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탄소금융허브 향한 ‘자발적 탄소시장’ 닻 올렸다

2026-04-27 13:00:33 게재

기획예산처, ‘한국형 자발적 탄소시장 조성 방향’ 발표

대한상의와 민관합동얼라이언스 출범 … 민간주도 추진

관련 법 제정 추진 … 배출권거래제 사각지대 해소 기대

거래소 설립 … 중소기업·스타트업에 비즈니스 기회제공

정부가 탄소중립(Net-Zero) 이행을 위한 새로운 경제적 동력으로 ‘자발적 탄소시장(VCM)’ 육성을 본격화한다. 법적 규제대상이 아닌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의 탄소 감축 노력을 ‘탄소 크레딧’이라는 자산으로 변환해 거래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탄소 감축을 단순한 비용절감이 아닌 새로운 수익모델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나아가 한국을 아시아 탄소 금융의 허브로 도약시키겠다는 전략이다.

기획예산처는 27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박홍근 장관 주재로 ‘한국형 자발적 탄소시장 얼라이언스’ 출범식을 개최하고 ‘한국형 자발적 탄소시장 조성 방향’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민간이 주도해 탄소 감축 성과를 인증받고 거래하는 자율적인 시장 체계를 정부가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지난 21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에서 열린 기획예산처 출입 기자단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기획예산처 제공

◆왜 자발적 탄소시장인가 = 현재 한국의 탄소 감축 정책은 정부가 배출 허용량을 할당하는 ‘배출권거래제(ETS)’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ETS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71%를 포괄하고 있다. 하지만 연평균 배출량이 일정 수준(업체 12만5000톤, 사업장 2만5000톤) 이상인 대규모 사업장만을 대상으로 한다.

결과적으로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비정부기구(NGO) 등은 탄소 감축을 실천하더라도 이를 경제적 가치로 보상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가 부족했다. 자발적 탄소시장은 이 ‘30%의 사각지대’에 강력한 감축 유인을 제공하기 위한 대안이다.

박홍근 장관은 이날 출범식에서 “지금까지 탄소 감축이 기업에게 ‘해야 하는 비용’이었다면, 자발적 탄소시장은 이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바꿔주는 기회의 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 제정하고 전용거래소 만든다 =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형 자발적 탄소시장의 핵심은 ‘신뢰성’과 ‘예측 가능성’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제기되어 온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촘촘한 관리 체계를 구축한다.

우선 법적 기반을 마련키로 했다. 정부는 시장 참여자들이 안심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자발적 탄소시장법’ 제정을 추진한다. 여기에는 탄소 크레딧의 등록과 평가, 유통, 소각 등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기준이 담길 예정이다.

통합 거래소도 설립한다. 민간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던 거래를 한데 모아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용 거래소를 설립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감축 실적이 표준화된 가격에 투명하게 거래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그린워싱을 방지할 가이드라인도 마련한다. 감축 실적이 실제적이고 측정 가능하며 검증 가능한지 판단할 수 있는 엄격한 인증 기준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 우리 시장에서 거래되는 크레딧이 국내외에서 믿을 수 있는 자산으로 인정받도록 관리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취지다.

◆민간이 이끌고 정부가 뒷받침 = 이날 출범한 ‘한국형 자발적 탄소시장 얼라이언스’는 정부와 대한상의를 포함한 민간 기업들이 상시 소통하며 시장의 룰을 함께 만들어가는 민·관 협력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된다.

참석자들은 파리협정 제6조에 따른 국제적 탄소 감축 협력이 구체화되고 국내 지속가능공시 제도가 도입되는 시점에 맞춰, 자발적 감축 실적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이러한 수요를 선점해 한국 시장을 아시아 탄소 금융의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특히 대기업들이 협력사의 탄소 감축을 지원하고 그 성과를 자발적 시장에서 크레딧으로 확보할 경우, 공급망 전체의 탄소중립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상생 협력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정부의 이번 발표는 탄소중립 이행 체계를 규제 중심에서 시장 중심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스스로 감축 아이디어를 내고 실천해 그 성과를 시장 가치로 인정받는 구조가 확립된다면,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란 설명이다.

박홍근 장관은 “우리 시장이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탄소 시장의 선도적 위치를 점할 수 있도록 정부가 든든한 조력자가 되겠다”며 민간의 적극 참여를 당부했다.

하지만 과제도 적지 않다. 글로벌 시장과의 호환성을 확보하면서도 국내 중소기업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증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또 시장 초기에 충분한 거래 물량이 확보될 수 있도록 유인책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결국 정부가 예고한 ‘자발적 탄소시장법’의 조속한 입법과 거래소의 내실 있는 운영이 한국형 자발적 탄소시장의 성패를 가를 핵심 열쇠가 될 것이란 지적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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