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공백 이란, 협상 테이블도 내전 중
혁명수비대, 협상파 지도부에 반기…대리세력 포기냐 사수냐, 이란의 딜레마
중동 정세가 혼돈을 거듭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문제로 미국과 이란간 군사 충돌 위험이 고조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대표단이 20일 저녁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이 협상장에서 마주할 이란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짚었다.
4월 11~12일 1차 이슬라마바드 협상에서 이란은 의사결정자만 30명에 달하는 80명의 대규모 대표단을 파견했다. 오바마 행정부와 2015년 핵 협상을 이끈 노련한 외교관부터 미국을 “사악한 누렁개”라 부르는 강경파까지 한 테이블에 앉았다. 이들의 내부 충돌이 얼마나 격렬했던지, 파키스탄 중재자들은 미국 측과 협상하는 것 못지않게 이란 대표단 내부를 중재하는 데 시간을 쏟아야 했다. 한 전문가는 현 상황을 “권력의 정글”에 비유하며 1979년 혁명 직후의 혼돈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혼란의 뿌리는 권력 공백이다. 미국-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한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후계자들은 7주가 지나도록 장례식 날짜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공식 권한은 갈리바프 의장과 아라그치 외무장관이 이끄는 최고국가안보회의에 있지만, 전시에 분권화된 지휘 체계로 자율성을 키운 혁명수비대(IRGC·19만명)가 이들의 협상 시도에 정면으로 반발하고 있다. 혁명수비대 연계 매체와 군중은 갈리바프·아라그치를 이름까지 거론하며 날마다 성토하고, 5월 1일로 예정된 지방선거 연기까지 거론하며 군부의 영향력을 노골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두 세력의 충돌은 세 가지 핵심 쟁점에서 극명하게 갈린다. 첫째는 대리 세력 문제다. 이란은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 후티, 이라크·시리아 친이란 민병대 등 중동 전역의 무장 세력을 수십 년간 지원해왔다. 민족주의·현실주의 세력은 “이 네트워크를 포기하는 대신 미국의 경제 제재를 풀어내자”고 주장한다. 석유 수출 금지와 달러 거래 차단으로 이란 경제가 극도로 피폐해진 만큼, 중동의 영향력을 협상 카드로 내놓고 경제를 살리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는 논리다. 반면 혁명수비대로 대표되는 이슬람주의 강경파는 “그것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미국·이스라엘에 맞서는 ‘저항’의 근간”이라며 단호히 반대한다. 둘째는 핵 문제다. 현실주의자들은 핵 벼랑 끝 전술이 공격을 자초한다고 보지만, 강경파는 북한 모델을 따라 핵 억지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셋째는 호르무즈 해협이다. 현실주의자들에겐 걸프 국가들과의 안보 협정을 위한 협상 카드지만, 강경파에겐 이란이 직접 장악해야 할 수익성 높은 ‘통행료 징수처’다. 여기에 오랜 세월 제재 우회로 이권을 챙겨온 군부 기득권 세력의 물질적 이해관계까지 얽히면서, 이란의 협상 테이블은 단일한 의지를 모으기 더욱 어려운 구조가 됐다.
전쟁 피해 복구비 2700억달러(약 400조원)라는 절박한 현실이 이란 내부를 하나로 묶을 실낱같은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이란이 협상에 복귀하고 설령 합의가 이뤄진다 해도 그것이 곧 이행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미국은 지금 하나의 이란이 아니라, 서로 싸우는 여러 이란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