금투협은 "현지실사로 확보한 글로벌 모범사례와 정책적 시사점을 제도설계에 적극 반영하겠다"며 "향후 정부, 유관기관 및 시장참가자들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아시아를 선도하는 선진 결제프로세스 구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거래증거금 부담 완화…시장 유동성 증가 = 결제주기란 주식을 매매한 날(T)로부터 실제 대금과 주식의 청산 및 결제가 완료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뜻한다. 'T+1'은 1영업일 이후 완료를 의미하고 'T+2'는 2영업일 이후 대금이 지급된다.

결제주기 단축은 주식거래 투자자의 현금 상환기일을 앞당기는 것보다 주식거래의 최종 결과인 결제위험을 줄이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미결제 수량 감소와 거래증거금 부담 완화를 통해 신용·시장 위험을 줄이고 시장의 유동성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다.

미국의 경우 2021년 초 게임스탑 등 ’밈 주식‘ 사태로 가격변동폭 및 거래량이 급증하자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등의 거래증거금 부담과 유동성 압박 문제로 2022년부터 결제주기 단축 논의가 본격화됐다.

거래 상대방 부도나 가격 변동 위험에 노출되는 기간을 축소해 신용·시장·유동성 리스크를 줄이고 시장 효율성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22년부터 업계 의견 수렴을 거쳐 2023년 2월 15일 규칙 개정안을 최종 채택했으며, 이후 약 15개월의 준비를 통해 2024년 5월 28일 결제주기 'T+1'을 시행했다.

캐나다와 멕시코 등 북미지역은 시장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전환에 따라 같은 시기에 결제주기를 'T+1'으로 전환했다.

그 결과 거래증거금 부담은 완화되고 시장 유동성은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은 T+1 전환 이후 약 3개월간 증권청산기구(NSCC)의 청산기금 규모가 기존 128억달러에서 98억달러로 약 23% 감소하며 시장 유동성이 크게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10월 11일 영국 스위스 EU 동시 전환 = 영국과 유럽연합(EU), 스위스 등은 2027년 10월 시행을 목표로 제도 정비를 진행하고 있다. 북미 시장과의 결제주기 불일치로 인한 막대한 비용 증가와 비효율성을 해소하기 위해 ‘동시 전환’을 준비하며 2027년 10월 11일을 ‘T+1 전환일’로 공식화했다.

EU는 작년 2월 결제주기 단축을 골자로 하는 관련 법안(CSDR) 개정안을 발의하며, 상대방 위험 감소 및 거래 후 처리 과정 자동화를 꾀하고 있다. 영국은 재무부 산하 기술 작업반을 구성해 12개의 핵심 과제와 26개의 권장 과제를 도출했다. 주변 시장과의 조화를 위해 EU와 같은 일정을 채택했다. 스위스 또한 스위스 증권 후속거래 위원회(SPTC)의 권고를 연방 재무부와 증권거래소 운영사(SIX 그룹)가 수용하며 동참하기로 했다.

유럽 시장은 “이번 단축으로 거래 후 처리 시간이 80~90%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주식시장 거래대금 3.5배 급증 = 주요 선진국이 결제 기간을 줄이며 자본 회전 속도를 높이고 리스크를 낮추는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한국 역시 제도 개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1년 사이 국내 주식시장 일평균 결제대금은 3.5배 이상 증가했다. 기관투자자를 포함한 일평균 주식결제대금은 6조4780억원으로 1년 전보다 246.2% 급증했다. 기관투자자 결제분을 제외한 장내 주식시장 기준으로도 작년 1분기 8530억원 수준에서 올해 1분기에는 2조8610억원으로 3.4배 증가했다.

이에 시장 전문가들은 언제 발생할지 모를 결제위험 대비 차원에서 결제주기 단축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식시장 결제주기는 T+2로 매매 후 2거래일이 지난 뒤 대금을 받을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자본시장 간담회에서 결제주기 단축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결제가 완료되는 시간이 급감함에 따라 청산 업무 자동화 등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필수적이며, 시차 및 환전 문제로 인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겪을 실무적 불편함도 주요한 제약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 아시아 지역은 국가별 금융 인프라와 시장 환경이 달라 아직 통일된 전환 목표를 설정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일본과 호주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 금융청은 2024년 7월부터 논의에 착수했으나, 과거 T+3에서 T+2로 전환할 당시 약 5년이 소요됐던 점을 고려해 충분한 준비 기간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호주는 장기적인 필요성에는 공감하나, 현재 진행 중인 차세대 청산·결제 시스템(CHESS) 도입이 완료되는 2026~2029년 이후에나 본격적인 T+1 전환을 결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북미를 넘어 유럽까지 T+1 결제가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는 만큼, 한국에서도 글로벌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한 결제주기 단축 논의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외국인 투자 비중이 높은 한국 시장 특성상 외환 결제 문제와 글로벌 투자자 대응 전략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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