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고 정확한 특허심사 절실…심사인력 증원이 답

2026-04-15 13:00:35 게재

한국 특허출원 규모 세계 4위, GDP 대비 세계 1위 올라

1차심사까지 대기기간 14.7개월, 10년간 4.1개월 늦어져

심사관 수, 유럽의 28.5% 불과, 1건당 심사시간 가장 짧아

특허는 발명자에게 일정 기간 독점적 권리를 부여한다. 대신 기술내용을 세상에 공개하도록 하는 계약이다. 국가가 발명자에게 기술소유를 인정하는 증서다. 기술혁신 과실이 발명자에게 돌아가도록 보장하는 안전망이다.

특허는 출원 이후 심사를 거쳐야 비로소 권리로 인정된다. 심사가 빠르고 정확할수록 특허의 독점적 효과는 커진다. 이차전지분야 A사는 특허권 확보가 지연되면서 해외분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 해외시장 진입 기회도 놓칠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지난해 10월 도입된 수출촉진 초고속심사를 활용해 신속하게 특허권을 확보했다. 해외시장 선점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반면 특허심사가 지체되면 기업은 경쟁사에 기술을 선점당할 위험이 커진다. 자사의 기술과 제품을 보호할 무기 없이 시장에 나서게 된다. 투자유치협상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바이오분야 스타트업 B사는 최근 생산설비 확충을 앞두고 대규모 자금이 필요했다. B사 보유한 기술을 눈여겨보던 투자자는 특허권 확보가 마무리되면 즉시 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특허권 확보 시점이 불투명해지면서 투자유치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심사가 허술하면 경쟁사에 특허회피 기회를 제공해 시장을 내어주게 된다. 정작 혁신을 이룬 기업이 소송에 시달릴 수 있다.

◆특허심사 14.7개월 기다려야 = 산업계는 “권리화 속도가 기술개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오랫동안 호소해 왔다.

특허심사는 단순한 서류처리가 아니다. 기존 기술과 구별되는 특징을 찾아내고 이를 언어로 권리화시키는 고도의 판단 과정이다. 심사가 부실하면 분쟁에서 특허가 무효로 판정되거나 시장에서 특허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특히 내수시장이 작은 우리나라는 해외시장 진출이 불가피하다. 수출·해외영업 등을 위해 현지특허 확보가 필수다. 첨단기술 패권이 치열한 지금 특허심사 속도와 정확성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지식재산처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전세계 연간 특허출원은 약1.4배 증가했다. 2014년 268만건에서 2024년 372만5000여건으로 늘었다. 우리나라 특허출원 규모는 2025년 26만3431건으로 세계 4위다. 내총생산(GDP) 대비 특허출원은 세계 1위다. 특허출원의 양적 지표는 세계에서 앞선 수준이다.

하지만 특허심사 대기기간(심사청구 후 첫 심사의견이 통지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0년간 4.1개월 길어졌다. 심사가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대기기간은 14.7개월이다. 2016년에는 10.6개월이었다. 2024년 기준으로 IP5와 비교해도 격차가 크다. 중국(13.4개월) 일본(9.1개월) 유럽(5.5개월)이 한국(16.1개월)보다 특허심사 대기기간이 짧다. IP5는 세계 주요 5개국(미국 중국 한국 일본 유럽) 지식재산청을 일컫는다.

산업계에서 여전히 심사대기기간 단축에 대한 요구는 큰 이유다. 한국의 특허심사 대기기간이 길어긴 건 특허출원 규모 대비 심사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이다.

한국의 지난해 심사관은 1140명이다. 출원량이 비슷한 일본은 일본 1669명이다. 오히려 출원량이 적은 유럽(4005명)의 28.5% 수준이다. 한국 심사관들은 해외 주요국보다 2~3배를 심사하고 있는 셈이다.

◆심사관 18년간 연평균 17명 늘어 = 한국의 특허심사관 정원은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대폭 늘었다. 2001년 360명에서 2006년 714명으로 354명이 늘었다. 이 기간 심사처리기간은 21.3개월에서 9.8개월로 크게 단축됐다. 이는 한국이 IP5로 발돋움하는 발판이 됐다. 이후 18년간 인력증원은 미흡했다. 2006년부터 2024년까지 심사관 증원은 연평균 17명에 불과했다. 특허심사관 수는 주요국 중 최하위로 추락했다. 심사적체 가중과 심사처리기간 지연은 당연한 결과였다. 현재도 심사관의 특허 1건당 심사시간은 부족하다. 한국의 특허 1건당 심사시간은 10.8시간이다. 미국(31.3시간) 일본(15.5시간) 중국(24.1시간) 유럽(30.3시간)보다 매우 짧다.

이는 특허부실 우려를 낳았다. 영국의 IP 전문매체 IAM 조사(2025년 기준)에서도 한국의 특허심사품질은 IP5 중 중간에 머물러 있다. IAM 보고서에 따르면 특허심사품질 부동의 1, 2위는 유럽과 일본이다. 한국은 2024년 4위에서 지난해 3위로 올랐다.

특허는 출원서 내용과 심사 절차가 국제적으로 표준화돼 있다. 특허심사 투입시간이 짧으면 고품질 특허를 창출하는데 근본적 한계를 갖게 된다.

이재명 대통령도 올해 1월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인공지능(AI) 바이오 분야 초기기업에 대해 초고속 심사 신설을 지시하며 심사관 대폭 증원 등 개선책 마련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AI·바이오 산업에서 사업화와 투자유치에 특허심사 지연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현장목소리를 반영한 것이다.

이 대통령 지시로 지식재산처는 지난해 10월 AI·바이오 분야초고속심사를 신설했다. 초고속심사 대상 기업들은 1개월 안에 첫 심사 결과를 받아볼 수 있게 됐다.

실제 LG에너지솔루션이 출원한 ‘전극조립체 및 전극조립체 제조장치’ 특허는 초고속심사 신청(2025년 10월 23일)한지 19일 만에 특허등록을 마쳤다. 해천케미칼의 ‘바이오매스를 포함하는 친환경 제설제’ 특허도 초고속심사로 21일만에 등록됐다.

◆정부 심사관 증원 협의 중 = 지재처는 초고속심사 외에도 특허심사 속도와 품질 향상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도입하고 있다. 2029년까지 특허 심사대기기간을 10개월 이내로 대폭 단축할 계획이다. 원하는 모든 기업들이 1개월 이내에 심사결과를 받을 수 있도록 초고속심사도 확대한다.

특허권 범위를 지나치게 좁히는 보수적인 심사관행을 혁파하기 위해 특허 심사기준을 제·개정하기로 했다. 기술 융·복합화에 맞춰 여러 심사관들의 지혜를 모으는 ‘협의심사’도 대폭 확대한다. 모두 특허품질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특허심사 속도와 품질을 근본적으로 높이려면 전문 심사인력을 늘리는 것만이 근본적 해법”이라는 의견이다. 지재처는 “심사관 증원을 위해 관계부처와 구체적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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