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에너지자립도시 특별법, 더 늦출 수 없다
대한민국의 에너지 안보가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중동 정세의 불안이 장기화되면서 국제 유가는 단기간에 배럴당 130달러대(두바이유 기준)로 급등했다. 원유와 LNG 등 핵심 에너지원의 94%를 해외에 의존하며 국가 경제를 사실상 ‘저당 잡힌’ 우리에게 대외 변수는 단순한 경제 지표를 넘어 생존의 위협으로까지 다가온다.
이번 위기는 낯설지 않다. 우리는 과거 ‘오일쇼크’의 악몽을 여러 차례 경험하며 그 고통을 학습해 왔지만 불행히도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우리나라의 에너지 경제 구조에 있다. 자원이 부족해 외부 변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 국제 정세가 흔들리면 국내 경제도 함께 흔들리게 된다. 그때마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와 유류 최고가격제 도입, 비축유 방출, 재정 투입으로 대응해 왔다. 필요하지만 근본 해법은 아니다. 위기를 잠시 늦출 뿐이다.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답은 분명하다. 에너지 자립이 그것이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과감한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재명정부가 ‘에너지 체계 전환’을 국정 핵심 과제로 제시한 것은 이러한 현실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송배전에 필요한 전력망 혁신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방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책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를 뒷받침할 제도와 법이 뒤따라야 한다. 그 핵심이 ‘재생에너지자립도시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다. 이 법은 에너지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출발점이다.
에너지 정책의 패러다임 바꾸는 출발점
전력을 대규모로 생산해 장거리로 보내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의 분산형 에너지 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막대한 송배전 비용을 줄이고, 전력망 포화 문제를 완화하며, 지역 간 갈등을 줄이는 현실적 대안이다. 경제적 효과도 분명하다. 글로벌기업들은 이미 RE100을 ESG경영의 이니셔티브 핵심 가치로 결정하고, 확대하고 있다. 즉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없는 지역은 선택받지 못한다. 이는 곧 산업 경쟁력의 문제다. 에너지 정책이 곧 산업 정책이고, 국가 성장 전략이다.
현장은 이미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전남도에서는 해남·영암 일대의 ‘솔라시도’를 대규모 태양광 기반의 재생에너지 자립도시로 전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풍부한 입지 인프라와 저렴한 전력 공급 능력은 첨단 산업 유치에 큰 강점이다.
이를 입증하듯 2조9000억원 규모의 국가AI컴퓨팅센터 주관사인 삼성·네이버·카카오·KT·클러쉬 컨소시엄이 센터 입지로 솔라시도를 선택했다. 솔라시도가 글로벌 첨단 산업 시장을 선점할 매력적인 투자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확고한 의지에도 특별법안은 현재 국회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태다.
제도적 기반이 미비한 상황에서 투자는 속도를 내기 어렵다. 법의 공백이 기회를 지연시키고 있다. 에너지 전환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전력망 확충, 저장 기술, 수요 관리까지 복합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존 F. 케네디는 “지붕은 해가 쨍쨍할 때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특별법 제정 결단해야
더 이상 준비를 미룰 여유가 없다. 에너지 안보는 경제의 문제이자, 생존의 문제다. 국회는 결단해야 한다. 특별법 제정, 더 늦출 이유가 없다. 지금 통과시키지 않으면 다음 위기는 더 크게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