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 토성 아닌 ‘토석혼축 성곽’

2026-04-21 08:41:17 게재

최초 학술발굴조사로 실체 규명

신라 축성기술·성곽 구조 확인

1500여년 동안 대구 달성이 단순히 흙으로 쌓은 토성으로 알려졌던 것과 달리 흙과 돌을 섞어 쌓는 토석혼축 기법과 석축 기법을 적절하게 혼용해 축성한 성곽으로 밝혀졌다.

대구시는 20일 1500여년 동안 비밀에 부쳐졌던 사적 ‘대구 달성’의 실체를 규명한 학술발굴조사 성과를 공개했다.

이번 발굴조사는 대구 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초의 정식 학술발굴조사다.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 보수정비사업으로 국비를 지원받아 지난해 5월부터 현재까지 (재)대동문화유산연구원이 달성 남측 성벽 구간을 조사 중이다.

대구시에 따르면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성벽 규모는 하부 너비 35m, 외벽 높이 17m, 내벽 높이 9m 안팎으로 대규모 방어 성벽으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축성 시기는 성벽 기저부에서 출토된 토기 편과 성곽 축성기법 등으로 보아 5세기 중엽을 전후한 시점으로 판단된다.

달성이 1500여년간 축조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던 것은 고대 대구 지역의 뛰어난 토목기술이 축성에 잘 적용된 결과로 보인다.

이번 조사에서는 성벽의 구조도 새롭게 확인됐다. 암반층을 정지한 뒤 흙과 돌을 교대로 다져 쌓고 성벽 외면에 납작하게 깬 돌을 경사지게 층층이 겹쳐 쌓은 다음 약 40㎝ 두께의 점토층으로 마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먼저 쌓은 성벽의 아래쪽을 ‘L’자 형태로 절토한 면에서 층층이 경사지게 석축해 밀림을 방지하고 하중을 분산시키는 공법이 적용됐다. 또 성을 쌓을 때 점토의 이동을 쉽게 하고 돌과 흙이 견고하게 결합되도록 대량의 토낭(土囊)을 사용했음이 밝혀졌다. 토낭은 풀로 만든 흙주머니를 말한다.

대구시는 “이같은 축조 기술은 삼국시대 대규모 토목공사에 해당하는 저수지나 하천 제방, 대형고분 등에서 활용된 방식”이라며 “이는 어느 지역보다 정밀하고 뛰어난 축성 기술을 확인한 것으로 대구 지역의 선진화된 고대 토목기술의 수준을 입증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조사 결과 흙과 돌을 용도와 위치에 맞추어 따로 또는 섞어서 견고성을 높이는 토석혼축과 석축 기법을 적절하게 혼용해 축성한 성곽으로 밝혀졌다. 또 달성 축성에는 대규모 인력이 동원됐고 작업 그룹별로 분담이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구획축조방식이 적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성곽의 경사진 내·외벽면에 너비 2~2.5m 간격으로 나타나는 구획 경계는 마치 선처럼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는 작업자별 기술 수준과 축성 재료의 차이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사용된 축성재는 인근 달서천 저지대의 점토와 달성 내부의 평탄 작업 및 성 바깥의 해자 조성 과정에서 나온 돌과 흙으로 추정됐다.

문헌에 기록된 달성의 개보수 관련 흔적 실제도 확인됐다. ‘경상도속찬지리지’에는 고려 공양왕 2년(1390년)에 달성을 돌로 쌓았다는 기록이 있고 ‘여지도서’에는 선조 29년(1596년) 달성에 감영을 설치하고 석축을 더 쌓았다고 기록돼 있다.

실제 발굴조사 결과 관련 석축이 성벽 상부에서 일부 확인됐다. 돌을 수직에 가깝게 여러 단 쌓아 올리며 뒤쪽에는 돌과 흙을 혼합해 다진 개보수 흔적들이 뚜렷하게 나타나 달성이 초축 이후에도 오랜 기간 지역의 중심 성곽으로 기능했음을 보여준다.

대구시는 지난해부터 추진해 오고 있는 남성벽 발굴조사에 이어 올해 북성벽 조사에 착수했다. 내년에는 성 내부 발굴조사도 추진할 계획이다.

한편 삼국사기에 따르면 대구 달성은 첨해이사금 15년(261년)에 축조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축조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희소성이 매우 높은 고대 성곽으로, 경주 월성과 비견될 만큼 삼국시대 대구 세력의 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달성은 고대 신라가 대구 일대를 다스리기 위한 치소성(治所城)으로 축성했으며, 이때 달성고분군도 함께 조영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조선시대까지 성벽의 개·보수를 거치며 그 기능을 이어 왔다.

현재 이 곳에는 달성공원이 조성돼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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