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경상흑자 커지면 환율 하락 공식 깨져”
민간부문 해외투자 확대·저축률 상승 등이 배경
“원화, 외환시장 거래량 적어 금융충격에 민감”
경상수지 흑자에도 환율이 하락하지 않는 배경으로 민간부문의 해외투자 확대와 고령화에 따른 저축률 상승 등이 꼽혔다.
한국은행이 17일 발표한 ‘우리나라 대외부문의 구조적 변화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이후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됐지만 원달러 실질환율은 꾸준히 상승했다.
일반적으로 수출이 늘어나 경상수지 흑자가 증가하면 달러화를 비롯해 외화가 국내에 유입되면서 환율이 하락하지만 그러한 기존 공식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2015년까지는 경상수지가 흑자면 실질환율은 하락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로는 경상수지 흑자에도 환율이 점진적으로 상승했다. 특히 2023년 이후에는 경상수지 흑자폭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데도 환율이 더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경상수지 흑자로 벌어들인 대외자산이 과거와 달리 민간부문의 해외자산 투자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예전에는 경상수지 흑자로 축적된 대외자산이 대부분 중앙은행 외환보유액 등의 형태로 축적됐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는 대외준비자산인 외환보유액 이외에도 다른 대외자산이 급증했다.
특히 민간 부문이 해외 주식과 채권 등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면서 자본이 유출돼 원화가 절하되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민간의 대외 투자는 크게 늘었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대외 증권투자 가운데 미국이 63.4%를 차지한다.
김지현 한국은행 국제금융연구팀 과장은 “경상수지 흑자로 우리나라 상품 수출이 늘어나 환율을 내리는 현상을 ‘상품 충격’이라 하고, 국내 거주자의 해외자산 투자에 따른 자본 유출로 인해 환율을 올리는 현상을 ‘금융 충격’으로 했을 때 2015년 이후에는 금융충격 빈도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저축률 상승도 경상수지 흑자 증가에도 환율이 상승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2011년 이후 저축률이 추세적으로 상승했는데, 이 과정에서 환율이 오르는 이른바 ‘저축수요 충격’이 나타났다.
저축률 상승은 국내 소비위축으로 이어지고, 공급 과잉이 되면 기업은 남은 상품을 청산하기 위해 가격을 낮춘다.
결과적으로 국내 재화의 가격이 외국보다 빨리 떨어지면 원화의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원화가 약세 압력을 받는다는 논리다.
한편 원화는 다른 나라 통화보다 금융 충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금융충격에 따른 원화의 환율 반응계수는 0.65로 △일본(0.38) △미국(0.07) △영국(0.56) △스위스(0.11) △호주(0.36) 등보다 높았다. 이는 우리 외환시장 거래량이 주요국에 비해 적고, 투자 주체가 다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김 과장은 “국가별 하루 평균 외환시장 거래량과 환율의 반응계수간 관계를 분석한 결과 두 변수는 뚜렷한 음(-)의 관계를 보였다”면서 “이는 외환시장의 심도가 깊을수록 금융충격에 대한 환율 반응이 완화되는 경향이 있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