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에너지 전환, 소비자 가격 유인에 달렸다
에너지 소비 48% ‘열’, 재생열 비중은 3.6% … 버려지는 열부터 제대로 활용, 법적 근거 필요
“열역학적으로 열은 에너지랑 별개의 개념이 아니다. 재생에너지와 일부 원전을 기반으로 지구에 부담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열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대표적인 나라가 되고 그 산업을 함께 육성하겠다. 늦었지만 이 분야를 본격적으로 챙기고 빠른 속도로 성과를 내겠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15일 서울 종로구 에이치제이(HJ) 비즈니스센터에서 열린 ‘열에너지 혁신 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열에너지는 국내 최종 에너지 소비의 48%를, 온실가스 배출의 약 29%를 차지한다. 하지만 열 공급량의 96.4%를 화석연료에 의존 중이다. 전력(21%) 부문엔 재생에너지 목표와 의무화 제도가 촘촘히 짜인 반면, 열 부문엔 법적 근거도 통계 체계도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권필석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은 “히트펌프 보급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소비자 가격이 빠진 것 같다”며 “덴마크의 경우 에너지 세제를 적극적으로 조정해서 소비자가 스스로 히트펌프를 선택하도록 유도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리 좋은 기술과 제도를 만들어도 소비자 입장에서 가격이 매력적이지 않으면 행동은 바뀌지 않는다”며 “덴마크가 에너지 전환에 성공할 수 있던 수많은 요인 중 하나는 될 때까지 정책을 바꾸고 집행하는 데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 장관은 “우리도 한다”며 “△섹터커플링 △미활용 열 회수 △산업 생태계 육성 등을 순서대로 하나씩 할 시간이 없고 동시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기 1을 넣었는데 열이 3~5가 나온다니, 히트펌프가 처음에 사기인 줄 알았다”며 “에너지 보존 법칙에 위배되지 않으면서도 효율이 그만큼 높고 초기 비용 외에는 기술적 장벽도 사실상 없기 때문에 여러 이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히트펌프는 전기로 열을 직접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물·지열 등 자연에 존재하는 열을 끌어와 압축·농축해 냉난방에 활용하는 장치다. 전기는 열을 만드는 데 쓰이는 게 아니라 열을 퍼 나르는 펌프 역할만 하기 때문에 투입한 전기 에너지보다 훨씬 많은 열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이 효율을 나타내는 지표가 COP(성능계수)다. 히트펌프는 통상 COP 3~5 수준이다. 전기 1을 넣으면 열 3~5가 나온다는 의미다. 일반 전기히터가 전기 1로 열 1을 만드는 것과 비교하면 효율이 3~5배 높은 셈이다. 에너지를 새로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이미 존재하는 열을 가져다 쓰는 원리이기 때문에 에너지 보존 법칙에도 위배되지 않는다.
기후부는 2035년까지 재생열 비중을 2024년 현재 3.6%에서 35%로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재생열 공급 의무화(RHO) 제도 도입 △히트펌프 2035년까지 350만대 보급 △열 배관망 9000km 구축 등을 한다. ‘열에너지 관리 및 탈탄소화 촉진법(가칭)’ 제정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한 기업의 A 상무는 “공장에서 나오는 폐열을 인근 주택단지에 이미 공급 중이고 기술적으로는 검증 됐다”며 “문제는 이걸 전국으로 확대하려면 배관 투자 비용이 상당한데, 그 부분에 대한 정책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의 B 에너지부문장은 “공장에서 나오는 폐열을 그냥 버리지 않고 인근 기업과 교환해서 쓰는 사업을 추진 중”이라며 “지금은 기업끼리 1 대 1로 거래하는 구조이지만 산업단지 안에 다자간 열거래 플랫폼이 생기면 훨씬 많은 기업들이 폐열을 사고팔 수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설이나 제도를 도입하는 데만 치중하지 말고 이미 있는 에너지를 제대로 활용하자는 지적도 나왔다. 홍희기 경희대학교 명예교수는 “도심에서도 버려지는 열이 엄청나다”며 “특히 여름철에는 그 양이 상당하며 이를 제대로 활용하면 냉방비를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도심 미활용 열 활용이 냉방비를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는 것은 열을 ‘어디로 버리느냐’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름철 건물을 식히려면 내부 열을 외부로 버려야 한다. 이미 뜨거운 도심 대기로 열을 버리면 더 많은 전기를 소비할 수밖에 없다. 반면 지하수나 하수관처럼 여름에도 온도가 낮은 곳으로 열을 버리면 훨씬 적은 전기로 같은 냉방 효과를 낼 수 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