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동맹의 미 국채 이탈이 경고하는 것
세계 금융시장의 절대 안전자산으로 군림하던 미국 국채의 위상에 심각한 균열이 가고 있다. 외국 중앙은행들이 미 연방준비제도에 수탁 보관 중인 국채 규모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현상은 단순한 포트폴리오 조정을 넘어선다. 이 변화의 시발점은 트럼프 1기 미중 무역분쟁 당시 중국의 국채 매각이었다.
한때 중국이 미 국채를 급격히 매도하며 이를 ‘금융 무기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으나 대량 투매는 중국 자신에게도 막대한 손실을 의미했다. 양국은 극단적 충돌 대신 서로의 경제적 비중을 점진적으로 낮추는 ‘디리스킹(De-risking, 위험완화)’을 택했다. 중국은 미국채 보유량을 줄였고, 미국은 첨단기술 통제 등을 강화했다.
신뢰 잃은 제국이 치러야 할 비용
당시 중국이 빠져나간 자리는 영국을 비롯한 서방 동맹국들이 십시일반으로 메웠다. 동맹국들이 미국의 재정적 부담을 분담하듯 국채를 추가 매입했고,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안전자산 선호 심리까지 겹쳐 미 국채 시장은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 중심의 글로벌 금융 질서는 공고해 보였다.
그러나 2024년부터 트럼프의 무차별적인 관세 압박이 동맹국들을 향하자 셈법이 급변했다. 결정타는 세계 경제를 경악하게 했던 2025년 4월의 ‘상호관세 폭탄’ 사태다. 안보와 경제를 공유하던 우방국들은 미국 일변도의 자산 보유가 곧 거대한 리스크임을 깨닫고 각자도생의 거래주의적 디리스킹을 시작했다.
미국 재무부 국제자본(Treasury International Capital) 데이터는 이러한 동맹국들의 소리 없는 이탈을 숫자로 명백히 증명한다. TIC 데이터는 미국과 해외 사이의 자본 이동 및 미국 국채·주식 보유 현황을 보여주는 공식 통계로 글로벌 자금 흐름과 달러 체제의 상태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 중 하나다. 가장 주목할 점은 중국의 보유액이 3년 전 8690억달러에서 현재 6523억달러로 무려 25% 급감하며 18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과거에는 이 빈자리를 영국 등 우방국이 받아내며 한때 영국의 보유액이 9269억달러까지 늘어나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매입 증가세가 완전히 둔화되었다.
심지어 일본마저 최근 엔화가치 폭락 방어와 리스크 다변화를 위해 미 국채를 대거 매도하기 시작하며 기존 1조1000억달러 내외이던 보유 잔액이 흔들리고 있다. 동맹국들이 시장 충격을 피하기 위해 슬금슬금 국채를 줄여나가는 교묘하고도 단호한 ‘소리 없는 외면’이 시작됐다. 또 글로벌 중앙은행들은 미국채 대신 금을 채워 넣고 있다.
최근 글로벌 공식 외환보유고에서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보유한 금의 총 가치는 약 4조달러를 기록하며 미 국채 보유 총액인 약 3조9000억달러를 사상 처음으로 앞질렀다. 1996년 이후 무려 30년 만에 발생한 대역전이다. 이는 언제든 미국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동결되거나 압류될 수 있는 ‘종이 신용(미 국채)’을 불신하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없는 절대 자산으로 대이동하는 구조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미국이 무소불위의 재정적자를 내며 빚을 지더라도 동맹국들이 이를 떠받쳐 주었기에 달러화의 지위가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글로벌 외환보유고 내 달러화 비중이 사상 최저 수준인 50%대 중반까지 추락한 지금, 미국은 오롯이 스스로의 체력으로 거대한 부채를 감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당장은 미국의 경제규모로 소화 여력이 있어 국채시장이 폭락하지는 않겠지만, 나토(NATO) 탈퇴 시사 등 트럼프의 동맹 무시 전략은 미 국채시장의 기초체력에 서서히 깊은 금을 가게 만들고 있다.
중동전쟁의 장기화는 미국의 군사비 지출을 천문학적으로 늘리고 있다. 당장 내년이 되면 미국은 전쟁 부채를 채워넣기 위해 중장기 채권의 순발행을 대폭 늘려야만 한다. 필연적으로 ‘부채 한도 증액 문제’가 또다시 워싱턴을 덮칠 것이다. 정부는 돈이 필요해 국채를 찍어내야 하는데 그동안 미국채를 사주던 우방국들의 방어벽이 절실해지는 시기에 정작 큰손들은 등을 돌리는 있는 형국이다.
스노우볼이 되어가는 동맹들의 외면
중동전쟁에서 미국의 전통적 혈맹이던 영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적극적 동참 대신 먼발치에서 냉소적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금융시장에서도 동맹의 태도는 방관자로 돌아섰다. 미 국채를 줄여나가는 동맹들의 외면은 스노우볼이 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은 작아 보이는 국채 보유량의 감소가 향후 미국의 재정 위기 순간에 걷잡을 수 없는 타격이 될 수 있다. 동맹을 기여와 약탈의 대상으로 바라본 미국의 독단적 일방주의가 결국 ‘부채의 대재앙’이라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안찬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