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 건보 재정…‘인구절벽·고용한파’가 재원구조 흔든다
조세재정연구원 ‘재정포럼 4월호’ 발간 … 건강보험료 수입변동 요인분석
2026년 당기수지 첫 적자 전환 … 2033년에는 준비금 소진 전망 ‘경고등’
“지불제도 체계 보완하고 부과기반 확대 등 종합적 재원구조 재검토 시급”
전 국민의 의료 안전망인 건강보험 재정이 유례없는 위기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급격한 고령화로 지출은 폭발적 증가추세다. 반면 보험료 수입은 인구감소와 고용불안이라는 흐름 앞에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당장 내년인 2026년부터 건강보험 수지는 적자로 돌아선다. 7년 뒤인 2033년에는 그동안 쌓아온 준비금이 완전히 바닥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20일 발간한 ‘재정포럼 2026년 4월호’를 통해 지난 10년(2015~2024년)간의 건강보험료 수입 변동 요인을 정밀 분석한 결과를 내놨다. 분석을 맡은 최인혁 연구위원은 “수입 변동을 ‘정책적 요인’과 ‘비정책적 요인’으로 분해해, 향후 재정 안정화를 위한 정책적 시사점을 도출했다”고 밝혔다.
◆보험료 수입의 민낯 =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직장가입자의 보수월액 보험료 수입 증가는 주로 1인당 보수월액(임금 수준) 상승과 보험료율 인상에 의해 견인됐다. 즉 가입자 수가 늘어서 수입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기존 가입자들이 내는 돈의 단위가 커졌거나 요율이 올라가면서 수입이 유지돼온 셈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인구수 증가가 수입에 기여하는 정도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인구 보너스 효과로 가입자 기반이 자연스럽게 확대됐다. 하지만 이제는 ‘인구 절벽’ 현상이 재원 조달의 구조적 제약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또 고용률 변동은 경기 상황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며 보험료 수입에 음(-)의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확인됐다. 일자리 불안이 곧 건강보험의 위기로 직결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2018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시행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은 ‘월급 외 소득’이 많은 가입자들에게 더 많은 보험료를 물리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소득월액 보험료 수입이 증가하긴 했으나, 그 내막은 복합적이다. 분석 결과, 보수월액 보험료 납부자 대비 소득월액 보험료를 추가로 내는 사람의 비율은 증가했다. 그러나 정작 1인당 소득월액은 감소하는 추세가 나타났다. 이는 부과 대상의 저변은 넓어졌으나, 개별 납부자들의 소득 수준이나 부과 기반 자체가 탄탄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재정 운용의 족쇄 될까 = 최 연구위원은 이번 분석 결과가 시사하는 가장 큰 위험 요소로 ‘정부부처나 건강보험공단이 직접 통제하기 어려운 비정책적 요인’을 꼽았다. 인구 구조의 변화나 거시경제적 고용률 변동은 보건당국의 노력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외생 변수다. 이러한 요인들이 악화될수록 건강보험 재정 운용은 구조적인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단순히 지출을 줄이는 관리강화 차원을 넘어, 수입구조 자체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정책적 대응을 제언했다. 가장 우선적인 과제는 보험료가 새어나가는 구멍을 막고, 변화하는 노동 환경에 맞춰 부과 대상을 넓히는 것이다. 보수 외 소득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보험료를 내지 않는 피부양자나 직장가입자의 자격 요건을 더욱 엄격하게 다듬어야 한다.
또 현재 보험료 부과 대상에서 제외돼 있거나 관리가 미흡한 일용근로소득 등에 대해서도 보험료를 부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산업 구조 변화로 늘어나는 다양한 형태의 소득을 포착해 수입원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재원 구조 전반에 대한 종합적 검토와 재정책임성을 강화할 것도 제안했다. 단기적인 수지개선에 급급하기보다, 건강보험 시스템을 지탱하는 재원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이를 위해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면서, 국가와 보험자의 재정운영 책임성을 높이는 원칙을 조화롭게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보험료율 인상에만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국고 지원의 적정성, 정부의 기여 비중 등 재원 조달 방식 전반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종합적 검토가 수행돼야 한다.
◆새 지불모델 도입도 고려해야 = 지불제도 보완을 통한 지출 측면의 효율화도 병행할 것을 권고했다. 수입 확대 노력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지출의 효율화’다. 보고서는 특히 의료 현장의 행태를 바꾸는 근본적인 지출 관리를 주문했다.
아울러 진료 행위마다 비용을 지불하는 현재의 ‘행위별 수가제’는 과잉진료를 유발하고 재정부담을 키우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지불 모델을 적극 도입해 의료 자원의 낭비를 막아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최인혁 연구위원은 “건강보험 재정 위기는 단순한 수치상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안전망 자체가 흔들리는 신호”라며 “정부가 비정책적 요인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정책적 의지를 보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조세재정연구원은 건강보험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가능성’과 ‘재정운영의 책임성’이라는 두 가지 원칙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요율을 높여 국민 부담을 늘리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결국 중동전쟁으로 인한 대외 불확실성과 고유가·고물가가 지속되는 엄중한 경제 상황 속에서, 국민의 건강권을 지탱하는 건강보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재원구조 전반에 대한 종합적이고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6년 적자 전환이라는 시한폭탄의 초침은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