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 칼럼
규제 ‘개혁’과 ‘합리화’의 차이
창의적인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규제를 없애거나 바꾸자는 규제개혁은 역대 정부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대통령 직속기구로 규제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수시로 민관 합동회의를 열었다.
역대 대통령들은 당선인 시절부터 상징적인 표현으로 규제개혁 의지를 피력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목포 대불산업단지 진입을 방해하는 전봇대가 몇 달째 방치된 사실을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소기업을 살리려면 손톱 밑 가시를 빼야 한다”며 규제를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세기 영국에서 자동차가 붉은 깃발을 꽂은 마차를 추월하지 못하게 해 자동차산업이 뒤졌다며 ‘붉은 깃발’을 치우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업들을 국가대표 선수로 칭하며 “(선수) 신발 속 돌멩이를 빼내겠다”고 했다.
5년 주기로 낡고 불합리한 규제들을 ‘전봇대’ ‘손톱 밑 가시’ ‘붉은 깃발’ ‘신발 속 돌멩이’로 비유하며 수술 대상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구호에 그쳤다. 정부마다 나름 규제개혁 건수를 들먹이며 자랑했지만, 수혜자여야 할 기업들과 시장의 평가는 늘 ‘미흡’이었다.
이재명정부는 어떨까.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6월 4일 취임사에서 ‘통제하고 관리하는 정부’가 아니라 ‘지원하고 격려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 일환으로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기업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규제를 네거티브 중심으로 변경하겠다고 강조했다.
네거티브 규제는 법령에서 금지하는 사항 이외에는 모두 허용하는 방식이다. 법령에서 허용하는 것만 가능하고 나머지는 금지하는 포지티브 방식과 배치된다.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합리화위원회’ 1차 전원회의를 주재한 이 대통령은 “첨단산업 분야에서 네거티브 규제 전환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역대 정부 단골 레퍼토리 ‘규제개혁’
우리나라 규제개혁 역사는 5공화국 시절인 1982년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성장발전저해요인개선위원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통령 직속기구로 규제개혁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은 1998년 김대중정부다. 국가적 재난인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벤처 창업을 유도하자는 의도가 작용했다.
규제합리화위원회는 국무총리·민간 공동위원장 체제였던 규제개혁위원회를 28년 만에 전면 개편한 기구다.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았다. 총리급 부위원장에 자유시장주의자로 알려진 이병태 KAIST 명예교수, 남궁범 에스원 고문, 박용진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 임명돼 주목받았다.
첫 회의에서 이병태 부위원장은 “다른 나라에 다 있는 차량공유 제도를 허용하고, 청년들이 의아해하는 대형 유통점 강제 휴무제도 철폐하자”고 제안했다. 정부는 로봇·재생에너지·바이오·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등 4대 첨단산업 분야 메가 특구(대규모 지역 단위 규제특구)를 지정하기로 했다.
메가특구 내 규제에 관한 전권을 행사하는 ‘차르’ 제도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 대통령이 “우리 스타일”이라며 반겼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로봇 메가특구는 자신이 차르가 되고 싶다고 했다.
역대 정부가 규제개혁위원회를 28년째 운영했는데도 어찌 기업들과 시장이 만족해하는 성과를 내지 못했을까. 건수 위주 실적에 연연해 잔챙이 가지만 쳐냈지 ‘이것만 하라’는 포지티브 규제에서 ‘이것만 빼고 다하라’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는 나무 밑동을 바꾸는 수술은 외면해서다.
규제개혁이 의도하지 않은 일부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거나 정권이 바뀌면 관련 공무원이 추궁당하고 ‘왜 특정 계층에 특혜를 주었냐’며 감사를 받는 현실도 영향을 미쳤다. 규제는 폐지하면서도 관련 정부조직과 공무원 수는 없애거나 줄이지 않아서 남아 있는 조직과 관료들이 새로운 일거리(규제)를 만드는 관성도 작용했다. 오죽하면 ‘정부 있는 곳에 규제 있다’는 말이 나돌까.
글로벌 스탠더드 이상 ‘똑똑한 규제’ 기대
이재명정부는 역대 정부와 달리 규제 ‘개혁’ 대신 ‘합리화’를 내세웠다. 규제합리화위원회 첫 회의 슬로건도 ‘똑똑한 규제, 더 앞서가는 대한민국’이었다. 외국 기업들과 경쟁하는 우리 기업들이 위축되지 않도록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 이상의 ‘똑똑한 규제 합리화’로 지원할 책무가 있다.
지난해 11월 국가 대전환을 선언하며 지목한 6대 분야(금융·공공·연금·교육·노동) 규제개혁도 긴요하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을 이루는 미래 첨단산업을 필두로 네거티브 규제 전환은 이번에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그래야 AI 활용이 확산하면서 일자리를 위협받는 청년들이 창의성을 발휘해 창업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일자리 패러다임을 ‘찾는 것’에서 ‘만드는 것’으로 전환함으로써 정부가 선언한 국가창업시대도 가능해진다.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등 기초·광역 자치단체장을 지낸 이 대통령은 현장을 알고 추진력이 강한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로 평가 받는다. 똑똑한 규제 합리화 성과로 일잘러 실력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경제저널리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