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칼럼
‘육조지’가 사라지려면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진다.” 이 말은 소설가 정을병의 단편 ‘육조지’에 나온다. 구속된 피고인의 넋두리로 형사사법 체제를 풍자한 거다. 앞부분을 보면 맥락이 이해된다. “집구석은 팔아 조지고, 죄수는 먹어 조지고, 간수는 세어 조지고, 형사는 패 조지고”이다. 소설은 ‘창작과 비평’의 1974년 겨울호에 실렸다. 군사독재 철권통치 시절이다.
지금은 어떨까. 민주화와 성숙한 시민의식에 맞춰 형사사법체제도 선진화됐을까. 전혀 아니다. 일단 수사대상에 오르고 기소되면 변호사를 써야 한다. 기본 수임료는 500만원선. 사건 성격에 따라 변호사비는 천문학적으로 뛴다.
과거 중견 화장품업체 사장의 변호사비가 공개된 적이 있다. 판사 출신 최 모 변호사를 50억원에 선임한 거다. 서민 기본 수임료의 1000배다. 그 사장은 집행유예를 받지 못하자 구치소에서 변호사의 뺨을 때렸다. 분노한 변호사가 고소하면서 수임료 규모가 드러났다. 유전무죄를 믿는 그들만의 세상 일면이겠다. 여하튼 서민들은 일단 기소되면 집 기둥이 뽑힌다.
윤석열은 대통령 후보시절 검찰 기소권의 무서움을 강조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끝내고 가족까지 풍비박산 낸다. 목숨을 끊는 권한과 같다”고 했다. 그는 조 국 전 법무부장관을 수사 기소하면서 자신의 말이 과장이 아님을 실증했다. 역사의 가르침이랄까. 무소불위 본인도 기소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검사의 ‘불러 조짐’ 여전
수감되면 나라가 먹여준다. 윤석열의 경우 지난해 7월 10일 재구속 이후 8개월 동안 12억6236만원의 영치금을 모았다. 하루 520만원꼴이다. 서민은 ‘콩밥’신세이지만 윤석열은 돈까지 먹어 치운다. 간수가 점호하는 것은 똑같다. 형사 폭력은 이근안과 문귀동을 겪고 눈에 띄게 개선됐다.
검사의 ‘불러 조짐’은 여전하다.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사건으로 구속수사를 받은 이화영 전 경기부지사의 경우가 그렇다. 구속 후 21개월 동안 242회나 소환됐다. 수사 기록을 작성한 것은 120회. 나머지는 회유이든 협박이든 불러댄 거다. 법원의 ‘미뤄 조짐’도 악명 높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2019년 4월 국회선진화법 위반(일명 빠루 사건)으로 2020년 1월 2일 기소됐다. 5년 10개월 이상 지난 2025년 11월 1심에서 의원직 유지 벌금형이 선고됐다.
이제 정을병의 ‘육조지’는 ‘오조지’쯤으로 줄었다고 할까. 검찰의 보완수사권 유지 여부에 따라 ‘사조지’로 줄어들 수 있겠지만 검찰의 수사권 미련에는 믿는 구석이 있다. 정부와 여당 야당 고위직에 검사 판사 출신들이 즐비한 거다. 이들은 대체로 ‘가재는 게 편’이거나 ‘순망치한’ 관계 아니던가.
또 있다. 바로 검언유착의 기득권 언론이다. 이른바 서초동 편집국장은 여전히 활약 중이다. 역대 경찰청장 수난사가 이를 방증한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라 하지만 고의로 배를 떨어뜨린 것 아닐까.
1991년 초대 김원환 경찰청장 이후 조지호(재판중)까지 24명 중 9명이 기소돼 실형이나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시점이 묘하다. 정부가 검경수사권 조정을 명문화하려던 2011년이다. 퇴임한 지 얼마 안 된 강희락 전 경찰청장이 ‘함바 비리’로 전격 구속된다. “청장까지 비리에 연루된 경찰에 수사권을 줄 수 없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자연히 수사권 조정은 표류한다.
경찰도 반격한다. 2012년에는 김광준 부장검사 뇌물 사건을 경찰이 직접 수사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구속 기소된다. 2018년 검경수사권 조정안이 합의되는 시점에는 강신명 이철성 두 전 경찰청장이 구속된다. 경찰에 대한 국민 신뢰도 땅에 떨어진다.
반면 수사선상에 올랐던 검찰총장 출신들은 기소조차 되지 않거나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된다.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된 신승남만 유일하게 징역1년 집행유예 2년으로 처리된다. 장기판의 포는 포를 먹지도 넘지도 못한다는 말대로인가.
경찰총수를 겨냥한 부패 비리 덧씌우기는 최근 경찰의 수사무능으로 방향을 튼 듯하다. 지난해 9월 경기남부 위장자살 살인사건이 한 예다. 경찰이 혐의 없음으로 송치한 것을 검찰이 CCTV를 복원해 피의자를 잡았다고 적극 홍보했다. 서울권 묻지마 폭행치사 역시 검찰이 보완수사로 공범까지 잡았다며 경찰 무능을 부각시켰다.
보완수사보다 기소권 중요
6.3 지방선거가 끝나면 경찰의 비리와 수사 무능 사례가 잇따를지 모른다. 예전에도 통했듯이 국민 실망감을 유도하면서. 결국 보완수사권을 노리는 거다. 검찰은 “한명의 도적도 놓치지 않겠다”고 한다. 방향이 틀렸다. “한명이라도 억울한 시민이 없도록 하겠다”라야 한다. 99명의 도적을 놓쳐도 말이다. 시민의 억울함을 푸는 건 보완수사가 아니라 기소권이다. 그것만 잘 운용해도 충분히 경찰 수사를 지원하고 통제할 수 있다. 더불어 법원도 공적 책임을 무겁게 갖고. 그러면 ‘육조지’가 사라지는 세상도 앞당겨질 것이다.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