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판 ‘생산적 금융’…금융당국, 은행권 투·융자 규제 완화

2026-04-14 13:00:01 게재

가계예금, 기업대출로 안가…출자·대출 규제 완화

다카이치 전략투자 17개 분야 등으로 자금 유도 목적

미쓰이스미토모, 1조원 규모 M&A펀드 조성 계획

일본 금융당국은 은행이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투자와 대출 관련 규제를 완화할 방침이다. 은행이 펀드 등을 통해 기업에 대한 출자를 하기 쉽도록 하고, 대규모 대출 제한도 완화하는 방향이다. 이를 통해 기업의 성장분야 투자를 유도하고, 대규모 인수·합병(M&A) 등에 필요한 자금을 원활히 조달할 수 있게 한다는 구상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자민당 ‘자산운용입국의원연맹’은 전국은행협회 등의 제안을 기초로 규제 완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올해 여름쯤 내놓을 성장투자전략에 이러한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국정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17개 전략투자분야로 자금이 흘러가도록 유도하기 위한 조치다. 일본판 ‘생산적 금융’인 셈이다.

전국은행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은행권이 보유한 가계예금 총액은 1018조엔(약 9520조원) 수준이다. 하지만 기업에 대한 대출 규모는 646조엔(약 6040조원)으로 가계가 예금한 자금의 63.4%에 그친다. 은행이 기업에 직접 출자하거나 회사채를 사들인 규모는 74조엔(약 700조원) 수준에 그친다.

당국이 이번에 규제를 풀어주려는 의도는 은행이 가진 거대한 자금을 기업에 대한 출자나 대출로 더 돌리려는 의도이다. 특히 성장투자 분야와 스타트업 등 미래 먹거리 산업이나 기업으로 자금이 흘러가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우선 은행이 직접 기업에 출자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현재는 은행이 특정 기업의 의결권 기준 5%를 초과하는 출자는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이를 초과할 수 있는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이다. 예컨대 은행이 투자전문 자회사를 통해 출자하는 방식이 우선 거론된다. 여기에 특정 기업의 사업부문이나 자회사를 떼어내 분사하거나 매각할 때 기존 회사의 경영진에 의한 인수(MBO) 등에 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중장기적으로 은행이 자기자본비율 규제를 받는 은행 지주회사체계 밖에서 출자할 수 있도록 하는 근본적인 개혁도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신문은 “일반지주회사를 통해 펀드에 출자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밖에 은행의 자기자본 규제를 조건부로 완화해주는 방안이다. 은행이 정책금융기관이나 펀드와 공동출자할 경우 지금보다 요구받는 자기자본 부담을 낮추는 방안 등이다.

기업에 대한 대출규제도 대폭 완화할 방침이다. 약 20년 만에 대부업법도 개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계 은행이 주도하는 협조융자에 외국계 은행이 일본내 지점이 없어도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향이다. 이밖에 일시적으로 거액의 기업 인수자금이 필요한 때는 대출 한도를 초과하는 것도 인정할 방침이다.

금융당국이 출자 및 대출과 관련한 규제를 풀기로 한 데는 기업의 설비투자와 연구개발이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분기 기준 기업통계에 따르면, 금융과 보험업을 뺀 전산업 설비투자는 약 15조4000억엔(약 143조원)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6.5% 증가했다. 사업구조 전환을 위한 대형 인수합병이나 그룹내 자본 재편에 나서는 기업도 늘고 있다.

도쿄증권거래소에 따르면, 2025년 MBO 등에 따른 비상장화 건수는 전년보다 70% 늘어난 65건으로 2018년 이후 최대다. 그동안 MBO 매수 자금의 주요 공급은 외국계 펀드가 주도했다. 일본 시중은행은 대출을 통한 지원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노자키 히로나리 도쿄대 교수는 “이번 규제 완화는 기업이 자본이나 부채를 조달하고, M&A 등을 할 때 은행의 자문과 지원 기능을 강화하자는 취지”라며 “다만 은행이 일반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까지 규제를 풀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앞서 은행협회는 지난달 기업대출 등 은행의 자금공급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개혁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은행지주회사가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도 진출할 수 있는 ‘일반지주회사’로 이행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1일 일본은행협회장에 취임한 가토 가쓰히코 미즈호은행 은행장은 “2021년 은행법 개정 등으로 은행이 비금융 분야에 진출하기 쉬워지고 있다”면서 “중장기적으로 일반 사업회사와 같은 형태의 규제 완화를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일본 3대 대형은행의 하나인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은 미국계 자산운용사와 함께 1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이 은행에 따르면 올해 6월 조성을 목표로 준비중인 펀드는 인수합병(M&A)에 특화된 것으로 내년까지 1000억엔(약 9300억원), 5년 후에는 5000억엔(약 4조6500억원) 규모로 확대할 예정이다.

최근 일본 기업의 M&A는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어 이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분야 전문 조사업체인 레코프데이터에 따르면, 일본 기업이 관련된 M&A는 지난해 전년 대비 86% 증가한 38조엔(약 353조원) 규모로 7년 만에 최대다. M&A 1건당 금액은 평균 74억엔(약 690억원)으로 최근 3년간 2.7배 급증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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