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10개 대신 ‘하이닉스·현대차 공대’ 만드나
교육부 3개 지역국립대 집중 지원
최교진 장관 “공약 축소 아니다”
기존 지원사업 유사 중복 우려도
영국 맘스베리에 위치한 ‘다이슨 기술공과대학(DIET)’은 매년 40명의 기술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무선 청소기로 유명한 영국 가전업체 다이슨은 2017년 영국 정부의 왕실의 승인을 받아 이 대학을 설립했다.
학생은 입학과 동시에 다이슨 직원으로 채용돼 급여를 받고, 주 3일은 다이슨 엔지니어와 실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나머지 2일은 전공 수업을 듣는 ‘이론-실무 일체화’ 커리큘럼을 따른다.
자동차 제조업체인 롤스로이스도 학위도제제도를 운영 중이다. 사업장 인근 대학과 연계해 3~4년간 일학습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주 4일 현장 근무에 하루는 강의를 수강한다. 재학 중에도 정규직원 자격으로 급여를 받으며 과정 이수 후에는 채용이 보장된다. 교육부가 15일 ‘성장엔진 연계 지역인재 양성방안’을 발표하면서 든 해외사례다. 국내도 한전이 설립한 한국에너지공과대학이나 포스코의 포항공대가 있지만 운영시스템은 다소 다르다. 교육부 구상은 ‘하이닉스 공대’나 ‘현대차 학위제’를 염두에 둔 듯하다.
교육부는 일단 지역 거점국립대 3곳을 선정해 올해만 학교당 1000억원 규모로 집중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선정 대학들은 기업·대학 일체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게 된다.
이 방안은 이재명 대통령의 주요 교육 공약이었던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사실상 축소·철회하고 현실적인 지원 방안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당초 공약은 거점국립대 9곳의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내용이었지만 선택과 집중을 위해 3개 대학에 향후 5년간 선별 투자한다는 계획으로 변경됐다.
지원 방법은 3개 대학마다 ‘브랜드 단과대학’과 ‘인공지능(AI) 거점대학’을 패키지처럼 만들어 육성하는 것이다. 브랜드 단과대는 기업이 교육과정 개발을 주도하고 연구·개발을 지원하도록 해 기업과 대학이 일체화된 교육연구 모델을 만드는 구상이다.
학생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등록금과 생활비를 포괄 지원하는 특별장학 프로그램과 우수 학생을 교수가 밀착 지도하는 연구 프로그램 등의 지원도 한다. 우수 인재가 지역에 머무르도록 대학별로 특성화 교원 트랙을 신설해 우수 교원·인재에게 파격 대우를 할 계획이다.
선정 대학들은 지역의 AI 교육·연구 거점으로 육성된다. 이 과정은 인근 다른 대학 학생들 및 지역 초중고 학생과도 공유하게 된다. 이번 방안은 산업통상부가 추진하는 ‘5극 3특 권역별 성장엔진(전략산업)’ 사업과 연계돼 있어 산업부의 사업이 확정되는 하반기에야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7월까지 대학별로 실행 계획이 담긴 신청서를 받을 예정이다. 선정 대학은 올 3분기에 발표된다.
교육부는 지난 3월 산업통상부와 기업 30여곳을 대상으로 사업 설명회를 열었고, 전북 새만금 부지에 9조원을 투자하기로 한 현대자동차를 접촉했다고 했다. 이해숙 교육부 고등평생정책실장은 “거점국립대들이 유수 기업과 다양한 네트워킹을 통해 소통을 시작했다”며 “일례로 최근 모 지역 대학은 LG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거나 해외 유수 대학의 국제적인 연구소와 MOU를 체결하는 성과를 발표했다”고 했다.
교육부는 이번 개편안을 당초 지난해 말 발표하려 했으나 인재 양성 방안이 국무총리 주재의 범부처 국토공간 대전환 사업으로 전환되면서 미뤘다. 소수 거점국립대를 선별 지원한다는 계획에 대학들의 반발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수 대학의 일부 단과대에 집중 지원되면 대학 간 양극화가 커질 수 있다. 당초보다 예산과 지원 대상이 줄어들어 공약 후퇴 아니냐는 질의에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후퇴나 축소되는 일은 결코 없다”고 했다. 선정되지 않은 6개 국립대에 추가 지원이 이뤄질지는 올해 3개 대학의 성과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6개 대학도 지난해 평균 470억원 수준의 지원에 더해 올해 300억~400억원이 추가 증액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름만 바뀐 예산 나눠먹기’ 우려도 남아 있다. 기존 ‘BK21사업’ ‘산학협력사업’이나 ‘RISE사업’ 등 유사한 사업과 중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일 교육부가 RISE 사업을 개명한 ‘지역성장 인재양성체계(앵커) 추진방안’을 발표했을 때도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중복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이 산업진흥에만 치우쳐 인문학 등 기초학문을 ‘홀대’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차염진 기자 yjcha@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