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오일쇼크 등 위기·재난시에도 고용유지
사후적 대응보다 사전적 예방에 초점 … 금융위기 150만, 코로나19 때 600만명 단축근로로 일자리 지켜내
위기와 재난이 반복되는 시대에 고용정책은 어떠한 방향을 찾아야 할까.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코로나19를 거치며 우리나라는 대량 해고와 고용 축소를 반복해 왔고 사후적 실업보호 중심 정책은 한계를 드러냈다.
독일은 통일 이후의 대량 실업을 계기로 실업 이후 지원보다 실업 자체를 줄이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에 1970년대 중반 오일쇼크를 극복하는 고용정책으로 개발된 단축근로제와 재취업지원회사와 같은 고용유지정책으로 위기 상황에서도 노동자의 고용관계를 유지하고 노동시장 이탈을 최소화해 왔다.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시기에는 수백만명의 고용을 지켜내며 정책 효과를 입증했다. 지난 3년간 독일은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음에도 실업률은 크게 상승하지 않았다. 이는 경제가 축소되는 상황에서도 고용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위기가 잦아지는 요즘 독일 사례를 통해 고용유지정책의 효과와 의미 그리고 한국고용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 본다.
위기와 재난이 잦아지고 그 규모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충격은 노동시장에 직접적인 압력으로 작용한다. 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가장 먼저 인건비를 줄이고 그 과정에서 해고가 발생한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코로나19를 거치며 대량 해고와 고용 축소는 반복돼 왔다. 위기 때마다 일자리는 빠르게 감소했고 경제가 회복된 이후에도 고용 규모는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결국 위기와 재난은 개인의 삶에 불안과 불확실성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용보험제도가 안전망으로 기능해야 하지만, 일자리를 잃은 이후 개인의 삶을 충분히 지탱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한국의 고용보험제도는 확대돼 왔지만 가입자는 약 1500만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실업급여 순대체율은 약 60% 수준이나, 가입기간과 이직 사유 등의 요건으로 실제 수급 대상은 제한적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실업 이후의 보호만으로는 이미 발생한 소득 단절을 완전히 회복하기 어렵고 노동시장 이탈이 장기화될수록 개인의 고용 가능성도 낮아진다.
독일의 고용정책은 전후 급여 중심의 ‘실업자 생활보호’에서 재취업을 지원하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전환했다. 이후 반복되는 경제위기 속에서 ‘실업 예방’ 중심의 고용유지 정책으로 발전해 왔다.
◆독일, 오일쇼크 이후 조선업에서 단축근로 시도 = 고용유지정책의 핵심 수단은 단축근로제(Kurzarbeit)다. 이 제도는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대량해고를 막기 위한 대응책으로 발전했다. 당시 독일 조선업은 생산이 급감하며 심각한 구조조정 압박에 직면했다. 그 여파로 1986년 함부르크에서는 약 1000~1200명의 인원 감축이 예고됐다.
함부르크시와 노동조합, 연방고용청은 ‘정리해고 대신 훈련’이라는 공동 대응에 합의했다. 기업이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고 직업훈련에 참여시키면 훈련기간 임금을 면제해주고, 노동자는 실수령 임금의 약 90%와 교육비를 지원받는 방식이었다. 비용은 연방고용청과 지방정부, 기업이 분담했다. 그 결과 총 757명 중 조선소 매각으로 복귀가 어려웠던 일부를 제외하고 676명이 전직에 복귀하는데 성공하며 대량 실업을 효과적으로 막았다.
통일 이후 1990년대 중반 독일 실업률은 10% 수준까지 상승했으며 실업자 수는 약 440만명에 달했다. 특히 동독 지역에서는 산업 붕괴와 구조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실업률이 20%를 초과하는 등 대규모 실업이 발생했다. 이 고용 충격은 장기 실업의 급증으로 이어졌으며 실업보험에 재정적 부담을 크게 증가시켰다. 1990년대 위기를 겪으면서 독일은 “해고 이후 지원보다 해고 자체를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화됐다.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노동시장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단계적으로 시행된 ‘하르츠 개혁’은 실업문제에 대해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강화하고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여 재취업률을 높이는 데 초점을 뒀다.
◆경제 축소돼도 고용 안정적 유지 =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독일은 대규모 해고 대신 단축근로제를 적극 활용했다. 근로시간을 줄여 노동 공급을 줄이고 직업능력향상훈련으로 다가올 기술혁신에 대비했다. 임금은 기업, 고용청, 정부가 보전해 고용을 유지했다.
2010년 독일 연방고용청에 따르면 최대 150만명 이상의 노동자가 이 제도를 이용했으며 그 결과 대량 실업이 억제되고 실업률도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이를 경제협력개발기구는 경기 충격을 완화하는 핵심적인 고용유지 정책으로 평가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도 이 제도가 확대 적용되며 최대 약 600만명 이상 노동자가 지원을 받았다. 2021년 독일 연방고용청은 이를 통해 고용 감소가 크게 억제된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 역시 코로나19 시기 고용유지지원금을 통해 고용 감소를 일정 부분 완화했으나 적용 범위와 제도적 안정성 측면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경기 회복기, 빠른 경제·사회 대응력 높여 = 위기와 재난이 잦아지는 시대에 실업을 예방하는 고용유지정책은 여러 측면에서 중요한 장점을 보인다. 우선 고용이 유지되면 가계소득이 안정적으로 유지돼 소비 위축을 막을 수 있다. 경기 침체 시 내수 감소와 기업 매출 하락을 완화하는 데 기여한다.
또한 이 정책은 기업의 인적자본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 해고로 인력이 크게 줄어들 경우 숙련 노동자가 이탈해 생산역량이 약화되고, 경기 회복기에는 재채용과 재훈련에 추가적인 비용과 시간이 발생한다. 반면 고용을 유지할 경우 수요가 회복되는 즉시 생산을 재개할 수 있어 경기 회복 속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아울러 고용유지정책은 사회적 안정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실업이 증가할수록 빈곤과 불평등이 확대되고 이는 사회 갈등과 불안을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독일은 기업의 파산이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고 위험에 놓인 노동자를 위해 재취업지원회사를 설립하고 고용계약을 유지한 상태에서 안정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탐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지난 3년간 독일은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음에도 실업률은 크게 상승하지 않았다. 이는 경제가 축소되는 상황에서도 고용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위기 대응 정책은 사후적 대응보다 사전적 예방에 초점을 둘 때 경제와 사회 전반의 대응력을 더욱 높일 수 있다.
정미경
독일정치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