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특정 대상 공격, ‘계획형’까지 등장
광주 여고생 피살·영유아 폭행
이상동기 범죄 일상 침투 우려
광주 여고생 피살 사건에 이어 영유아 폭행까지 이어지며 불특정 대상을 노린 공격이 거리와 공원 등 일상 공간으로 확산되고 있다. 충동적 범행을 넘어 약물이나 흉기를 사전에 준비하는 ‘계획형 범죄’까지 등장하면서 “누구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시민 불안이 커지고 있다.
광주 광산경찰서는 5일 살인·살인미수 혐의로 20대 장 모씨를 긴급체포했다. 장씨는 이날 오전 0시11분쯤 광산구 한 대학 인근 보행로에서 고교 2학년 A양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하고, 이를 말리던 또래 B군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들과 피의자는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로 조사됐다.
장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살을 고민하다 범행을 결심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이른바 ‘묻지마 범죄’로 불리는 이상동기 범죄로 보고 범행 동기와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인천에서는 공원에서 2살 아이가 일면식도 없는 성인 남성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피해 가족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일상 공간조차 안전하지 않다”고 호소했다.
◆‘누구든 표적이 될 수 있는 무작위 공격’ = 이상동기 범죄는 특정한 원한이나 관계 없이 불특정 대상을 상대로 신체 위해를 가하는 범죄다. 단순한 ‘이유 없는 범죄’가 아니라 ‘누구든 표적이 될 수 있는 무작위 공격’이라는 점에서 위험성이 크다.
경찰청에 따르면 관련 범죄는 2023년 46건, 2024년 42건, 2025년 39건으로 매년 40건 안팎 발생했다. 이 가운데 약 35%는 살인이나 살인미수로 이어졌다.
범행 장소도 특징적이다. 최근 경찰대 연구에 따르면 사건의 60% 이상이 거리, 편의점, 버스정류장 등 일상적인 공공 공간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장소가 아니라 일상 자체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의미다.
◆약물·접근형 범죄까지…수법 진화 = 범죄 양상도 변화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20대 여성이 약물을 이용해 피해자에게 접근한 뒤 음료에 수면제를 섞어 건네 2명을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사전에 준비된 이상동기 범죄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학계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확인된다. 경찰대 연구에 따르면 이상동기 범죄는 △반복형 △충동형 △사회투사형 등으로 나뉘며, 이 가운데 일부는 범행 도구를 사전에 준비하고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특징을 보인다.
즉흥적 공격에 머물던 범죄가 계획성과 도구 활용이 결합된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러한 범죄가 사전에 포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광주 사건 피의자 역시 범죄 전력이나 정신질환 이력이 확인되지 않았고, 약물 사건 역시 일상적 접촉을 통해 범행이 이뤄졌다. 겉으로 드러나는 위험 신호가 제한적이라는 의미다.
◆대응은 제자리, 개념·체계 미흡 = 정부는 대응책을 내놓고 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정부는 형사기동대와 기동순찰대 등 약 4000명 규모 조직을 신설해 대응에 나섰지만 범죄 감소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후 인력 운영 부담과 실효성 논란 속에 축소가 진행됐다. 이재명정부 역시 보호관찰 대상자를 중심으로 위험군 선별 관리에 나섰지만 뚜렷한 성과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있다.
전문가들은 이상동기 범죄를 ‘이유 없는 범죄’로만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경찰대 연구에 따르면 가해자의 76.3%가 무직 또는 비정규직 상태였고, 상당수가 정서 불안과 충동 조절 문제를 보였다. 일부는 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좌절을 불특정 타인에게 표출하는 경향도 확인됐다.
다만 정신질환만으로 범죄를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같은 연구에서 정신과 병력이 확인된 비율은 약 30% 수준으로, 대부분은 복합적인 사회·심리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문제는 대응 체계다. 현재 이상동기 범죄는 ‘동기의 이상성’을 기준으로 분류되면서 개념 자체가 불명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기 중심 접근이 범죄를 개인 문제로 축소하고, ‘불특정 대상 공격’이라는 구조적 위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이상동기 범죄는 동기보다 무작위성이 핵심 요소”라며 “명확한 개념 정립 없이는 대응 체계도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 일선 경찰 관계자는 “이상동기 범죄는 사전에 특정 징후를 포착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어 기존 순찰 중심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위험 징후를 조기에 식별하고 관리할 수 있는 체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범죄학 전문가도 “최근 이상동기 범죄는 충동형에 그치지 않고 계획형으로 확장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며 “사건 이후 대응이 아니라 사회적 고립과 위험 요인을 사전에 관리하는 예방 중심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프로파일링과 위험군 관리 등을 통해 대응을 보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잇따른 사건은 현재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상동기 범죄는 더 이상 예외적 사건으로 보기 어렵다. 충동적 범행을 넘어 계획형 범죄까지 등장하면서 위험 양상도 복합화되고 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