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바꾸는 재판 ①
판사가 묻고, AI가 답한다
사건 입력하면 답 제시 … 법원 내부망서 직접 활용
재판지원AI 실제 작동 … 판결 전 과정 재편 시작
판사가 사건 내용을 입력하자 인공지능(AI)이 핵심 법리와 관련 판례·법령을 함께 제시했다. 재판지원 AI가 법원 내부망에서 실제 작동하면서 판단 준비 과정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법원행정처 사법정보화실이 지난 23일 내일신문에 시연한 재판지원 AI는 단순 검색을 넘어, 질문을 입력하면 답을 제시하는 ‘질문형 시스템’으로 설계됐다.
기존에는 판사가 키워드를 입력해 수많은 판례를 하나씩 찾아보고 내용을 정리해야 했다.
자료 탐색과 쟁점 정리에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반면 이 시스템은 질문을 입력하면 관련 판례와 법령을 한 번에 제시하고 핵심 내용을 요약해 보여준다.
실제 화면에서도 변화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입력창에 사건 내용을 문장으로 입력하면 중앙에는 AI의 답변이 나타나고, 오른쪽에는 관련 판례와 법령이 함께 표시된다. 판사는 별도의 화면 이동 없이 근거 자료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자료 탐색과 정리 과정이 크게 줄었다.
이 같은 구조는 재판 준비 방식을 바꾼다. 과거 ‘검색→정리→판단’으로 이어지던 흐름이 ‘질문→답변→검증’으로 압축되면서 판단 이전 단계가 단축되고 있다. 특히 기록이 방대한 사건일수록 변화의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는 평가다.
다만 이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AI 서비스와도 다르다. 재판지원 AI는 외부 인터넷과 연결되지 않은 법원 내부망(코트넷)에서만 작동하는 폐쇄형 구조다.
판례와 법령 등 검증된 자료만을 기반으로 답변을 생성하도록 설계됐다. 보안과 신뢰성 확보에 초점이 맞춰졌다.
현재 재판지원 AI는 전국 법원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법관뿐 아니라 재판연구원과 법원 직원 등 사법부 구성원이 함께 사용할 수 있다. 다만 기능은 판례 검색과 요약, 쟁점 정리 등 ‘리서치 지원’에 집중돼 있다. 법원은 “AI는 참고자료일 뿐, 판단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법관”이라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서울고등법원 한 부장판사는 “유사 판례를 빠르게 선별해줘 연구 부담이 줄었다”고 평가한다. 기존 연구원 검토 기능을 빠르게 대체한다는 평가다. 특히 기록이 수백, 수천 쪽에 달하는 사건에서는 효율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서울고법의 다른 부장판사는 “중요 판례를 놓치거나 엉뚱한 사례를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은 기존 검색 방식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아예 AI를 사용하지 않는 판사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 활용 여부와 활용 방식은 개인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변화의 방향은 분명하다. 재판지원 AI는 판결을 대신하지 않는다. 유무죄 판단이나 결론 도출은 여전히 법관의 몫이다. 그러나 그 판단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과정은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결국 재판지원 AI는 ‘판결을 바꾸는 기술’이라기보다 ‘판결에 이르는 과정’을 바꾸는 기술에 가깝다. 재판지원 AI는 사법 인프라로 자리 잡는 초기 단계에 들어섰다. 재판은 그대로일지라도, 그 준비 과정은 이미 달라지고 있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