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1800년째 도돌이표, 가격통제 흑역사

2026-04-27 13:00:00 게재

고대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서기 284~305)는 제국 중흥을 위해 통치조직과 군대를 크게 확충했다. 1세기에 25만명이었던 병력을 60만명으로까지 불렸다. 늘어난 재정소요는 통화량 확대로 해결을 시도했다. 물가가 치솟자 ‘최고가격 칙령’(301년)을 발표했다. 곡물 옷 운송비 등 1400여개 물품과 용역에 최고가격을 매겼다. 최고가격보다 비싸게 파는 사람은 물론 구매자까지 사형에 처한다고 엄포를 놨다.

서슬 퍼런 조치였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상인들이 밑지고 팔게 된 물건을 거둬들였다. 암거래되는 물건들에 ‘위험수당’이 붙으면서 값은 되레 더 치솟았다.

프랑스 대혁명기의 지도자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도 같은 실수를 했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물가가 치솟자 곡물과 빵, 우유 등 생활필수품의 가격상한선을 정부가 정하는 최고가격제(1793년)를 발동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로마 때와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가격을 낮추겠다던 정책이 식량부족만 심화시키는 참사를 일으켰다.

2011년, 이번에는 베네수엘라에서 가격통제정책을 선포했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국민들이 ‘적정가격’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적정 비용 및 가격법’을 시행했다. 분유 쌀 커피 밀가루 식용유 등의 가격은 원가보다도 낮게 책정했다. 국민들의 환호는 금세 비명으로 바뀌었다. 밑지고 팔게 된 기업들이 생산을 줄이거나 중단했고, 암시장 가격은 통제 이전의 시장가격보다 훨씬 더 치솟았다.

가격통제, 세계 역사에 성공 사례 없어

세계 역사에 가격통제조치가 숱하게 등장하지만 성공을 거둔 사례는 한번도 없다.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면서 민생을 더 궁지에 몰아넣었다. 가격통제가 번번이 실패한 이유는 단 하나, 시장의 ‘신호등’을 꺼버린 탓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지면 가격이 오르고, 반대로 공급이 더 많으면 가격이 떨어진다. 값이 치솟으면 구매자는 소비를 최대한 줄이는 것으로 대응한다. 가격은 이런 수요-공급의 역학에 의해 나타나는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열이 나는 환자에게 해열 조치를 하지 않고 온도계 눈금을 억지로 낮춘다고 해서 병이 나을 리 없다. 환부를 방치한 채 정확한 진단 방해로 병을 더 키울 뿐이다. 가격통제가 그렇다. 의도가 선하다고 해서 결과가 좋을 수 없다. 그런데도 통치자들은 물가위기가 닥칠 때마다 가격통제 유혹에 빠진다. 당장은 효과를 내는 것 같기 때문이다.

2021년 국제유가가 급등하던 시기, 헝가리에서 석유가격상한제를 발동했던 배경이다. 강력한 정치지배력을 자랑하던 빅토르 오르반 정권이었지만 냉정한 법칙이 작동하는 ‘시장의 복수’를 피할 재간은 없었다. 가격이 꺾이자 수요가 20~30%나 급증한 반면, 손해를 보게 된 정유사들은 공급을 줄였다. 주유소 영업 중단과 품절 사태가 이어졌고 오르반정부는 1년 만에 제도를 폐지했다.

대한민국의 이재명정부가 지난 3월 13일부터 시행하고 있는 석유 최고가격제는 5년 전 헝가리의 정책과 비슷해 보이지만, 큰 차이가 있다. 공급자인 정유회사들이 최고가격제로 입은 손실을 국가가 보전해준다. 정유사들은 손실 회피를 위해 공급을 줄일 이유가 없다. 40일 넘게 시행하고 있지만 별 혼란 없이 잘 작동하고 있는 이유다. 정책을 도입하면서 기대했던 ‘시장안정’ 효과다. 예전 오일쇼크 때마다 큰 혼란이 빚어졌던 것을 감안하면 응급조치 필요성을 무조건 부인할 수도 없다.

문제는 숨은 비용과 부작용의 심각성이다. 지난 한달 동안 정유사들이 입은 누적손실만 1조원에 달한다는 추산이 나온다. 그 돈을 국고로 보전해줘야 한다. 국민 모두로부터 거둔 세금이 동원되는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자가용 승용차를 모는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점에서 공정성·형평성 논란을 피할 수 없다.

가격을 인위적으로 눌러놓은 탓에 석유 소비가 줄지 않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한국석유관리원의 주유소 판매량 통계를 보면 제도 시행 이후 2주 만에 휘발유는 24.7%, 경유는 16.3%가 더 팔렸다. 한국이 전세계에서 에너지이용 효율이 가장 나쁜 나라로 꼽히고 있는 마당이다.

에너지 원단위(일정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데 드는 에너지 소비량) 국제비교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이용효율이 가장 좋은 아일랜드보다 4배나 높고, 수급환경이 비슷한 일본에 비해서도 1.8배 에너지를 더 쓴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주요국 가운데 한국만 직접 가격통제

그런데도 중동사태 유가급등을 똑같이 겪고 있는 주요국들 가운데 한국만 직접 가격통제를 하고 있다. 프랑스는 운송·농업·어업 등 취약 부문에 유류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대부분 국가들이 간접 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회원국들에 재택근무 확대와 대중교통 보조금 지원 등 근본적으로 석유 소비 감축을 유도하는 종합대책을 제시했다. 한국에서의 ‘정책효과’를 모를 리 없을 텐데 말이다.

경제사회연구원 이사

전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