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된 조치명령도 의견청취 거쳐야”

2026-04-27 13:00:36 게재

1·2심, 가축분뇨 5400톤 방치 ‘유죄’

대법, 무죄 취지 파기 “절차 미준수”

행정청이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같은 조치명령을 하더라도 각각 사전통지와 의견청취 등 절차적 적법성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가축분뇨 처리 명령을 5차례 반복하면서 각각 사전통지와 의견제출 기회를 주지 않은 지방자치단체의 조치는 위법하다는 판단이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지난 2일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는 농부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1000만원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방법원으로 환송했다.

충남 서산시청 소속 공무원은 A씨 소유 토지에 있는 공장용 건물 2개동 내외부에 가축분뇨 또는 퇴비 약 5400톤이 보관·야적·매립돼 있다는 사실을 적발했다. 이에 서산시청은 A씨에게 2023년 3월 가축분뇨 및 퇴비를 적법한 시설로 이동하라는 취지의 선행 조치명령을 내렸다.

A씨는 조치명령을 이행한답시고 가축분뇨 등을 주변 토지에 살포해 추가로 환경오염을 일으켰다. 이에 서산시청은 관내 농경지 등에 가축분뇨 등을 살포하지 말라는 내용을 추가해 2023년 4월~2024년 2월 5차례에 걸쳐 조치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A씨가 공무원에게 조치명령을 따르지 않을 거라 밝히며 지속적으로 이행하지 않자 서산시청은 가축분뇨법 위반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서산시장은 선행 조치명령을 내릴 당시 A씨에게 사전통지서를 발송하고 의견제출도 요구했으나 5차례 조치명령 때는 이러한 절차를 이행하지 않았다.

쟁점은 서산시가 A씨에게 사전통지를 하지 않고 의견제출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조치명령을 내린 것이 적법했는지 여부였다.

1·2심은 모두 A씨 유죄 판결을 내렸다. 1심 재판부는 ‘퇴비로 인한 오염 발생의 우려가 없고 순차로 농사에 사용해야 하므로 치울 수 없다’는 독자적 주장을 고수하며 반복된 조치명령을 모두 불이행한 점, 오염의 위험성이 있었던 점, 실제로 빗물이 유입돼 퇴비가 젖고 침출수가 발생한 점 등을 고려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A씨가 조치명령 위반으로 수사 및 형사재판이 계속되고 있는 기간에도 조치명령을 완전하게 이행하지 않고 1·2심의 변론종결 무렵에서야 이행을 마친 점 등을 토대로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에 잘못이 있다며 대전지방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5차례의 조치명령에 모두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봤다.

행정절차법에 따르면 행정청은 당사자에게 의무를 부과하거나 권익을 제한하는 처분을 하는 경우 미리 통지해야 한다. 아울러 행정청이 당사자에게 의무를 부과하거나 권익을 제한하는 처분을 할 때는 당사자 등에게 의견 제출의 기회를 줘야 한다.

대법원은 서산시청이 선행 조치명령을 내렸을 당시에는 사전통지를 거쳤으나, 제1차 조치명령은 ‘농경지 살포 금지’라는 새로운 의무를 추가했으므로 별도의 사전통지와 의견청취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후 내려진 2~5차 조치명령에 대해서도 “각각의 조치명령 사이에는 1~3개월 간격이 있는 만큼 A씨의 사정변경의 여지가 있다”며 매번 방어권 보장을 위해 의견 청취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어 “이 사건 조치명령은 행정절차법상 ‘해당 처분의 성질상 의견청취가 명백히 불필요하다고 인정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원심 판단에는 가축분뇨법 위반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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