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미국의 중국 정유사 제재 후폭풍
미국 재무부와 국무부가 이란과 원유를 비밀거래해 온 중국의 헝리석유화학을 제재했다. 다롄에 본사를 둔 헝리는 하루 약 40만 배럴의 원유 처리 능력을 갖춘 독립 정유사다. 이들 정유사가 위장선박을 이용해 이란산 원유거래를 했다는 게 미국의 판단이다.
미 재무부는 앞서 이란 자금을 취급한 중국계 은행 2곳에 대해서도 제재를 경고한 상태다. 이란의 최대 석유 수출국인 중국의 자금줄을 압박해 이란과의 종전협상과 내달 중순 중국과의 정상회담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정상회담 전 압박 카드로 주도권 잡겠다는 미국
중국 내 석유와 천연가스 소비량의 수입 의존도는 각각 73%와 40%다. 원유 수입량의 50%와 천연가스 수입량의 16%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물량이다. 중국의 해상 원유 수입량은 지난해 기준 하루 평균 1027만 배럴 규모다. 이 중 이란산 원유는 하루 평균 138만 배럴씩 수입했다. 전체 해상 수입량의 13.4%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중국 국제무역 촉진위원회(CCPIT)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다르면 페르시아만 충돌로 차질을 빚는 중국 석유 수입량은 40% 이상이다. 중국 세관 통계 기준 상 3월 중동 6개국으로부터 수입한 원유는 1억2260만 배럴이다. 1년 전보다 25% 감소한 수치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30.7%), 이라크(46%), 쿠웨이트(52.3%), 카타르(64.5%) 등 4개국으로부터의 수입량 감소세가 뚜렷하다.
하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인 3월 중국의 전체 원유 수입량은 약 3억6200만 배럴로 1년 전보다 2% 정도 줄었을 뿐이다. 3월 중순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수출 제재를 완화하자마자 중국이 러시아 원유 수입량을 14%나 늘렸기 때문이다. 3월 브라질산 원유 수입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배 늘렸다.
제재 대상인 이란으로부터의 원유 수입은 주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환적항을 통해 이루어진다. 미국이 이번에 중국 독립 정유사와 비밀선단까지 제재 명단에 올린 이유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한 후 베네수엘라 항구에서 원유를 선적하는 중국 선박은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다. 게다가 중동전쟁 이후 중국은 이란산 원유조차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로 중국은 하루 700만 배럴 이상의 수입 차질을 빚고 있다. 3개월 분량 비축유로는 중국 제조업을 정상 가동하기 어려운 구조다. 당장 플라스틱 소재와 합성 섬유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호르무즈 봉쇄로 희망봉을 우회할 경우 운송비가 50% 이상 늘고 수송 기간도 2~3주 더 걸리기 때문이다.
중동 시장의 중국 상품 수요도 20% 이상 줄어든 상태다. 중동 국가들이 경제 자원을 인프라와 소비에서 안보 분야로 이동시킨 결과다.
미중 경쟁 한복판에 끼인 한국 실용외교 통해 대비해야
원자재 가격 상승은 중국의 광둥성 주강 삼각주와 상하이 인근 지역의 생산 시설과 다국적 기업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중국의 석유화학 제품 수출 중단은 세계 경제 제조업 생태계에도 부정적 요인이다.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주요 원자재 공급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경제에도 발등의 불이다. 이란과 종전협상을 마무리하고 중국과의 정상회담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며 중간선거 분위기를 끌어올리려는 트럼프행정부의 계산도 수정해야 할 판이다. 물론 중국도 느긋한 처지는 아니다.
문제는 미중경쟁의 한복판에 끼인 한국이다. 실용외교를 통해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